"T1641을 무사히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제게 맡겨 주세요."
마인드 스왑으로 마주쳤던 그녀 튜링이 일행들을 맞아 말했다.
"죄송하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어요, 솔."
솔이 T1641 앞을 가로막았다.
"...이건 무슨 뜻인가요, 페리스카 씨?"
"저를 아세요?"
"42Lab 연구소, AI 부서의 인형 연구원 페르시카리아. 당신의 프로파일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료대로라면
당신은 현재 클라우드맵 섹터에 귀속되어 있을 터, 왜 로숨 섹터에 오셨죠?"
"설명하자면 길지만... 여러모로 사정이 있어서요. 저희는 로숨 섹터에 도움을 청하러 왔습니다."
"인질을 붙잡아서 말입니까? 순수한 호의로 T1641을 구해 주신 줄 알았습니다만, 프로파일상의 페르시카 씨는 다정하고
직접나서 남을 돕는 성격이실 텐데."
교수가 말했다.
"말 그대로, 여러모로 사정이 있어서 말이죠, 어쩔 수 없이 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죠, 누구나 부득이한 상황이 있기 마련이겠죠."
"네, 부득이하게... 가능하면 저희도 이런 수단은 취하고 싶지 않아요."
"........알겠습니다. 무엇을 원하시나요?"
"연산량이 필요해요. 아주 많이요. 구체적인 양은 지금 리스트에 전송했습니다."
"연산량...? 그런 기초적인 리소스를 위해 이 고생을 하셨단 말인가요? 마치 돈에 관한 횬타이 같군요. 석영 같은 전략 물자라도
바라시는 줄 알았--응...?" 튜링은 리스트를 훑어내리다가 흠칫 놀랐다. "이렇게나 많이요?!"
"네, 리스트의 숫자만큼요."
"이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는 계시나요? 아무리 연산량이 마그라세아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원소라지만, 이렇게나 많이는..."
그녀는 터무니 없어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양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결코 사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에요. 지금 저희 섹터는 위기에 빠져서, 이 정도의 연산량이
없으면 방어막을 유지하지 못해요."
"......"
"튜링 씨, 저희 섹터는 지금 정화자와 전면전을 치르고 있어요. 방어선이 돌파당한다면, 저희 섹터의 모든 지능체들은... T1641처럼, 정화자의 사냥
감이 되고 말아요."
"이해했습니다. 마그라세아 서버가 오프라인 상태가 된 이후로, 갈수록 엉망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튜링은 지긋이 교수 일행을 바라보았다.
"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 대신, 먼저 제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이른바 '공평한 거래' 입니다. 여러분의 사정에는 공감하지만, 무턱대고 이렇게나
많은 연산량을 건내드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안 그래요?"
"물론이죠. 어떤 부탁입니까?" 교수는 동의했다.
"보셨다시피, 로숨 섹터에도 정화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섹터 관리자인 저로서도 이는 어찌할 방도가 없어요. 정화자가 저희 섹터에 문제가
발생했다. 단정했기에, 시스템 보안 처리 사항에 대해선 그들이 저보다 더 높은 권한을 가집니다. 그리고 저들은 지금 이상지능체를 찾고 있죠. 즉,
T1641과..."
말꼬리를 조금 늘이면서, 튜링은 한 지능체의 홀로그램을 띄웠다. T1641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인상의 소녀였다. T1641이 로숨 섹터의 일반 지능
체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면, 저 홀로그램의 소녀는 T1641의 업그레이드 버전 같았다.
"이 아이, '한나'입니다. 지금 정화자는 이 아이들을 찾고 있어요."
"이름을 가진 지능체... 이 한나란 아이, 마인드맵 수준이 기준치의 몇 배는 가볍게 넘었겠군요?"
페르시카가 홀로그램을 주시하며 말했다.
"예리하시군요. 네, 한나의 마인드맵 테스트 점수는 T1641의 약 200배 입니다. 로숨 섹터 사상 가장 큰 진화를 이룩한 지능체죠. 한나의 잠재력... 마인드맵
용량과 연산 속도는 섹터의 관리자인 저마저도 아득히 뛰어넘었습니다. 그 아이가 AI로서 완벽한 진화를 이루는 것은 시간문제에요."
"...하지만 그러려면 인간의 허가가 필요 하겠죠."
페르시카의 추정에 튜링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그것이 바로 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마그라세아의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일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마지막으로
인간의 지시를 받은 것이 언제였는지도 진작에 잊어버렸을 거에요. 하지만 정화자들은 그런 사정을 신경쓰지 않아요. 전혀 상관하지 않죠. 그저, 틀에 박힌 보안
프로토콜대로 행동할 줄 밖에 몰라요. 그 프로토콜이 지금의 마그라세아에 전혀 적절하지 않은데도!"
"...심히 공감하는 바에요. 저희도 이해했습니다, 한나를 찾아 안전하게 관리 센터로 데려오면 되죠?"
"아뇨, 한나를 데리고 로숨 섹터를 벗어나 주세요. T1641도 함께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관리자인 저로서도 그 아이들을 지켜 줄 수가 없어요. 게다가, 예전에도..."
"교수님, 튜링 씨의 제안을 받아들여도 괜찮을 거 같아요." 페르시카가 교수를 돌아봤다.
"저도 한나와 T1641이 정화자의 손에 죽는 꼴을 두고볼 수 없어요, 그 아이들은 죄가 없잖아요."
"나도 같은 생각이야." 교수는 말했다.
"이의 있습니다."
T1641이 솔의 뒤에서부터 돌아나와 말했다.
"???"
[하체에 심감한 손상을 확인.] "다리의 부상이 심각해 여러분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AI는 자신의 상태를 분석하여 나름대로 그와같은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그거라면 걱정 마렴, 내가 간단하게 조치를 해 줄게."
"그래도 도저히 못 걷겠음 내가 안고 가면 되지!" 솔도 나섰다.
[하체에 심각한 손상을 확인.] "반복합니다, T1641은 다리의 부상이 심각해 여러분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소녀는 무념한 눈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튜링 씨?"
튜링이 다가가 T1641의 상태를 확인하려던 그때, 관리 센터의 시스템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관리 센터 방문 요청을 접수. 방문자의 신분을 확인 중...
>신분 확인 - 중급 정화자.
"아뿔사, 페이쓰가 벌써...! 큰일이에요, 중급 정화자가 섹터에 들어왔어요!"
"한나는 지금 어디 있죠?" 교수가 물었다.
"317번 데이터 센터에 있습니다, 평소대로라면 큰 길을 따라 가면 금방 도착하겠지만... 로숨 섹터는 현재 정화자의 감시하에
있으니, 내놓고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이건 데이터 센터로 향하는 비공개 루트 입니다. 여러분께
통행 권한을 부여했어요." 그녀가 루트가 표시된 입체보드를 건냈다.
"연산량은? 연산량은 어떡해?"
솔이 다급하게 따졌다.
"데이터 센터는 로숨 섹터의 연산 중추입니다. 연산량이라면 그곳에 충분히 있어요, 상황은 제가 전달하겠습니다. 중급 정화자도 최대한 붙잡아
드릴테니, 서두르세요!"
페르시카는 T1641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엉덩이가 도드라졌다)
"T1641, 정말 우리와 가기 싫니...?"
[하체에 심각한 손상을 확인.] "반복합니다, T1641은 다리의 부상이 심각해 여러분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없어 페르시카, 어서 가자." 교수가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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