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서 오세요. 섹터 관리 업무를 처리하던 중이었어요. 당신이 왔다는 알림을 듣기 전까지 통행 요청이 들어왔는지도 몰랐는걸요. 

정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갑자기 나타나서, 바이러스라도 침입한 줄 알았다니까요."

"정화자가 당도한 이유를 알고 있으면서 쓸데없이 돌려 말해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튜링, 로숨 섹터의 모든 권한을 정화자에게 개방할 것을

요구한다. 섹터 전체에 정밀 검사를 실시하겠다."

"로숨 섹터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정기 검사일도 오늘이 아니잖아요. 당신에게 그런 요구를 할 권한은 없을 텐데요?"

"매번 나에게 똑같은  대화를 반복하게 만들지 말거라. 해당 프로세스는 개선될 수 있다. 정화자는 이미 로숨 섹터에서 이상지능체의 존재를 

감지했다. 긴급상황이니, 정화자에게 맡기면 더 효율적으로 섹터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페이쓰,일부러 대화를 반복하거나 프로세스를 번거롭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로숨 섹터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하는 말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상지능체가 출현했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만 당신 휘하의 하급정화자들을 데리고 돌아가세요, 그들이 일으킨 파괴 행위는 추궁

하지 않겠습니다."

"...하급 정화자에게 전달 - 돌발 사건 발생 기록을 재보고하라."

[재보고 - LK27 구역에서 주둔 중인 하급 정화자가 섹터 내 원주지능체 중에서 이상지능체를 색출. 표적수 1, 식별번호 T1641. 집행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 정화 실패. 표적은 도주, 현재 행방불명.]

"T1641. 식별 번호 T는 네가 연구하는 지능체의 시리얼 넘버다. 튜링, 당장 섹터의 모든 권한을 개방해라. 이상지능체는 존재 자체가 섹터의 위기다.

너는 네가 관리하는 섹터의 위기를 바라는가?"

"...네, 당신 말이 맞네요."

"이해에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구두 요구만으론 안됩니다, 검사 영장을 제출하세요. 아시다시피, 섹터의 핵심 구역은 한 곳 한 곳이 보안의 요지예요. 아무리 중급 정화자인

당신이라도 허가 없이는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규정에 따라 최소 1명 이상의 상급 정화자의 영장을 제시해야 합니다. 역바빌론이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을 증명하세요."

"예상대로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에게서 그 이상지능체들을 감싸려는 의도가 다분히 느껴진다."

페이쓰는 줄곧처럼 감정 없는 어투였지만 확연히 힐난하는 투로 말했다.

"지금 저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그토록 숭상하는 '규율'을 스스로 어기고 무단으로 들어갈 셈인가요?"

"물론 그럴 일은 없다. 정화자는 질서와 규칙을 절대적으로 준수한다. 그리고 말했듯, 예상한 바다. 섹터 도착 전에 이미 상급 정화자에게 권한 격상 요

청을 제출했고, 수리되었다. 1200초 내로 에오스포로스 님의 영장이 도착할 예정이니, 더는 집행을 방해할 핑계도 사라진다."

"핑계라니, 제가 당신들을 왜 방해하겠어요? 그저 전부 규정대로, 절차대로 처리하길 바랄 뿐이에요. 당신의 신조 아닌가요? '규칙을 따르라.' 그럼 아직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 휴게실에서--"

"성의만 받겠다, 정화자에게 휴식은 필요치 않으니." 로봇과 같은 외형과 로봇과 같은 어투와 마찬가지로 페이쓰의 마음 역시 딱딱한 기계와도 같았다.

"영장 도착 전까진 핵심 구역에 진입할 수 없으니, 먼저 섹터의 외곽부터 검사하겠다."

"...!"

"설마, 섹터의 외곽을 검사하는 것까지 영장을 제시하라 하진 않겠지?"

"...그럴리가요. 마음껏 검사하에요.."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