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 중 40%가 불법적인 사이버 수단을 통해 자금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세계와 사이버 세계가 점점 더 얽히고설키는 이 시점에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더 이상 모래 속에 머리를 묻어서는 안 됩니다.”

20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사이버 안보 공개토의’를 주재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안보리가 사이버 안보와 관련해 최소한 외부의 동향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공개토의는 사이버 안보를 주제로 열린 유엔 최초의 공식 대면 회의다. 2021년 에스토니아가 화상으로 관련 회의를 연 바 있다. 한국은 6월 안보리 의장국을 맡아 전 세계 핵심기반시설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나 가상자산 탈취 등 불법적 활동을 통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국제평화와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임을 지적하고 이번 회의를 주도했다. 회의에 앞서 63개 유엔 회원국과 유럽연합은 사이버 안보와 관련한 첫 공동 성명을 내고 “안보리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 회원국들은 공동 성명에서 이번 공개토의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유엔에서 사이버 안보와 관련한 공동 성명이 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유럽, 중동, 북미, 중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을 대표하는 국가들이 공동 성명에 동참하면서 사이버 위협의 심각성에 대한 전 세계적 공감대가 있다는 점을 나타냈다. 이들 국가들은 성명에서 “기술의 발전으로 사이버 안보를 위협하는 환경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면서 “사이버 테러는 의료, 해양, 우주, 에너지, 금융 등 다양한 핵심 인프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성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두 국가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공격이 ‘국제안보와 평화에 대한 위협’이라는 국제 사회의 주장에 대해 ‘실질적인 위협이란 무엇인지’ ‘정말로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인지’ 등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정면 대응에 나설수록 사이버 활동에 더 많은 제약이 생기고, 서방 주도의 규범 체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조 장관은 사이버 안보가 실질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북한 사례를 들었다. 그는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대부분은 북한이 사이버 활동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은 디지털 수단을 통해 유엔 제재를 회피하며 대량살상무기의 국제 비확산 체제에 도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보리는 사이버 안보 위협에 대한 명확한 ‘진단’을 거쳐 이 이슈를 안보리 주요 의제로 다루는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또 “악의적인 사이버 활동을 통해 국제법을 위반하는 행위자에게 책임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안보리가 사이버 안보에 대한 작업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는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조 장관은 이날 회의 전 러시아와 북한의 협정과 관련해 “지금 상황에 대해 굉장히 엄중한 우려를 표명하며 러시아와 북한의 협정에 대해 규탄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북한의 군사적 능력을 증강하는 어떠한 직·간접적인 행위도 관련 유엔 제재 결의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라면서 “국제사회는 단합해서 국제 안보·평화에 위해가 되는 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장호진 국가안보실장도 브리핑에서 “정부는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어떠한 협력도 유엔 안보리 결의의 위반이며, 국제사회의 감시와 제재의 대상임을 분명히 강조한다”고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