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3-17 12:00:00      수정 : 2018-03-17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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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근데, 재판장님께 말씀드려도 될까요?”

지난 12일 서울고법 404호 소법정. 이 법원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 심리로 열린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주범 김모(18)양이 대뜸 말했다. 공범 박모(20·여)씨 증인으로 신문을 받던 중이었다.

재판장이 “하세요”라고 하자 김양은 말을 이어갔다.

“‘가짜 기억’이란 개념을 알고 계시나 싶은데요. 그간 저는 꿈이나 상상을 현실로 착각하는 가짜 기억을 많이 경험했어요. 그래서 전 정말 사실이라 기억하는데, (그게 사실이 맞다고) 확답을 드리지 못하겠어요.”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한다’는 선서를 하긴 했는데, 증언의 신빙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는 것. 김양이 언급한 가짜 기억은 무엇일까.

17일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짜 기억은 심리학적으로 ‘해리성 장애’라고 불린다.

덕성여대 최승원 교수(심리학)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을 본래의 자아와 상관없는 것처럼 만들려 시도하다 보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사라지기도 한다”며 “다중 인격이 나타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양 입장에서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반복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곧 현실이라고 여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종의 방어 기제인 셈.

실제로 이날 김양은 박씨 변호인들에게 “이 사건은 1년 전 사건”이라며 “제 생활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기억을 기억하라 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닌가 싶다”고 받아쳤다.

또 “어쩌다 기억이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며 갑자기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김양은 “(범행) 당시 집 욕실의 벽과 바닥을 각각 초록색과 검은색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너무 끔찍해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오열했다.

다만 김양은 다중 인격은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그는 “범행 당시 인격이 A(온순한 성향)와 J(공격적 성향)로 나눠지는 다중 인격 증세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도 “A일 때 박양에게 존댓말을, J일 땐 반말을 쓰고 박양과 대화할 때 주로 J가 출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도 “A와 J가 어떤 식으로 나오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 내내 박씨를 ‘박양’이라고 부르다가 “그때 피고인께서는”이라며 존칭을 쓰기도 했다.

김양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최승원 교수는 “살인 사건이 심각한 스트레스였고 지금도 그로 인한 혼란을 겪고 있는지에 따라 정말 기억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면서도 “아니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차단해 기억나지 않거나 아예 거짓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여러 경우의 수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