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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시리아 내전의 승자와 패자.jpg
2011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낙서에서 시작되어 대대적인 반정부시위와 내전, 테러단체 IS의 출현으로 전세계에 큰 파급을 끼쳤던 시리아 내전은 장장 13년이 지난 2024년 12월 반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음.그 결과 시리아 내전에서 몇몇 국가는 승리하였고 몇몇 국가는 패배했는데 다음과 같음.- 승리 -이번 내전 최대의 승리자. 터키는 시리아 내전 발발 당시 아사드의 퇴진과 반군 지지를 선언하며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시리아 난민을 대거 받아들여 300만이 넘는 난민이 유입되었음. 너무 많은 난민이 유입되면서 터키 국내에서는 반난민 여론이 불을 붙었고 설상가상으로 리라화 폭락까지 겹치며 에르도안은 존망의 위기를 맞이하였음. 그럼에도 IS 패망 후 괴멸직전에 몰린 시리아 반군을 러시아, 이란과 교섭하면서 유지시키고 지원했는데 결과적으로 에르도안의 도박은 대성공하여 잭팟을 터뜨림.시리아 내 터키의 영향력을 확대해 에르도안의 야심인 오스만 제국의 부활에 한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며 눈엣가시 같은 쿠르드족을 손봐줄 기회를 얻었음.시리아 내전의 두 번째 승리자. 이스라엘은 시리아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지만 시리아를 지속적으로 공습하면서 시리아 정부군 및 친이란 민병대, 특히 이스라엘의 숙적인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견제해주었음. 특히 헤즈볼라는 시리아 내전에서 정부군을 도와 아사드를 승리직전까지 이끈 일등공신 중 하나라 헤즈볼라 공격은 반군 입장에서는 숨통이 트인 것.특히 지난 9월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으로 헤즈볼라의 수장인 나스랄라가 이스라엘의 공습에 사망하자 시리아 반군 점령지역에서는 대대적인 축제를 벌이며 무려 '히브리어'로 이스라엘에게 감사 인사를 보낼 정도였음. 수니파 반군이 승리한 이상 이스라엘은 시아파 벨트(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의 한 축을 끊을 수 있게 되었고, 헤즈볼라는 더 이상 시리아를 통해 이란의 지원을 받기 어려워 조직 재건이 한층 더 힘들어졌음. 거기에 시리아와 영토분쟁 중인 골란고원을 자국령으로 확고히 굳힌 건 덤.카타르 또한 이번 내전의 승리자 중 하나임. 카타르는 시리아 내전 발발 초기부터 아사드 퇴진을 요구하고 반군을 대대적으로 지원했는데 내전이 격화되면서 반군이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을 띄자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서방국은 반군 지원을 끊었지만 카타르는 계속 자금과 무기를 지원하였음.2020년대 들어 러시아와 이란을 등에 업은 시리아 정부군이 승기를 잡으면서 사우디를 비롯한 수니파 국가들도 반군을 손절하고 아사드 정권과 관계개선을 모색했는데 카타르는 이에 동참하지 않음. 심지어 아사드 대통령이 아랍 정상회의에 참석해서 연설할 때도 그냥 나가버림.이제 반군이 승리하면서 카타르 또한 반군을 지원한 보답을 받게 되었음. 시리아 반군의 주요 축인 HTS(타흐리르 알 샴, 알카에다 계열)가 카타르 정부 인사와 만난 것도 그렇고 카타르의 숙원 사업인 러시아, 이란을 거치지 않고 카타르를 출발해 사우디와 이라크, 시리아, 터키, 유럽을 잇는 송유관 건설이 현실화되었음.- 패배 -시리아 내전의 최대 패자 1. 러시아는 2015년 9월 반군의 총공세로 몰락 직전이던 아사드 정권을 구하기 위해 IS 격퇴를 명분으로 대규모 군사개입을 벌였고 러시아 덕분에 아사드 정권은 기사회생할 수 있었으며 반군 세력을 괴멸 직전까지 몰고 감.특히 미국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당선되면 IS 격퇴의 일등공신인 쿠르드를 팽하는 모습을 보이자 중동 독재정권 사이에서 러시아에 대한 신뢰가 올라갔고 이는 러시아의 중동 영향력 강화로 이어짐. 시리아 내부에 해군기지(타르투스)와 공군기지(흐메이님)를 보유한 러시아는 시리아 정권의 든든한 뒷배가 되었고 시리아를 통해 중동 및 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음. 하지만 러우전으로 더 이상 시리아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던 러시아는 반군의 공세에 공습 말고 다른 지원을 할 수가 없었고 이로 인해 아사드 정권은 10일 만에 붕괴함. 만일 러시아가 타르투스 해군기지와 흐메이님 공군기지를 잃는다면 더 이상 중동과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행사하기가 어려워질 전망임.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시리아에 개입하지 않는 게 나았고, 설령 개입했더라도 어떻게든 아사드 정권을 살렸어야 했는데 러우전쟁으로 시리아를 돕지 못하면서 시리아 내 러시아 군기지 및 주둔한 러시아군은 이제 터키와 수니파 반군의 자비에 기대는 처지가 되었음.그나마 다행인 점은 시리아 신 정부 또한 러시아와 관계를 척지고 싶어하지 않고, 이스라엘과 터키가 시리아를 둘러싸고 각축전을 벌이면서 러시아 군기지 유지를 위한 협상이 진행중이라는 것. 하지만 푸틴 입장에서는 그냥 철군하고 우크라로 보내는 게 더 이득일 수도 있음(...) 시리아 내전의 최대 패자 2. 시아파 벨트(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의 한 축이었던 시리아가 허망하게 무너지면서 이란은 더 이상 레바논 무장세력인 헤즈볼라 지원이 어려워졌음. 특히 시리아 반군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는 친이란 민병대 및 헤즈볼라에 악감정이 쌓일 대로 쌓여서 이란 입장에서는 아무리 반군과 대화를 하려고 해도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든 상황임.특히 이스라엘 견제의 한 축인 시리아 정권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괴멸 직전에 몰리면서 이란에게 남은 우호세력은 이라크와 예멘의 후티 반군만 남게 됨. 결국 경제 실패로 인한 국민들의 분노와 시아파 벨트의 약화로 인해 이란 정권은 북한처럼 핵개발에 매달릴 가능성이 높음. 북한도 시리아 정권 붕괴의 피해자 중 하나인데 중동에서 한국과 유일하게 국교를 맺지 않은 나라가 시리아였음. 특히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인 하페즈 알 아사드가 김일성과 형동생 하는 사이였고 다마스쿠스에는 김일성 공원까지 존재할 정도임.또한 시리아의 핵개발을 북한이 몰래 지원해주기도 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스파이들이 북한에 파견된 시리아 과학자들을 암살할 정도였음. 내전 당시에는 당연히(!) 아사드 편을 들면서 시리아에 자국 군대를 보내면서 무기를 지원했고 아사드 또한 김정은에게 축전을 보내는 등 북한의 유일한 중동 창구였는데 이게 완전히 박살나버림.그동안 아사드 정권 치하의 시리아는 북한을 배려해 한국과 수교를 맺지 않았는데 아사드가 망한 이상 수교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렇게 되면 북한의 유일 수교국은 팔레스타인 말고는 남지 않게 됨. - 애매 -미국은 내전 초창기에는 아사드의 퇴진을 주장하며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지만 2013년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로 자국민을 학살했음에도 개입에 머뭇거리다 결국 온건 반군이 몰락하고 IS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계기를 만들었음. 이로 인해 오바마 정권은 시리아에 IS 격퇴를 목적으로 마지못해 개입했고 아사드를 상대할 수가 없으니 반군 대신 쿠르드족과 손을 잡았는데 IS가 망하면서 쿠르드족 또한 미국한테 통수를 맞았고 바이든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나마 현상유지를 하는 상황이었음.하지만 미국한테 테러단체로 찍혔던 알카에다 계열 반군인 HTS가 시리아 정부를 전복시키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어쩡쩡한 상황이 되었음. 다행인 점은 HTS가 4년의 휴전 기간 동안 노선을 바꾸어 알카에다와 관계를 단절하고 서방에 우호적으로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미국 입장에서는 잘만 하면 친미 국가 하나 만들 기회를 얻게 된 셈.사실 더 큰 문제는 미국보다는 미녀 여군이 많은 쿠르드임. 시리아 쿠르드는 PKK와 연계가 강해 이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터키와 적대관계를 유지했고 터키 지원 반군인 SNA(시리아 국민군) 또한 전쟁을 벌일 만큼 사이가 안 좋음. 오히려 정부군과는 중립을 유지하였고 극단주의 이슬람 군대인 HTS도 더 큰 적인 아사드를 상대해야 해서 쿠르드군을 자극하지 않았지만이제 터키를 견제해주던 아사드 정권이 몰락한 이상 터키는 기를 쓰고 쿠르드를 조지려고 할 것이고 트럼프 또한 시리아 반군이 승리하자마자 시리아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함. 이제 쿠르드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해 터키에게 굴복하던지, 아니면 터키를 상대할 새로운 동맹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임.- 결론 -아사드 정권의 승리로 끝날 줄 알았던 시리아 내전이 반군의 대승으로 끝나면서 역배(시리아 반군)에 걸었던 터키와 카타르는 대박을 맞았고 정배(아사드 정부)에 걸었던 러시아와 이란은 쪽박을 맞고 말았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미국이 대영제국을 몰락시킨 방법...jpg
미국과 영국. 현재는 혈맹의 대명사라 불릴정도로 강력한 유대관계를 자랑하는 두 국가이다.그럼에도 사실상 미국이 더 우위에 있고 영국이 하위 동맹으로서 미국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는것 또한 사실.[ 1850년대 최전성기 대영제국 지도 ]그런데, 한 때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독립이후에도 한 동안 대영제국으로 미국을 압도했음.그렇다면 대영제국은 왜 이렇게 쪼그라든게 될 걸까. 근본적으로 바다로 영토가 떨어져 있다는 식민체제 자체의 한계가 있음.페니키아 카르타고등 이미 고대기부터 보여줬지만 바다로 떨어진 국가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정체성 분화등으로 본국과 다른길을 갔고.[1931년 캐나다의 독립을 확정지은 웨스트민스터 헌장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의 관계도 사실상 그랬음. 물론 영국은 이전과 다르게 증기선, 라디오등의 교통 통신의 발전으로 그 연결망을 유지하기 더 용이하긴 했음.하지만 이런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래서 관세동맹이라는 제국연방이라는 시도를 했으나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식료품 물가 상승 때문에 본국내 영국인들에게 인기가 없는 정책이어서 실패.[ 2차대전 당시 대영제국 동원 병력중 500만은 영국, 63만은 캐나다, 41만은 호주. 13만 뉴질랜드 ]이런 상황에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식민지가 아무리 광대하다한들 전쟁에 나서는건 사실상 본국의 국력이라는걸 드러냈고 사실 평시에도 대영제국의 국방비를 혼자 88% 이상 감당했던걸 생각하면 예견된 일.[ 2차대전 이후 탈식민지화 ]그리고 양차대전에서 재정 압력을 받고, 취약함을 보여주자 안그래도 이미 흔들리던 식민제국의 균열이 가속화.그러나 전후처리에서 사실 미국이 큰 결정타를 날림. 당시 영국은 당장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식량도 해외에서 오는걸로 의존중이였음.[ 미국이 빌려준 자금으로 영국 gdp 대비 부채가 270% 를 넘어감에도 전쟁 지속 ]여기에 손을 내민게 미국. 하지만 조건이 있었음. 국가 재정을 경영할 자금과 배급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해줄테니 1. 영국 본국과 식민지간의 관세 특혜를 끊고, 2. 미국에 필요한 해외 해군기지를 양도하고3. 영국이 자국 통화 파운드 환율 통제권을 폐기하란것다시 말해 바다와 무역으로 연결된 대영제국에서 바다와 무역을 앗아감. 즉 대영제국은 해체하며 수출 및 환율 정책도 미국의 간섭을 받으란 뜻이었음.[ 당시 영국의 재정지출은 35-40억 파운드였으나 미국의 금전 및 물자 지원은 67억 파운드에 달함 ]당연히 반발이 극심했으나, 체급응 크나 인구 대부분이 가난해 구매력이 없던 인도나 인구 500-700만 수준인 호주 캐나다에게 큰 도움 받을것도 없었고. 결국 영국은 미국의 제안을 수용함. 물론 이런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당장 독일에게 폭격 받는데다, 본국이 말라죽을 판이었고 고마운건 맞음. 그러나, 당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영국인들에겐 매우 자존심 상하던 일이었음.여기에 미국은 " 돈을 이만큼 빌려주니 대영제국 해외 자산도 전부 팔고 영국 국가 재정의 긴축 및 결정권도 미국에게 넘겨라 " 고 주장해서 협상에 나섰던 케인즈 ( 그 유명한 경제학자 맞음 ) 는 이런말 까지 함." 쇠락했다해도 영국과 같은 위대한 국가를, 이렇게까지 파산한 기업을 몰아붙이듯 대우할수 있나? " 며 항변게다가 케인즈가 제안했던 국제통화인 방코르는 미국의 입장에 의해 폐기되고 대신 미국 달러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세계에 통용될 뿐 아니라, 전세계 화폐중 미국 달러만이 금과 통용이 가능한 유일 기축통화 란걸 인정하라며 영국에게 강요했고 절박했던 영국은 이 또한 수용.[ 아비규환이 된 도쿄 ]다른 강대국들은 어땠냐고? 독일, 일본은 애초에 패전국이었고 프랑스는 미국 도움으로 겨우 프랑스를 나치에게서 해방된 상황이어서 사실 입장이랄게 있을수가 없었고.[ 러시아제국 해체 이후 폭락한 교역 비중 ]소련이야 독소전쟁 회복하기도 바빴을뿐 아니라 미국이 소련 경제규모 5배가 넘는 괴물이었고 자본주의 국가들이랑 교역을 별로 안했으니 미국의 우위를 인정하고 넘어감.그리고 이게 바로 오늘날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에 전세계가 눈치보고 전전긍긍해야하는 근본적 이유임.사실 영국에 이런 경제적 수세에 몰린 전례가 없진 않았고 영국은 그럴때 자신의 특기인 강력한 해군력과 해군력을 뒷받침하는 산업력으로 판을 뒤집은바 있음. 아편전쟁과 같이.그러나 이미 미국 해군 규모는 총톤수로 영국의 350% 수준에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해군을 합친것보다 거대했고,미국 제조업은 세계의 50% 가 넘어가는 수준에, gdp는 대영제국 전체의 2.5배가 넘는 세계의 40% 로 역사상 최대의 공업대국이자 경제대국으로 떠오른지 오래였음.게다가 당시 국제 화폐의 기준인 금 또한 미국이란 국가 혼자서 세계에 존재하던 금 70% 이상을 독점.이런 상황에서 배급제를 실시하며 겨우 국가를 굴리던 영국이 할 수 있는건 그저 미국이란 역사상 최강대국의 자비를 읍소하는것뿐이었음.사실 미국이 이렇게 크지 못하게 영국이 견제할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은 남북전쟁이었으나 미국이 노예해방의 성전으로 만들어 그걸 놓치고 미국은 그 이후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1920년대 주요국 gdp ]1872년 영국 본토, 1910년대 식민지를 포함한 대영제국 전체 gdp를 넘기고 1920년대에 이르면 영국 공업력 3배 수준으로 [ 영국의 이익이 미국에 침해당했을때 영국의 반응은 " 미국 공업력 영국 추월한거 안보임? 대놓고 찍어내면 대영제국 해군 제껴버릴거임. 그냥 양보해 " ]이미 영국에서는 1890년대 미국 해군 팽창 이후에 " 미국 해군력이 너무 강해져서 남북미는 미국의 영향권으로 인정 " 이라고 아예 얘기할 정도.그리고 이렇게 거대해진 미국의 손안에 있던 영국은 미국의 제안에 따라 식민지를 해체하는 수순을 밟았고 미국의 푸들이란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미국의 하위동맹으로 전락한것.[ 식민지 해체와 함께 떡락한 영국 파운드 ]이렇게 미국은 역대 최강의 생산력과 자금력으로 그 이전 모든 제국과 강대국들을 몰락시키고 세계와 인류의 운명 결정권을 쥐고 세계를 미국의 입맛에 맞게 재창조.3줄 요약:1. 대영제국은 바다로 떨어져있다는 물리적 한계와, 갈수록 커지는 재정 부담 및 연이어 터진 세계대전들로 이미 파산 위기와 제국 해체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고 있었음.2. 이렇게 상황이 어려워져 배급제 하던 영국에 손을 내민게 미국이었으나 그 조건은 제국내 관세 특혜 폐지, 해외 해건 기지 양도, 환율 통제권 폐기등 무역과 바다로 이어진 제국에서 무역과 바다를 앗아가는 즉 제국을 해체하라는 사망진단서.3. 하지만 절박했던 영국은 이를 수용했고, 미국은 빚을 빌려준 대가로 영국 재정에 대한 간섭까지 요구하자 케인즈가 위대한 영국을 파산한 기업처럼 다룬다고 분노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대영제국 gdp 2.5배, 세계 공업력 50% 이상에 세계 금 보유량의 70% 를 넘기는 역대 최강국이 되버린지라 미국에 굴복.
작성자 : 학생회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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