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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납량특집 건서운 이야기 모음 건끼야아악!!!
1. 요즘에야 공식에서 GUNDAM은 약어고 General Unilateral Neuro-link Dispersive Automatic Maneuver라고 개소리하지만 사실은 처음 기획할 때 토미노가 기동강인 건보이로 정했다가 기동강인은 좀 그래서 기동전사로 변경하고 퍼건이 15소년 표류기풍 이야기던 초기 기획안의 이름 프리덤 파이터에서 따와 건+프리덤 GUNDOM이었다 여기서 DOM은 뭔가 그래서 막는다는 의미가있고 일본어로 발음도 똑같은 DAM으로 변경해서 GUNDAM이 되었다. 2. 건담의 형식 번호 RX-78-2의 R은 연방군의 일본발음 렌포군의 R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지만 건담의 형식 번호를 만든 코마키 마사모부의 말에 따르면 R은 로봇 병기라는 의미로 R(로봇 병기) X(시작형) 78(78년도 개발)-2(2번째 기체) 다. 3. 08MS소대 제작당시 감독은 퍼건에 나오는 구프에서 조금만 디테일을 추가해서 출연시키고 싶었고 카토키는 오리지널 구프의 핸드발칸과 굵은 히트로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신의 디자인으로 리파인한 구프를 등장시키고 싶어했다 둘이 의견 일치가 안되서 누가 구프를 더 잘아는지로 대결해서 결정하기로 정했다. (건평...) 결과는 구프의 다리에는 에어 덕트가 있다는걸 지적한 건붕중의 건붕이 카토키의 승리로 끝났다. 구커또한 처음에는 단순 애니용으로 리파인한 디자인이었지만 나중에 구프와는 다른 바리에이션기가 되었다. 또한 작중에서 히트사벨을 가열하지 않고 쓰는 이유는 노리스가 히트사벨 수명을 늘릴려고 가열하지 않는다고 나중에 설정이 붙었다. 그냥 간지나서 검은색으로 쓴듯 4. SD무자열전 제로의 무자 크로스본 건담의 디자인 응모 콘테스트가 있었는데 크로스본 건담의 작가 하세가와 유이치가 문하생의 이름을 빌려 참가했다는 설이 제기되었다. 당시엔 설마 현역 업계인이 참가했겠느냐는 말과 함께 묻혔지만 나중에 하세가와 유이치 스스로 본인이 맞다고 인정했다. 5. 우리가 아는 MG 옵션팩시리즈 F90은 사이버 코믹스에서 연재된 버전이지만 (나무위키에는 MS사가에서 연재했다고 잘못 써있음) SD클럽에서 연재된 잊혀진 F90이 따로 있다 둘의 내용이 다른지는 모르겠다.. 6. 지금은 짝퉁중에 짱킷이 뛰어난 품질로 유명하지만 80-90년대 한국에선 아카데미 과학이 기동전사 칸담이라는 품질좋은 복제판을 생산했는데 반다이의 런너를 찍어서 금형을 만들고 그런 아카데미의 런너를 또 금형으로 찍어 다른 복제회사들이 쓰는 수준이었다. 위 사진의 아카데미제 V2건담은 원판과 차이가 없는 수준의 명품이라고 한다. 나중에 떠돌던 소문에 따르면 칸담 을 반다이가 소송 걸지 않고 눈 감아주는 대신에 금형을 폐기하거나 강남모형이나 세미나과학 등으로 넘겼다고 한다. 이는 아카데미와 반다이는 오랜 밀월관계였다는 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고대에 나오던 1/48 밀리터리 라인업 제품들은 반다이에서 설계해 아카데미에서 생산한 제품들이었고 일본에서는 반다이, 한국에서는 아카데미 상호로 판매되게 된다. 하지만 반다이가 건프라에 집중하고 밀리터리 시리즈를 중단하다시피 하면서 생산 개발이 중단되었고 때문에 벤츠 트럭 같이 개발이 진행되던 일부 아이템은 반다이 상호로 나오지 않고 아카데미 상호로만 발매되는 등의 사태도 발생 또 칸담이 유행하자 반다이 측에서는 관계자들이 입회한 자리에서 직접 '칸담' 제품의 금형을 폐기하고 이런 품목을 재생산 하지 않는 조건으로 반다이의 건프라를 독점수입하는 권리를 아카데미과학에 넘긴다는 계약을 체결해 3년마다 갱신했었다 한다.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반다이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금형을 망치로 부수는 식으로 폐기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건프라의 경우도 아카데미 칸담이 생산량이 부족하던 반다이 건담을 대신해 일본으로 수출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실제로 초기 건프라의 경우, 1/144, 1/100 건담이 당시 일본 국내 생산분만으로는 수요에 맞출 수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한국에서 생산해서 일본으로 가져갔으며 1981년 아카데미에서 국내에 판매한 퍼스트 키트의 실드 뒷면에 당시 반다이 상표가 그대로 양각되어 있던 것이 그 증거 라고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생산분에는 이 부분이 깎여나간 채로 성형되었다는 증언이 있다. 7. 기동전사 건담 Z 첫번째 오프닝에선 이상한 MS의 실루엣이 지나쳐 가는데 이는 제작당시 아직 결정되지 않아 혼란하던 Z디자인의 흔적으로 주역기가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방영을 시작해서 결국 3쿨에 Z가 등장하기로 정하고 건담 MK-II로 때웠다. 작중에 등장하는 건담 MK-II나 사이코 건담도 Z디자인안 중 하나를 활용해서 나온 MS들이다.8. 건담 후속작 Z건담은 왜 Z일까? 당시 건프라로 때돈을 벌던 반다이는 MSV3기를 마치고 MSV4기 까지 계획하고 금형까지 팠는데 조기종영으로 빛을 보지못한 MS설정등이 있는 토미노 메모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와 MSV 4기는 폐기하고 토미노 메모를 차용한 MS-X를 새로 만들기로 정했다. V->X 마침 반다이 측에서는 선라이즈에 기동전사 건담의 후속작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조기종결에 불만을 품고 있던 선라이즈 측에서도 이것을 수락하며 영 탐탁지 않아하던 토미노 요시유키를 설득 모빌슈트 배리에이션 페즌이란 명칭으로 라인업 전개가 시작되었다. 원래는 만화판을 코단샤에서 출판하고 관련 건프라를 반다이에서 제작한다는 계획이었으나 "이렇게 외전만 줄줄이 내는 것보다 아예 후속 TV 애니메이션을 만들자"라는 의견이 힘을 얻으면서 선라이즈가 기동전사 제타 건담을 만들게 되고 MS-X는 구상 단계에서 엎어지게 된다 그래서 당시에는 MS-X의 프라가 나오지 못했으나 가르발디나 드왓지같은 애니메이션 연관기체들은 프라로 나왔는데 선라이즈랑 MS-X팀간 소통 문제가 있어서 기껏 만든 MS가 애니에 똑같은 이름으로 나와서 이름과 디자인을 변경하기도 했는데 그 디자인 변경이 있던 MS가 가르발디 알파다. 원래는 다른 디자인 이었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MS-V-> MS-X -> Z 또다른 이유로는 라는 말이 있기도하다 2라서 Z라고 (사진출처:디제의 애니와 영화이야기) 9. 이제부터 진짜 건서운 이야기들을 시작하겠다. ZZ건담과 바운드 독 THE O등의 걸출한 디자인을 만든 레전드 메카 디자이너 코바야시 마코토는 그의 재능을 뛰어넘는 개쓰레기 인성으로 건담판에서 영구퇴출 당했는데 간단하게 그는 초극우로 조선인이 해방당시 일본인을 학살했다거나 일본에서 외국인 추방은 당연히 해야한다고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으며 재일한국인 작가 유미리를 재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중이 짓해가며 직접 괴롭히기도 하고 트위터에서는 팬들과 키배를 뜨면서 극우가 아니더라도 사건사고를 사방팔방에서 일으키고 다녀 안티만 남았다. 최근에는 야마토 부활편부터 참여해서 야마토 2202를 감독과 함께 조져먹었는데 오로지 그가 부감독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애니메이터가 탈주해서 2202의 작화가 크기 바뀌었다는 말도 있다. 심지어 2202 블루레이를 홍보하며 지금 사면 (사망한) 이시즈카 운쇼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시체팔이를해 욕을 쳐먹고 팬들이 퇴출 서명운동을 할정도가 되어서 감독과 나란히 잘렸다. 신기하게도 이런 인간도 결혼을 했는데 아들 이름을 자신이 디자인한 디 오 에서 따와 코바야시 지오라는 DQN네임으로 지었다. 아내등의 반대가 당연히 있었을텐데 참.... 메카 디자이너 계약상 이 사람이 디자인한 건담의 프라를 사도 이사람 한테 수익이 가지 않으니 안심하고 사자 10. 한 때 한국에서 돌아다니단 토미노 어록중에는 역샤당시에 키타즈메 히로유키의 퀘스 파라야 초안을 보고는 [(중딩이) 이런 퀘스 파라야의 거기를 핥고 싶다는 생각이 들겠어?!] 라고 말했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이건 한국에서 와전된 발언이고 실제로한 발언은 ['이런 퀘스 파라야의 보■는 난 못 핥겠어!]이다... 출처는 1999년에 출간 된 '사상최강의 오타쿠 좌담회'로 키타즈메 히로유키. 오카다 토시오와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회의를 했을 당시 나왔던 말이라고 한다. 오카다의 증언으로는 저 발언 외에도 역샤 제작 당시의 토미노가 틈만 나면 파라야의 보■ 타령을 했던 것 자체는 사실로 샤아와 대화중인 퀘스의 표정 묘사가 마음에 들지 않자 ['이 퀘스 파라야는 보■가 안젖어있잖아! 퀘스 파라야는 샤아의 앞에 서면 보■가 젖어버린다고!'] 라면서 화를 냈다고 한다. 11. 국내 1세대 건틀딱들에게는 이상하게 Z건담이 인기있는데 애니가 어두워서 유치한거 보는게 아니라 고차원적인거라고 말할 수 있었고 지금의 지쿠악스처럼 퍼건보다 MZ했다든지 여러 이유가 있지만 Z에 매력을 느낀 요소중 하나는 티탄즈가 한국의 군사정권을 참고했다는 루머이다 이 루머는 Z 제작시기등을 봤을 때 매우 그럴듯했고 한동안 한국에서 정설로 통하여 돌아다녔다. Z가 한국에 방영되지 못한이유가 티탄즈가 군사정권이 연상되서라는 그럴듯한 말도 붙어서 말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생각보다 "좋은 일본문화 받아들이자"와 한류열풍이 불기전의 한국역사는 매우 마이너했고 정말로 토미노가 한국 군사정권을 참조한걸로 생각한 1세대 건덕들이 질문하자 토미노는 '기동전사 Z 건담'의 내용이 당시의 한국 군사정권과 비슷했다는 얘기를 오늘 처음 듣고 좀 놀랐습니다. 우연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 되었군요. 저는 어디까지나 작품 속의 지구연방이나 지온이라는 체제에 대해서 생각했을 뿐이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전쟁을 하는 나라를 그리기 위해 그 나라의 정치나 군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사상 투쟁이나 권력 투쟁 등 조직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을 뿐입니다. 단지 이야기가 지닌 보편성 때문에 한국 측 수입 업자들이 당시 상황에서는 수입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죠. 확실히 장난감 회사의 선전인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군대나 군인이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놀라지 않을 어른은 없을 겁니다. 라고 뉴타입 2008년 11월호에서 이야기했다. 12. 곧 한국에서도 극장에서 볼 수있는 F91의 제작당시에 선라이즈는 경영난을 겪으며 망할위기였다. 토미노는 동정과 의리의 감정으로 망하지 않게 내가 건담하나 만들어 준다는 느낌으로 F91을 만들었고 선라이즈를 살리겠다고 자신이 가진 건담 저작권의 상당수를 선라이즈에게 넘겨줬다. 근데 선라이즈가 망하면서 토미노에게는 말도없이 선라이즈와 건담 저작권을 통으로 반다이에게 주며 의리남 토미노의 뒤통수를 걷어차버렸다 이에 대해 선라이즈 경연진은 토미노가 오해를 하고있다고 발언했다, 미친놈들. 13. 이후 V건담을 만들게된 토미노는 스폰서한테서 바이크 전함을 만들라거나 적 MS의 눈을 고양이눈으로 하라거나 별 미친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았고 완구흥행을 위한 요소를 대폭 넣을 것 원래 2쿨이던 스토리를 대폭 늘릴 것 1화에는 무조건 MS가 나와야하니 4화를 편집해서 1화로 방영할 것 등 별별 지랄을 하며 간섭을한다. 토미노는 거의 20여 년간 이 디자인들에 대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한 건프라 전시장에서 본 창의적인 모델러들의 디자인과 영화 어벤져스의 헬리캐리어를 보고서 애니메이션이라면 더 자유로운 디자인을 할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어 해탈했다고 한다. 디자인이 논란이 되자 토미노는 반다이의 현장 개입에 대한 반항이었다며 자신의 책임이라 발언해 논란을 종식시켰지만 후에 발매된 기갑전기 드라고나의 DVD에 동봉된 자료에선 반다이 측에서 제안을 따른 것이라 거론하고 있으며 훗날 간행된 '이것이 V 건담이다'라는 서적에선 "지금도 선라이즈의 고위층 놈들이 이 일에 대해 일절 사과가 없다. 용서할 수 없다"라는 발언을 내놓았다. 엄청난 스폰서의 개입과 실패에 좌절과 분노를 겪은 토미노는 자신의 에세이 '턴에이의 치유'에서 밝힌 바로는 선라이즈 사옥을 사제 폭탄으로 폭파, 건담 캐릭터들이 SM을 하는 그림의 삐라를 다수 제작해서 선라이즈로 가는 길가에 쫙 붙이는 것까지 기획했었다고 한다. V 건담의 제작과 반다이의 간섭으로 토미노는 우울증과 자폐증에 걸려서 그 뒤로 3년 동안 감독은 맡지 않게 된다. 일은커녕 외출도 식사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태였다고 한다. 정신병이 왔을 때 퍼즐보블만 계속했다고 하며 그 게임이 없었으면 자신은 완전히 미쳤을 것이라고 한다. 반좆이 좆같은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니 놀랄 필요 없다. 14. 건틀딱들에게 SEED가 쳐맞던 엔하위키 시절 SEED나 각본가 모로사와 치아키 평가란은 매우 험악했다. 어느정도냐면 모로사와 치아키가 2008년 부터 자궁근종등 여러병을 투병하다가 대동맥 박리로 사망하자 어떤 사람은 잘죽었다는 의견도 있다라는 선넘는 서술이 있었다. 딱히 저게 아니더라도 SEED관련 평가란은 매우 부정적으로 험악한 서술들이 많았고 현재는 나무위키를 거치며 정상화되어 중립적인 시선의 서술들만 남아있다. 당시의 SEED팬들이 지금도 건틀딱을 혐오하는 이유의 편린이다. 아 건서워라 건서워 건끼야아아아아아악!!!!!
작성자 : 건틀건틀고정닉
역대 금융위기의 역사
"it's only when the tide goes out that you discover who's been swimming nacked""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벌고 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Warren buffet-시간 순으로 정렬하였고 모든 금융위기 및 거품이 있는건 아님 참고바람 ㅇㅇ1636년 튤립파동최대낙폭 -95~99%17세기(1636년)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과열투기 현상으로 사실 상 최초의 거품경제기록에 따르면 튤립 뿌리하나에 8만 7000유로 (약 1억 6천만원)에 거래되었을 정도로 거품이 형성됨그러나 1636년 2월 3일 튤립의 가격이 폭락했고 지불할 수 없는 채무를 가진 사람이 3000명이 넘었을 정도이며이 파동으로 네덜란드가 영국에게 경제대국의 자리를 넘겨주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고 함.1907년 은행 패닉최대 낙폭 약 -50% 규모미국은 1906년 당시만 하더라도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았음 그러한 상황에서 10-20년안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함.은행들은 중앙은행이 없으니 리스크 관리도 엉망이고 자산관리도 부실하게 해도 제재도 안당함.그러던 와중 미국에서 산불이 발생 (샌프란시스코 화재 사망자 3천명 규모)많은 미국인들은 영국의 화재보험사를 이용중이었고 영국보험사가 지급할 금액은 7천만달러 수준이에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기준금리를 7%까지 올림매우 높은 기준금리로 미국의 금이 영국으로 흡수되는 상황까지 발생함결국 연쇄뱅크런이 터짐1929년 월가 대폭락 이전까지 '대공황'이라 불리다가 월가 대폭락 이후 1907년 은행패닉으로 불림1929년 대공황최대 낙폭 -90%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 경제호황기를 누리던 미국의 성장에 제동을 건 역사적 사건아직도 그 원인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고 1차 세계대전, 보호무역론, 독일의 초인플레, 농산물 가격하락-공산품 가격상승신산업(소비재)로의 변혁, 국제통화기금의 부재, 지출가설, 통화승수 뻥튀기, 정부실패 가설등이 존재할 정도자본주의의 사회전체를 뒤흔든 사건이자 미국인 10만명이 소련에 망명신청을 내었을 정도로 전체주의에 위협받던 사건제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마무리 됨.1973년 시작된 석유파동1차 오일쇼크 당시 -35%, 2차 오일쇼크 당시 거의 영향없음이랍 산유국의 석유무기화 정책과 이란 혁명에 따른 정치적 불안으로 발발된 쇼크'공황'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민망할 정도의 하락이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브레튼우즈 체제 성립 이후서방 선진국들이 누려오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경제성장등의 자본주의 황금기의 종말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아 그냥 넣어 봤음1987년 10월 19일 검은 월요일단 하루만에 최대 낙폭 -22.6%다우지수 역사상 하루최대 낙폭으로 이를 회복하기까지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됨붕괴의 원인으로 주가고평가, 금리상승등이 있지만 시장이 하락세를 보일 때 대규모 매도를 촉발시킨 컴퓨터 프로그램의 도입으로일종의 도미노 현상처럼 우르르 무너짐 사태이 사태이후 서킷브레이커, 사이트카 등이 도입되어 갑작스런 낙폭을 방지하는 장치들을 마련하는 계기가 됨.(근데 이것도 공황이긴 좀)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최대낙폭 약 -80%플라자 합의 이후에 엔화의 가치가 상승하였고 일본이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기록하자(일본 상품의 매력도 하락으로)일본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 부동산 성장정책을 펼침문제는 부동산에 적당히 돈이 몰렸으면 다행인데 '너무 많이' 몰리자 집값은 1989년 기준 오사카시 평당 200만엔, 미나토구 평당 1900만엔,스기나미구 평당 350만엔까지 올라갔고1990년대 일본이 기준금리 인상등 긴축정책에 들어가자 대규모 거품이 동시다발적으로 커지며 일본에 잃어버린 30년을 안겨준 사건놀랍게도 2025년 5월 2일 닛케이 지수는 이 당시 최고점보다 밑에 위치하고 있음2000년 닷컴버블최대 낙폭 -78%1995년 부터 시작된 인터넷에 관한 무분별한 투자와 투기로 주가지수는 급당한 반면 대중에 설치된 인터넷 서비스들은아직 대중화 되지 않았으며 마땅한 수익처도 마련하지 않은 채투자금을 받아 서비스를 확장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보니 버블을 더욱 키우게 됨.Cisco, 퀄퀌, 마이크롬은 -90%가량, 아마존은 -95%까지 하락하며 최대의 낙폭을 보여주며 대부분의 인터넷 관련기업은 파산하거나 부도처리 되었음.여담으로 워렌버핏이 가장 욕을 많이 먹던 시기로 당시 그 온화하던 워렌버핏이 얼마나 빡쳤는지 snp500지수 풋옵션을 행사해서 6천만달러를 범비단 미국 뿐만이 아니라 일본, 한국, 영국, 프랑스, 독일등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터넷 버블로 평가받음참고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주가는 당시 고점대비 5~6배가 오름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1년까지 지속)코스피 -76%1997년 7월 태국 정부가 미국 달러사이에 고정환율제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태국 바트화의 가치가 폭락했고미국정부는 미국내 경기불황이 어느정도 끝나가자 이를 해결하기 연준 의장인 앨런 그리스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달러의 강세가 심화되자 아시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금융위기 한국은 이 사건으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였고말레이시아의 경우 익일몰 금리가 8%에서 40%까지 상승함. 미국도 다우지수가 7.2%정도 하락하는 소소한 영향을 받음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최대 낙폭 다우지수 -50%2001년부터 시작된 CDO상품의 무분별한 확대와 그에 따른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의 확대로 미국이 겪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최대 경제위기서브프라임은 은행고객분류 기준 신용등급이 낮은 비우량 대출자를 의미하며 모기지는 주택담보대출을 말하는데 쉽게 말해돈을 갚을 능력이 안되는 사람에게 집을 담보로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주고 심지어는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끼리 묶어 높은 신용등급처럼보이게한 상품까지 만들어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여 진행한 결과 주택가격에 상당한 거품이 형성되었다.사건의 발달로 앨런 그리스펀이 미국 국채로 안정적으로 돈을 벌던 투자자들을 아니꼬워 하자 미국 투자자들은 국채가 아닌 모기지 상품에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러한 광풍이 가속화 되어 더더 많은 투자자, 개인들까지 합심하여 주택버블을 만들어나감번외 12001년 테슬라 주가폭락고점대비 -72%번외 2메타(구 페이스북) 주가폭락고점대비 -76%
작성자 : 메타물린놈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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