엮어서 책내도 되겄어

시놉들이 감성 시 한편 뚝딱이야

최호종

<한 줌 흙으로 (Into a Handful of Earth)>

삶의 충만함이 

흔적이 되는 게 두려워 

시간을 물고 달아났다 

환원되어 가는 나를 보며 

죽음이 내게 물었다 

어떻게 살 것이냐

<영원한 악몽>

내게 유일한 평안이라 생각했던 꿈이

겹친 세계로 침몰하는 배가 되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나를 대변하는 것들이 점차 사라질 때 

지독한 악몽의 고통과 역동만이 

내가 아직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강경호

<EVERYTHING>

떠난 후 빈자리 

뭉개진 새싹인 줄 알았던 그 자리가 

전과 다른 형태로 가득 피어나네 

아리고 아름다운 일렁임 

네가, 내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했다면 

이 꽃을 줄래 

기꺼이

<구원일지>

눈앞에 놓인 거라곤 검정인 게 두려워

눈을 감은 내게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다

모든 것이 서리고 공허해서

차가운 그 손조차 무서웠지만

그 손이 너무나도 따스해서 나는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 사람이 물었다

“왜 항상 얼굴을 가리고 있나요?”

그제야 알았다

나를 가린 건, 내 빛을 가린 건 나뿐인 것을

눈을 떠라 당신이 보일 수 있게

만개해라 당신을 남길 수 있게

구원해라 당신이 받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