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반짝이는 샹들리에의 빛이 흐른다.

명문 가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가문의 연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화려했지만, 동시에 차가웠다.

릴민지는 홀 한가운데 서 있었다.

검은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그는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그는 가문이 정한 후계자, 그리고 모두가 우러러보는 남자였다.

“릴민지 님, 오랜만입니다.”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흰색 슈트를 차려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그의 표정에는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칸북이.

릴민지는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오늘, 그는 칸북이와 결혼을 약속하는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이 결혼이 아니었다.

“오랜만이군, 칸북.”

“이제 정식으로 인사해야겠죠. 저희는 곧 가족이 될 테니까요.”

칸북이는 차분했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었고, 그가 이 결혼에 대해 별 감정이 없다는 듯 보였다.

그러나 릴민지는 한 가지를 알았다.

그 역시 이 결혼을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릴민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익숙했다.

릴민지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를 처음 만났다.

사막여우.

어두운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마치 사막 위의 모래처럼 깊었다.

그는 칸북이와 달리, 너무나 감정이 넘쳐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릴민지는 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막여우는 릴민지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사막여우라고 해.”

짧은 대답.

그러나, 그 순간 릴민지는 깨달았다.

이 남자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존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