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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2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의 활약상
프랑스(연합국)이전에는 쉬쉬해줬지만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하자선전포고를 하는 모습는 6주만에 개따먹히고 항복당사국인 독일, 미국,소련 같은 연합국들마저영국과 함께 세계 주요 열강이였던 프랑스의 허무한 멸망에어이가 털려버림결국 영국으로 망명 정부를 세우며레지스탕스를 설립, 비밀 결사를 중심으로독일한테 끈질기게 저항함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버스타고 독일에게서 해방됐음대영제국(연합국)유럽을 사실상 지배하는 데 성공한 독일이 마지막 남은 영국이유럽 동맹국들이 전부 함락됐음에도 항복하지 않자 바다사자 작전을 실시한 히틀러영국 본토를 향해 침공을 대대적으로 일으켰으나아무리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 해도 대영제국은 대영제국으로독일의 상륙을 계속해서 막아내고 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어버림영국 본토 항공전히틀러가 영국 침공을 접게한 사건으로, 영국 본토에서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영국이 버텨내면서 독일이 철수하게 됨이렇게 홀로 외롭게 유럽에서 독일의 침공을 막아낸 영국은미국이 참전하기 전 연합국을 멱살 캐리하며 마지막 전성기를독일과의 전쟁으로 소모시킴중화민국(연합국)중일전쟁만주사변으로 만주국을 괴뢰국가로 세운 일본제국의 군부가폭주하여 중원까지 침략해온 전쟁사실상 주변국가들이 전부 식민지인 상태에서 연합국 아시아의영국 포지션으로 일본과 대항하여 싸움이때 공산당의 마오쩌둥은 도망만 다녔고, 중화민국의 장제스는일본과 계속해서 대항하여 압도적인 물량과 미국의 지원으로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어서 연합국의 승기를 가져오지만전력이 파탄나버렸기에 이후 국공내전에서 패배를 하게 된원인이 되어버림소련(연합국)독소전쟁영국 침공에 실패한 히틀러가 결국 결단을 내려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한 사건독일의 압도적인 전격전에 물량만 많은 소련은 쭉 밀리지만소련의 지형적 이점과 아직 항복하지 않은 영국과 연합국들과의양면전선에 의해 이도저도 못하고 히틀러의 ㅂㅅ같은 에고때문에결국 독일이 패퇴하면서 그대로 쭉 항복까지 이어짐만주 전략 공세 작전유일하게 남은 추축국인 일본제국이 원폭 2방 맞고 완전히 패망하기 직전에 만주국을 무너뜨리고 일본열도까지진출하려는 소련군을 보고 결국 무조건 항복을 결정하게 되며2차 세계대전의 완전한 종식을 결정하는 사건이 됨미국(연합국)일본의 진주만 공습에 의해 선전포고를 날린 미국과일본 관동군 사이에 열린 태평양 전쟁유럽에서 독소전쟁이 한창이였다면, 아시아에서는 태평양전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장기전이고 스케일도 방대했음사실 질적으로도 물량적으로도 미국이 우세했지만 일본의말도안되는 변수로 가득한 전술때문에 3년 동안이나 질질 끌리며미국도 엄청난 애를 썼던 전쟁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세계 최초이자 마지막이라는 핵 사용이 허가되었던 사건패색이 압도적으로 짙었던 일본이였지만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싸우겠다는 군부에 더 이상 질려버린 미국이 결국 금단의 무기를투하하기로 결정함 이 원폭 2방의 투하로 인해 그 천하의일본 군부마저 무조건 항복을 결정할 정도의 위력을 선보임이탈리아(추축국)나치독일, 그리고 연합국 사이에서누구 편에 붙을지 선택권이 있었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로마제국을 재현하겠다는 목적으로 독일에 붙고 추축국이 됨이후 영국, 프랑스에게 동시에 선전포고를 날리고 이후에도 지중해를 비롯한 아프리카까지, 진짜 꼴리는데로선전포고를 남발해버린 이후에독일에게 유린당하여 항복 직전인 프랑스 남부로 침공함그런데...프랑스의 산악사단에 막힌 열강 이탈리아의 군대심지어 그것도 독일에게 전부 갈려버려 잔당중에 잔당뿐이였음만약 북프랑스의 독일군이 프랑스의 항복를 받아내지 못했다면오히려 이탈리아가 프랑스군에게 본토를 침공당했을 판이였음몰타 항공전이탈리아의 선전포고 남발로 추축국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점령하지 못했음 이로 인해 아프리카 군단은 보급 문제가 생기고이후 연합국에 의해 괴멸됨 또한 몰타섬에서도 최악의 졸전을펼치며 참패그리스 침공이탈리아의 선전포고 남발로 독일군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되는데 이탈리아는 21개 사단을동원해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그리스군 13개 사단 반격에알바니아까지 후퇴해 역관광 직전에 몰림그리스는 사실상 친 독일적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이 사건으로 연합국 측에 가담했음 결국 독일은 이탈리아 똥치우느라 공수부대를 투입해 대신 전선에 뛰어들게 되고괜히 적만 늘리고 개못싸운다음에 동맹국에게 민폐만 존나 끼쳐버리면서 추축국 패망에 사실상 1등공신이 되어버림이집트 침공그리스에게 개같이 두들겨맞은 이탈리아는 화풀이 겸이집트에게로 화살을 돌림 사실상 영국의 보호령이였던 이집트 왕국을 침공한이탈리아군 7개 사단은 영국군 2개 사단의 반격을 받고 패주13만명이 포로가 되고 이탈리아령인 나라까지 잃는다오죽하면 영국군은 이탈리아군이 항복을 너무 많이 해서제발 그만 항복해주라고 했을 정도로 싸움에서 지자마자바로 꼬랑지 내리고 투항해버림이에 독일은 다시 이탈리아 똥 치우느라 소련 침공을 위한바르바로사 작전을 미루게 되고 손해만 보게 됨25만명 이탈리아군 병력은 영국군 3만 5천과 전투, 튀니지에서항복해버림독일과 합세해 동부전선에 합세한 이탈리아는 소련군의 공격을 받자 바로 모든 병기를 포기하고 패주했음이쯤되면 연합국에서 보낸 첩자가 아닐 정도...결국 더 이상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하고항복하는 이탈리아추축국 3인방 중에 유일하게 웃으면서 항복한 나라사실상 항복이고 바로 연합국으로 갈아타버림독일은 결국 눈물 콧물 쏙 빼고 이탈리아 도와줬지만연합국에게 프리패스 오픈 해버렸으니 히틀러 개같이 오열일본제국(추축국)만주사변조선 합병까지는 오히려 일본을 편들며청나라와 러시아를 압박했던 영국과 미국이였지만일본 본토의 명령마저 재끼고 군부의 독단적 판단으로만주를 집어삼켜버리며 이후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였던서양 열강들마저 적으로 돌리고 군부가 나라 전체를 집어삼키면서2차 대전을 위한 준비를 끝마침중일전쟁무서운 속도로 중국 본토까지 밀고 들어가는 일본 관동군중화민국 영토의 절반 가량을 점령하며 대륙을 철저하게짓밟고 능욕하게 됨남방작전미국이 계속해서 재재를 하자 눈깔이 돌아버린 군부는유럽 열강들의 식민지가 깔려있는 동남아를 먹어버리자는작전을 개시, 여기서 미국과 영국 최고 함대들을 격퇴시키는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결국 동남아 식민지들을 전부 빼앗고대동아연방 실현을 코 앞에 두지만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된 일본은대표적인 작전으로 알려진 카미카제(전투기를 그대로 적 함대에꼬라박는 자살 특공대)같이 미군도 ptsd가 올 법한 기상천외한작전들을 펼치며 3년 간 초강대국 이라는 미국과 전쟁을 펼침본래 목적은 진주만 공습으로 동양에서 미국의 영향력만 없애고협상으로 끝낼 작정이였지만 처음으로 외부 세력에게 기습으로선전포고 없이 타격을 입은 미국의 성질을 건드리게 됨도쿄 대공습 + 원폭 2방 + 소련 및 연합국의 열도 상륙이라는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일본은 결국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이로써 전쟁을 종결나게 됨나치 독일(추축국)오스트리아 합병히틀러가 태어난 나라인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며폴란드 침공의 초석을 다진 사건무혈입성으로 나라를 합병한 유명한 사례폴란드 침공자신들과 비슷하게 국제사회로부터 외면을 받던 소련과불가침조약을 맺고 동시에 폴란드를 나눠 따먹은 사건이로 인해 2차 대전이 발발하게 됨프랑스 침공유럽 열강 프랑스를 순식간에 집어삼키며큰 충격을 준 사건이후 전격전을 통해영국을 제외한 전 유럽을 밀어버리는 업적을 세우고히틀러의 야망은 성공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기습 침공한 독일군초기에는 압도적인 전격전으로 소련마저 압도한다하지만 소련의 홈그라운드 지형을 이용한 전술, 추위에 인해큰 패착을 겪게 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펼친 연합국까지더해지며 결국에 양면전선을 무리하게 펼치다가 독일 본토까지 밀리게 되어버림결국 베를린까지 다다른 연합국에 큰 충격을 받고히틀러는 권총 자살을 했으며 독일은 공식적으로 항복을 하며일본제국을 제외하고 온 추축국이 연합국에게 굴복당하게 됨
작성자 : ㅇㅇ고정닉
[요동] 다롄에서 투먼(도문)까지 -4完- 도문대교와 두만강,옌지(연길)
이전편-[요동] 다롄에서 투먼(도문)까지 -1- 신의주 접경 통상구 '단둥'- 이전편 [요동] 다롄에서 투먼(도문)까지 -2- 고구려 문화의 도시 집안('지안') 이전편 [요동] 다롄에서 투먼(도문)까지 -3- 백두산 천지와 금강협곡쑹강허에서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데 성공하고 여차저차 돌려차해서 87호 중조국경지역, 도문 통상구에 도착했습니다. 이틀 묵어갈 도문 동관 호텔. 도문에서 외국인 주숙등기가 가능한 2개 호텔 중 하나인데 여기서 약간 이슈가 있었습니다. 북중(중조) 육로 국경 출입을 담당하는 도문해관 투먼(도문)은 북중러 국경이 만나는 훈춘의 팡촨(방천)을 제외하면 가장 동쪽의 북중국경이며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과 도문대교로 이어져 바로 건너편의 남양로동자구에 거주하는 북한 노동자와 중국의 물자가 도보와 차량으로 오고가는 국경대교입니다. 이곳의 두망강변은 강폭이 지안의 압록강변보다 좁고, 겨울엔 수위가 매우 낮아지며, 혹한의 삭풍이 몰아치면 단단하게 얼기 때문에 탈북자 감시가 강한 지역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북중 육로접경지 중 강폭이 가장 좁고, 수위가 낮은 곳입니다. 그래서 강변의 철조망도 무척 견고합니다. 강점기 때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넘어 만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도문북역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한참 걷고 해서 도착한 곳은 도문에서 외국인 주숙등기가 가능한 2개 숙소 중 하나인 동관호텔인데 여기 저기 색동저고리 등등으로 꾸며져 있지만 주인 부부가 조선말을 하지 못 합니다. 여권을 주고 체크인을 시작했을 때 한국여권을 주자 낯선 것 같이 당황하여 아주머니께서 컴퓨터 사용이 익숙치가 않으신가? 했지만 한참을 지켜보니 뭔가 공안 주숙등기 입력 중에 계속 오류가 나는 것 같습니다. 한자 이름을 달라, 중국 전화번호를 달라 하더니 아저씨까지 오셔서 머리를 싸매며 1시간을 끙끙대셨지만 결국 주숙등기에 실패하고 짐만 먼저 방에 놓아두고 서둘러 도문대교로 달려갑니다. 도문도 20대의 기억에서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꽤 기억의 파편들을 끄집어낼만한 모습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처음 하얼빈-치치하얼을 거쳐 2006년즈음 도착했을 땐 한국인도 도문해관 직원과 동행하여 도문대교 중앙의 노란색 국경선까지, 일과를 마치고 남양로동자구로 돌아가는 북한 노동자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간 남북관계에 뭔가 적신호가 들어올 때는 아예 입구까지 접근이 금지되고 해제되는 반복을 거치다가 팬데믹을 거친 지금은 다시 접근이 원천 봉쇄되어 관람료를 낸 중국인에 한해서 대교 진입이 가능하게 바뀌어있었습니다. 도문해관 옆, 도문대교를 통제하고 있는 변방출입검사장, 굳게 닫혀있었습니다만 도문대교를 통해 온성군으로 넘어가려는걸로 보이는 사람들이 주차장에서 보따리를 한아름 내려서 건물로 들어가는걸 봐서는 해지기 전까지 입,출경 업무가 이루어지고 있는걸로 추측은 됩니다.두만강변에서 성업중인 한복 대여소 아이시떼루 도문, 뒤로 보이는 옥색의 북측 건물들 도문 두만강 통상구는 북중 육로접경지 중 강폭이 가장 좁고, 수위가 낮습니다. 그래서 강변의 철조망도 무척 견고합니다. 주차장에서 보따리짐을 내려 온성군으로 걸어 출경하는 사람들, 한땐 저 중간까지는 해관 직원의 동행으로 걸어 가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철조망은 견고하지만, 바로 철조망 앞까지 산책로가 뻗어있습니다. 87호 중조 국경비석 두만강 나루터. 건너편에 보이는 북측 건물들 북측 도로를 달리는 뜨락또르 도문대교 코앞 변강호텔, 외국인 주숙등기 가능한 2개 숙소 중 하나인데 몇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 피했고, 후회했습니다 ㅡ,.ㅡ; 겨울이 다가오고 있어 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이런 대형 유람선은 운행하지 않고 소형 유람선이 사람들을 태우고 두만강을 오고갑니다. 강폭이 좁고, 수위가 낮아지는 겨울의 두만강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걸어서 넘을 수 있기에 중국측 두만강변은 매우 견고한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습니다. 그래도 그 철조망 코앞까지는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어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풍경입니다. 바로 이 풍경을 앞에 두고 도문에서 외국인 주숙등기가 가능한 2개 숙소 중 나머지 하나인 변강호텔이 있습니다. 이곳은 시에서 운영하는 국영 초대소라 값이 조금 비싸고, 주변에 음식점 등등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라 선택하지 않았는데 후술할 이슈 등등 고려하면 그냥 여기가 답이었구나 싶기도 합니다.조금 걷고 하다 보니 귀에 익은 조선말이 들려 귀를 기울입니다. 60대 정도의 어머니 두 분이 산책을 나오셔서 대화를 하시다 저와 눈이 몇 번 마주칩니다. 먼저 '안녕하세요?' 하니 '조선사람이예요?' 하시고 다른 분이 '조선사람이 아니라 한국사람이겠죠' 하십니다.'한국에서 왔어요? 어디서 왔어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거봐, 내가 옷차림이 한족이랑 다르다고 했잖아' '서울사람이 여기까지 무슨일이래요?' '신기하네 여기 뭐 볼게 있다고?''도문대교 보러 오는 한국 사람들이 좀 있지 않나요?' 여쭤보니 없답니다. 하긴 많진 않을 거라 생각은 되네요. 같이 두만강변을 걸으며 이것 저것 여쭤보았습니다. '제가 지린성을 거진 20년만에 왔고, 단둥-지안-퉁화-쑹강허-뚠화거쳐왔는데 조선말도 이젠 잘 들리지 않고, 죄다 한족인 것 같아 궁금합니다.' 여쭈니 '이제 조선족은 자치구에서도 옌지(연길)이나 가야 많이 있지 이젠 이런 소도시의 조선족은 전부 내륙 큰 도시로 돈 벌러 갔어요.' 하십니다. 다른 어머니께서 '우리 아들도 일자리 찾아 심양으로 가서 살아요. 돈벌이가 없으니 이런 곳엔 젊은 조선 사람이 없어요. 우리 같은 노인들이나 남아있지.' 하시네요. 말씀 들어보니 두 분 중 한 분은 조선족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시다 정년퇴임하셨고, 한 분은 심양으로 가서 일하고 있다는 아들이 이 선생님의 중학교 제자였답니다. '일자리가 많이 없나요?' 하니 '없지요. 우리야 여기서 나고 자라면서 먹고 살았지만 애들은 살 수가 없지요' 하십니다. '장백산 거쳐 왔다고요?' '네, 올해의 백두산 천지 첫 눈을 보고 왔습니다. 안가보셨나요?' '요즘은 사람들 관광도 다니고 하지만 우리 나이 사람 대부분은 도문을 벗어날 일이 거의 없어요. 가면 옌벤이나 장춘 정도 다녀올까.' '좋은 시대에요. 젊을 때 많이 다녀요.'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다시 조선말 이야기가 나와서 들어보니 이렇습니다. '이제 조선족학교에서도 조선말 교과서가 없습니다. 다들 한족어로 된 교과서로 한족말을 배우죠.' '아, 조선족 학교에... 조선말 교과서가 없나요?' '이젠 없어요. 시대가 그렇게 된거지 뭐.'. '내 제자들 중에 옌벤에 남아있는 아들이 얼마나 될까요. 전부 나가서 살지요. 그러니 그렇게 되는거지요.' 음, 이제 좀 궁금증이 해소되는 느낌입니다. 결국 호구에 등록된 조선족의 숫자가 감소하는건 결국 일자리 때문이었군요. 그 빈자리를 한족들이 채운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어쩌면 점점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조선족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본 조선족상점의 사람들이 그저 조선말을 할 줄 모르는 조선족이었던건가...? 화제를 돌려서... '도문대교를 사람들이 꾸준히 이용하네요?' 여쭈니 '왔다 갔다 하지요. 다 조선사람은 아니고 조선족하고 한족들도 있어요' '아? 지금 조선족이나 한족도 입출경이 가능한가요?' '여기 도문에 호구 있는 사람들은 도문대교 타고 조선 넘어가서 하루 관광하고 물건 같은거 사서 들어올 수는 있는데 우리가 굳이 남양을 갈 일이 없지.' 우리 여기서 평생 살면서 한 번도 다녀와보지 않았어요.' 하십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네요.어머님들이 찍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선 남양 아, 됐구요. 영어 문구가 뭔가 이상하지만 넘어갑시다. 도문대교 산책로 한쪽에 마련된 대교 입장로. 내국인에 한 해 유료로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님들 인사드리고 헤어져 도문시장에서 저녁 먹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살짝 문을 열어보니 젊은 공안이 문 앞 서 있습니다. 아뿔싸. 숙소에 뭔가 문제가 있구나. 혹시 주숙등기가 만료된걸 숨기고 영업하고 있었나? 짧은 순간 다양한 생각이 들었는데 이 공안 생각보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친절합니다. 제가 중국에서 다양한 공안을 겪어봤는데 내 방에 '들어가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며 허락을 구하는 공안은 이 사람이 처음이었습니다. 들어오시라 하고 먼저 여권을 건넨 후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부분은 대화가 아닌 질문입니다. '도문에는 무슨 일로 왔습니까?' '국경절이라 시간이 남아서 관광하러왔습니다' '도문에 무엇을 보러 왔습니까?' '도문대교하고 두만강을 보러왔습니다.' '중국에는 무슨 일로 체류하고 있습니까?' '중국회사에 잠깐 임대온 외노자입니다.''소속된 중국회사는 어디에 거점을 두고 있습니까?' '소속된건 아니고 회사 거점은 텐진입니다.''중국회사를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여기 명함으로 연락하시면 됩니다.''도문 바로 전에는 어디에 있었고 어떻게 도착했습니까?' '다롄-단둥-통화-지안-통화-쑹강허-창바이산-뚠화-투먼'으로 이동했습니다.'무엇으로 이동했습니까? 이동수단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전부 열차로 이동했고, 여기 E티켓들 있습니다.''지난 체류지에서 숙박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제 여권번호로 주숙등기를 열람하면 되지 않나요? 숙소 목록도 여기 있습니다.''도문에서 언제, 어디로 떠날 예정입니까?' '이틀 머물 것이고, 떠나는 시간은 모릅니다. 다음 목적지는 옌지입니다. 그리고 텐진으로 돌아가겠죠?''그렇다면 이후 텐진에서 계속 머물게 됩니까?' '그건 모릅니다. 저는 외노자라서 중국 내에서도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옵니다. 녹음과 메모가 끝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통화 후 제 명함, 중국 현지 회사 명함, 여권과 비자를 찍어 보냅니다. 그 후로도 한참을 휴대폰으로 뭔가 조작하더니 여권 명함들을 돌려주고 '선생님의 주숙등기는 제가 방금 온라인으로 처리했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 하고 떠나갑니다. 뭔가 멍... 합니다. 멍.... 함의 상당부분은 너무나 친절하고 인텔리한 공안을 겪었기 때문인가...? 아! 이래서 아까 주인 부부가 주숙등기를 처리 못 했던 거구나? 퍼뜩 생각이 나서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이런 일이 있었는데 제수씨한데 좀 물어봐 달라고 했습니다. 제수씨가 학위 논문 현지 답사할 때 지린성, 흑룡강성 곳곳에 있었으니 뭔가 알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돌아온 답변은 '그때 ㅇㅇ이도 도문에서 똑같은 일이 있었대. 너 옛날엔 안그랬냐는데?' 랍니다. 뭔가 이슈가 있어서 주숙등기가 막힌게 아니라 도문은 두만강지역이고 외국인이 드물다보니 그냥 외국인은 전부 이렇게 대면검사를 하는게 원래 방식인 것 같습니다. 옛날엔 주숙등기도 수기이고 하다보니 제가 그때는 그냥 넘어갔던 케이스였을 수도 있겠네요. 하여튼 영어도 잘 하시고 높은 친절함을 탑재한 공안이 찾아오셔서 좋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양탕에 흰쌀밥. 양탕 너무 좋아 짱짱맨! 이젠 중국도 곳곳에 개신교회가 있습니다. 교파는 없고 대부분 기독교삼자애국협회 소속입니다. 일광산 일대 두만강변 도문 통상구 열차 선로. 단둥 통상구는 사람과 차량, 열차가 조중우의교로 건너지만 도문은 열차 통행구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아침을 먹고 두만강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일광산을 향해갑니다. 일광산에는 두만강 조각공원과 수월스님의 수월정사를 (잇는다 주장하는) 화엄사가 있습니다. 수월스님은 성원스님(경허대사의 형님)에게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시작하였고 1912년 동,포들을 따라 헤이룽장(흑룡강) 수분하의 관음사라는 작은 사찰에서 만주로 피신한 독립군과 동,포들을 살피며 지내시다 1921년 이곳 일광산의 화엄사에 머물며 항일투쟁을 하는 독립군들과 만주로 도피하는 실향민들에게 밤이면 짚신을 엮어 내어주고, 주먹밥을 지어 먹이며, 병자를 돌보다 1928년에 입적하셨다고 합니다. 현재 일광산의 화엄사는 엄연히 말하면 수월스님의 화엄사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고, 이평림이라는 조선족 사업가가 가산을 내어 수월정사를 잇는 마음으로 지은 절이라고 합니다. 저는 가톨릭인이라 이쪽 사찰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이 화엄사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에 가까운 이야기가 많아서 이런 배경이 있더라는 말씀만 드립니다 :)사람들이 택시를 타고 올라가는데 산 입구에서 화창한 날씨를 고려하니 걸어서 가도 괜찮을 것 같아 40여분 걸어 올라가니 두만강 조각공원이 나옵니다. 기억에 노천 전망대가 있던 곳인데 이젠 근사한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안내를 읽어보니 2013년에 도문시인구계획국에서 조성한 공원으로 한국의 다양한 조각가들도 함께 참여하여 조각공원을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다양한 각도의 두만강 일대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두만공원에서 부채춤을 추며 옛 가락을 부르는 조선족 어르신들을 보며 끈질기게 남아있는 한민족 문화의 흔적을 봅니다. 가을의 두만강 일대도 너무 좋네요 그런데 1시간이 2시간이 되고 3시간 걷다보니 길을 잘못들었다는게 확실하여 다행히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일광산 입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날씨도 좋고 풍경도 아름다워서 조각공원 둘러보고 일광산을 아예 한바퀴 돌아야겠다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는데 9시에 시작한 산행이 1시간, 2시간, 3시간 정오가 넘어서까지 산길을 걸으니 인도는 사라지고 어느새 차도로 걷게됩니다. 사람은 당연히 없고 지나다니는 차도 없어서 살짝 불안한데 가을산의 야생벌까지 꼬이기 시작해서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차가 아주 가끔 있어서 손을 흔들어 히치 하이킹을 몇 번 시도 했고 다행히 젊은 커플이 차를 세워주어 일광산 입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ㅠ 늦은 점심으로 랭면을 한그릇 후딱 하고 도문 일대를 돌다 기차를 타고 옌지(연길)로 향합니다. 3시간 넘게 걷다 먹으니 와 진짜 훌훌 넘어감...연길족이라...정처없이 떠돌다 저녁을 먹었는데 맛있었습니다. 역시 한국인은 탕이야! 연길로 와서는 연변대학교 한국민속문화공원에서 가까운 숙소에서 묵었는데 친절하고 교통 편리하고 무척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서 이곳 저곳 다니다 북한산 송이거리가 엄청나게 크게 있어서 물어보니 이미 대부분은 한국이나 일본으로 보내고 올해 장사 자체를 거의 마무리하는 분위기였는데 구매하면 한국으로 보내주냐니 개별구매는 못 보낸다고 하네요. 아마 식물, 식품 검역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값은 그렇게 싸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북한의 삼림상태를 생각하면 북한산 송이라는건 환상종에 가깝고 북한산 송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만주 삼림의 중국산 송이가 아닐까... 생각.저녁은 어디인지 모르겠는데 후미진 골목 가운데 사람이 꽤 많은 조선음식점이 있어서 들어가 순대하고 이것 저것 주문해 먹었는데 괜찮았습니다. 확실히 이쪽으로 오니까 음식풍하고 간하고 향 등등이 한국사람 입맛에 가까워지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다음 날 연길 공항에서 톈진으로 돌아가는 남방항공 비행기를 타며 이번 요동 일주는 끝났습니다.공항보다는 기차역 느낌의 연길공항잘 둘러보고 갑니다.재미없는 장황한 글 읽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각자의 일상에서 건승을 바랍니다.
작성자 : FallOut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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