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하다보면
미국 항공모함 운용방식이 일본에 한참뒤쳐진다. 단지 항공기 수송용이다 정찰용으로만 쓴다. 미국은 항모의 중요성을 몰랐다. 이런 좆같은 개소리들이 많아
과연 미국은 거함거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이 해답은 미 해군이 실시한 " Fleet Problem " 훈련 일종의 워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어
(이하로 F.P로 기술할게)
F.P란 1차대전후에 항공모함 탄생과 더불어 진화하는 해군병기들의 전략연구 및 주요 요충지 방어전략을 실험해보는 워게임이야
F.P I 부터 VIII까지는 중간에 랭글리로 이용한 파나마 운한 공격이나 수상기모함등을 이용했고 대부분은 태평양에서의 작전반경등이나 실험하기 위해 열려
(랭드웨이)
그러다가 1927년에 미해군 최초의 함대형 항공모함 사라토가와 렉싱턴이 취역하게 되어 1929년에 열리는
F.P IX에 참가하여 파나마운하를 공격하는 시나리오로 방어군으로는 렉싱턴, 공격군으로 사라토가를 포함한 주력인 전함인 함대를 꾸리게 되지
이 훈련이 미 해군 사상을 바꾸게 되는 시발점이 되
공격함대에서 사라토가가 주력함대에서 순양함 단 한척과 떨어져나와서 공격군 정찰대를 따돌리고 함재기를 이용해서 파나마 운하를 공격하여 타격 유효판정을 얻어내
이게 엄청난건데 이전에는 전함과의 대결구도로 흘러가고 파나마운하에 육군부대도 협조해서 참가했기 때문에 공격함대와 방어함대 서로간의 차단기동등으로 파나마운하에
유효한 타격을 주기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항공기를 이용해서 적 함대의 움직임 상관없이 파나마 운하를 공격한거야 하지만 사라토가는 나중에 렉싱턴 함재기의 공격을 받고 침몰판정을
받아
이 훈련결과는 미해군 제독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어 각 제독이 보고서를 남기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항공기를 이용하니 빠르고 기습작전에 유용하게 쓰일수있다. 전함의 시대가 저물지도 모른다." 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꺼내면서
"지금의 항공기술로는 어느정도의 한계가 보이며, 항공기술과 그 운용방법의 연구가 필요하다."라고도 경고가 담긴 의견도 제출했어
(F.P IX 때 사라토가와 렉싱턴 굴뚝에 줄무늬있는건 사라토가임)
그리고 이 의견이 해군성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다음해 1930년
F.P X를 실시하는데 무려 미해군 최초의 '함대항공전' 워게임을 실시해
케리비안 해에서 실시했으며 랭글리와 사라토가 vs 렉싱턴으로 2;1싸움이 였지고, 서로 정찰기를 띄웠지만 흑팀 렉싱턴의 정찰폭격기가 먼저 청팀(사라,랭글)을 발견하면서
게임은 일방적으로 렉싱턴의 승리가 되어
동일한 연도에 실시한 F.P XI는 이전 X의 훈련을 분석하는 훈련이 되었고
F.P XII에서는 다시 파나마운하와 미국 중남부를 공격하는 침략함대(전함부대)에 대항해서 청팀(방어군) 사라토가와 렉싱턴이 침략함대를 공격하는 것인데
너무 가까워서 방어 실패하게되지
그 다음은
F.P XIII (1932)를 실시하는데 이때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게되어 미국이 일본에 대해 언젠간 저 새끼들 우릴치겠지하고 훈련지역으로 태평양으로 옮기고
일본의 미 본토 급습에 대한 육군과 해군 합동 훈련을 실시하는데 하와이 방어가 시나리오야 청군과 흑군으로 나누어서 항모도 나누고 둘이서 서로 워게임을 실시했는데
훈련과정을 보면 잠수함이 공습으로 격침당하고 항모가 구축함 어뢰에 침몰당하는 각종의 개판이 만들어져 하지만 이 훈련에서 엄청난 교훈을 얻게 되는데
1.잠수함은 공중공격에 매우 취약하다.
2. 1척의 항모로는 적 함대 유효한 타격을 주기힘들고 아군함대 방어도 힘들다.
3. 2척이상 항모를 운용하기 위한 교리가 새로 마련되어야함
4.태평양 전역에서는 최소한 항모 6~8척이 필요함
하지만 당시 미해군이 보유한 항모는 건조중인 레인저를 포함해서 총 4척이며 추가로 발주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어 하지만 이후에 항공모함설계에 대한 연구가
열렬히 이루어져 요크타운같은 최고의 항모가 탄생하게 되지
그 뒤로는 파나마와 알래스카 하와이에서 훈련을 실시하지만 일본을 의식해 태평양에서 많이 실시했어 특히 1935년에는 미드웨이도 훈련지역에 넣지 그러다가
F.P XIX (1938)
이 때는 잠수함과 구축함을 이용한 정찰교리를 시험하고 항공기를 이용해 대규모의 함대를 공격하는 교리도 시험해보았지
그리고 사라토가 함장으로 미해군 최초로 미 해군 항공분야의 선구자이자 파일럿출신인 John Towers가 임명이되고 그 아래에도 여러 항공전문가들로 참모진들이 구성되
하지만 가장 중요한건 하와이가 항공기를 이용한 기습공격에 얼마나 잘 대비되어 있나를 시험하는게 주된 목적이였어
근데 여기서 사라토가가 진주만 기습때 일본군과 했던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오하우섬으로 부터 100마일 북서쪽에서 새벽에 발함해서 미해군과 육군항공대를 먼저 타격하여
전부 유효판정을 받아 냈지 이 떄 이 작전을 지휘한 사람이 나중에 해군참모총장이 되는 어니스트 킹 제독이야
(당시 사진 앞에서 레인저 렉싱턴 사라토가)
그리고 2차대전 발발하고 1년후인 1940년에는
F.P XXI를 실시하여 역시 하와이 방어를 위해 8가지의 상황을 두고 2달간 훈련을 실시해 이중에는 일본 기동부대에 대항하는 함대항공전과 그 함재기 공격방식을 테스트하기 위해
워게임을 실시하지 여기서 렉싱턴과 사라토가가 요크타운에 대해 유효타격판정을 얻어내어 승리를 거두지만 역시 이전 훈련과 같이 오직 빠르고 정확한 정찰이 중요하다라는 교훈으로
돈틀리스같은 정찰 급강하 폭격기가 탄생하게 되 (SBD에서 S가 스카웃임)
미군부안에서도 이제 우리도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돌고 여기에 루즈벨트가 일본을 압박하기 위해 훈련을 마친 일부함선을 하와이에 대기시켰고 결국 1941년 1월에 미 함대는 대
서양함대 태평양함대로 분리되어
태평양함대에는 사라토가 렉싱턴 엔터프라이즈 , 대서양함대에는 요크타운 와스프 레인저 가 배정받게 되고
다음 훈련인 F.P XXII는 1941년에 계획되었지만 취소되고 나중에 운명의 12월7일에 진주만 공습으로 전함을 잃게 되어 남게된 항공모함들로만 일본 기동부대와
전투를 치루게 되지
태평양 전쟁 초기에 벌어지는 함대항공전은 오직 운빨과 항모의 성능등으로 미군이 이긴것이 아니고 여태까지 쌓아온 미해군 항공전술과 지휘관이 된 선구자들이
있기에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라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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