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친구들이 온다고 하니 잠을 설쳤다. 자유의 시간은 정말 귀하지만, 일정 부분 넘어가면 심심하고 외롭다.. 빨리 와.. 외않와.. 왠지 공항에 나가서 플랜카드를 들고 서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뭔가 준비하려고 했는데 도착 시간도 늦고, 귀찮게 그러지 좀 말고 지금까지 했던 것 처럼 잘 놀고 있으라고 한다,, 퓨,, 밥집이나 알아보라는데 이미 다 알아봤다구.. 저녁 내가 사주려구 예약도 했자나.. 근데 서프라이즈라서 얘기 못하잖아 ㅡㅡ.. 아마 여기서 더 질척거리면 ‘아 그러던가~ 아오 귀찮네’ 소리 들을까봐 또 말은 잘 듣는 컨셉으로 얌전히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아, 시간이 너무 안간다.. 목표치에 가까이 도달 할 수록 더 멀고, 기다리던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딘 법인가보다. 빨..리..오ㅏ..
공항 근처에 큰 마트가 하나 있는데, 이 동네에 큰 마트는 거기가 전부다. 거의 모든 걸 다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젓가락도 있다. 와우~ 별 보면서 라면 먹어야 하니까 챙기고~ 버너… 버너가 항상 문제이다.. 나와서 사면 버리고 가야 하고, 가지고 가려니 어디는 된다 하고 어디는 안된다 하고.. 아깝다 ㅜ.ㅜ 하지만 이번에는 2주나 있을 것이며 인프라가 없는 곳에서의 은하수 헌팅이 목적이기 때문에 구매를 하고 숙소측에 기증하는 방법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정 안되면 파츠를 해체해서 배편으로 보내면 된다. 간단한 웰컴 과일과 (나 혼자 웰컴을 붙인 것임. 지금 까지도 들키지 않았고 여전히 아무도 모름) 허기를 달랠 빵을 몇조각 샀다. 이제는 호주 내선으로 갈아탔을 시간이기 때문에 연락도 못한다. 그냥 기다리는 시간임. 나는 전생에 강아지였나? (혹시 토끼나 오리나 다람쥐도 이정도로 누군가를 기다린다면 그것으로 대체해도 좋다.)
마치 전혀 기다리지 않았다는 듯이 러프하게 맞이하고 싶은데 그럼 어떤 패션을 골라야 할지 컨셉질하느라 마음이 분주했다.
- 버전 1 : 아침부터 바지런히 나갔다가 들어와서 깜빡 낮잠에 들었는데 글쎄 너희가 왔네~ (실내복)
- 버전 2 : 뭐 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마트에 막 다녀오는 길이야 (외출복)
- 버전 3 : 너네 없으니까 하루종일 암것도 못하고 기다리쟈나… (잠옷)
아… 뭐 하지.. 근데 왜이렇게 지독히도 컨셉을 잡는거지 난.. 자연스러움이란 뭘까,, 이미 알 수 없다,,
어…!! 밖에 트럭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도착했나보군!! 호다닥.. 7줄 적을 동안 벌써 도착하다니 비행기가 빠르긴 빠르군….
“여어~ 반갑습니다~“
”아유~~ 제 집은 아니지만 어서오십쇼~!!!“
그렇다. 우리는 정말 친한 친구들이지만, 존댓말을 쓴다. 그럼 지금껏 표현한 친밀도는 거짓이냐고? 아니. 그것보단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고 예의를 충분히 지키면서도 함께 삶을 만끽 할 수 있는 어른들이랄까~ 말씨나 만나는 빈도 같은 건 딱히 중요치 않다는 것을 요즘 부쩍 느낀다. 어릴적에는 (이라고 적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라고 읽는다) 한달에 몇 번 만나는지, 무엇부터 무엇까지 같이 할 수 있는지, 얼마만큼의 시간을 알고 지냈는지, 최근 서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도는 체크하고 합이 맞아야 ‘정말 가까운 친구’라고 느꼈다면, 어느새부터인가 점점 그런 객관적 기준들이 친밀도를 결정하는데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시절 가까워진 친구들이 더 없이 소중하다는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저, 사람을 카테고라이징 하는 일이 전에비해 중요해지지 않아지고 있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준다면 좋겠다.
오는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고 웃기는 짬뽕같은 일들이 있었는지 공유하며, 나의 경우 대체 이 아무것도 없는 동네에서 수영복과 친구없이 어떻게 이틀동안 놀 수 있었는지 감탄당하며, 오늘 저녁 준비한 깜짝 서프라이즈 예약에 대해 알리고 자본의 박수갈채 기쁘게 누리며 우리는 저녁 식사 후의 은하수 헌팅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지도를 켜고 잠깐의 회의를 했다.
8년차 헬린이 같은 얘길 하려는게 아니라 나는 진짜 별린이다. 아주 알량한 지식과 경험으로 서술한다는 점을, 그리고 이 글이 공짜라는 점을 꼭 기억하며 읽어주시기를 당부드린다. 별을 보러 가기 위해서는 첫째로 월력을 보아야 한다. 바로 보름을 피해 달빛이 비교적 어두운 삭달일 때를 골라야 한다. 같은 고도, 같은 기후여도 보이는 별의 개수가 아주 많이 다르다. 월력을 보았다면, 광해등급지도를 볼 차례이다. 구글에 라이트폴루션맵을 검색하면 나오는데, 숫자가 낮을 수록 하늘이 어두운 높은 등급지라고 보면 된다. 0급지가 최상등급지이고, 5급지는 첨단의 개발 도시라고 보면 된다. 가능한 광해가 없고 지대가 높은곳일 수록 별을 보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주로 강원도로 관측을 가게 되었는데,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태백산맥의 영향으로 구름이 잘 형성되어 하루 중에도 날씨의 변화가 극심하다는 점이다. 호주는 지대가 높진 않지만 너른 평야이고, 인프라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완전히 자연 그 자체여서 크게 고생을 하지 않아도 별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확률이 매우 높다. 우리는 삭을, 그리고 여름은하수가 새벽즈음 머리꼭대기에 떠오르는 7월을 골라 간 것이다.
한국에서는 천문대라던지, 관측이 가능한 산장이나 펜션같은 숙박시설, 혹은 안반데기나 육백마지기 같은 주차공간이 넓은 전망대로 가야 밤새도록 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은하수가 너무 흔한 이국땅에는 부럽게도 어디에서 별을 보세요 라는 가이드가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버드 옵저버터리?”
“어! 저도 그거 보고 있었어요. 한 시간도 안걸리네요!”
”사전 헌팅 필요 할까요?”
”음 그냥 식사하고 출발할까요. 아니면 다른데를 찾아보면 되지!“
”그것도 여행의 일부니까요?“
”저도 좋아요“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역할 분담을 했다. 둘은 셋팅할 망원경과 장비들을 트럭에 싣고, 한명은 간단하게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과 물, 보온병, 끓인 물과 티백을 챙겼다. 나는 간이 화장실과 혹시라도 추워질 새벽을 대비해 방한용품 그리고 독성생물 공격에 대응할 상비약을 챙겼다.
착착착착.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모두 가방에서 제일 그럴싸한 옷들을 꺼내 입고 식당으로 향했다. 가장 그럴싸한 옷인데 상 하의가 딱히 매칭이 잘 안되는 부분이 아주 우리를 흡족한 웃음벨 앞에 데려다 놓았다. 슬리퍼 안되는 가게 일줄은 몰랐거든!
솔직하게 말하자면 브룸은 백인들이 숨겨놓은 유토피아 같았다. 그 옆에 2시간가량 떨어진 더비라는 마을에 가보면 브룸이 확실하게 부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당의 퀄리티가 좋았고, 멤버쉽 제도가 많은 걸 보니 주기적으로 휴양을 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판단 되었다. 관광객에게 친절한 도시는 절대 아니다. 그리고 나처럼 동양인일경우 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만약 브룸에 오래 체류할 예정이라면 알고 가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인종차별이란 무엇일까?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 주제에 대해 긴밀히 생각해 볼 일이 많지는 않다. 우리에게 별다른 리스크가 없기 때문이다. 다름에 대한 존중은 정말 필요한 것인데, 이 존중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 필히 먼저 오는 것이 다름에 대한 인지이다. 그러니까, ‘어?나와 다르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본능적으로 ’다르네‘ 라고 느끼는 것 자체를 인종차별이라 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정말 어려운 영역이다. 그런 이방인이 된 느낌은 남의 땅을 밟는 순간부터 느끼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식당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우리를 맞아 주었는데, 첫 번째 유형은 친절 플러스 친절 플러스 친절 형이었다. 기본적으로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설명을 하는데에 엄청난 공을 들여주었다. 나는 사실상 넷 중에 영어를 못하는 편이라 편했는데 (ㅋㅋㅋㅋ) 뉘앙스를 알아채는 정도의 실력을 가진 자들에게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역시 모르는게 약이여~. 두 번째 유형은 뚝딱, 뚝 투더 딱 형이었다.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걸 알지만 서빙을 해 주는 것이 기쁘지는 않은 것 같은, 글쎄 내 오해일 수도 있다. 그날 그냥 상관에게 깨져서 일 하기 싫었던 것일 수도 있으니까.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니까! 암냠냠. 밥은 엄청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 멤버 모두 대 만족, 배를 두드리며 밖으로 나왔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별을 따러 가볼까. 가로등이 환한 도로에서도 선명한 전갈자리. 샤울라가 끌어올리는 여름은하수를 곧 직관하게 될 것이다. 하늘은 나라는 존재가 작디 작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인지시켜주면서도, 아무리 보잘 것 없다 해도 네가 사는 동안만큼은 지금 모습 그대로 너를 바라보겠노라고 로맨틱한 울림을 전한다. 그런 하늘을 매일 올려다보면서, 때때로 민낯 그대로 오롯이 마주하고 싶다 여기면서도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워왔던 오늘. 나의 고향이자 친구인 하늘님을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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