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수출형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 CG /한화디펜스 영상 캡처
“방위사업청장(방사청장)이 연간 17조원 이상의 무기사업을 다룬다지만 그렇게 중요한 자리인줄 몰랐네요.”
◇ 방위사업청 대통령실 직접 보고 중단 상태
최근 군내에서 돌고 있는 좀 냉소적인 얘기인데요, 방사청장 인선이 계속 지연되면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방사청장 인선 지연은 지난해부터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K-방산 수출 대박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 오늘은 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아시다시피 정부 부처 장관급에 이어 차관 및 청장급 인선도 대부분 마무리된 상태인데요, 국방부 외청인 방사청장(차관급) 임명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신임 방사청장 하마평은 몇몇 예비역 장성을 중심으로 한달 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어서 군 안팎에선 방사청장 인선이 크게 지연되고 있는 데 대해 의아해 하며 온갖 설(說)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5월30일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 장관과 회담을 하고 국방·방산 협력 및 최근 안보 정세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폴란드에는 K2전차, FA-50 경공격기 등 대규모 방산 수출이 추진되고 있다./연합뉴스
문제는 인선 지연이 단순히 방사청 직원들의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수준을 벗어나 중요 업무가 사실상 마비되거나 지난해부터 급상승세를 타고 있는 K-방산 수출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지난달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주요 방산수출 사안을 포함해 방사청 주요 업무가 대통령실에 직접 보고되는 것이 사실상 중단 상태라고 합니다. 대통령실에서 방사청에 국방부를 통해 보고하라 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최근 K-방산 핫이슈가 되고 있는 폴란드 수출건도 방사청이 대통령실에 직접 보고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강은호 방사청장이 오후에야 결재하는 이유
이 때문에 재작년 말 이후 K-방산 수출을 주도해온 강은호 방사청장도 한달 넘게 사실상 ‘식물 청장’ 상태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대통령실에 보고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후임 인선이 언제될지 몰라 주요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한 소식통은 “강 청장은 거취 관련해 전혀 언질을 받지 못한 상태여서 지난달 이후 각종 주요 문서 결재를 오후에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후임 청장 인선발표가 언제 있을지 몰라 매일 인사발표를 기다린 뒤 인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오후 시간대에야 제대로 결재를 하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선 너무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고 여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규정상 후임 청장이 발표되면 당일 자정으로 소급해 권한이 무효화해 책임과 권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군요.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2022년 2월 노르웨이 주력전차 사업의 동계시험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레나 기지(Rena Camp)에서 K2 전차의 사격시험을 직접 참관하고 있다. /뉴스1
이 때문에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폴란드 방산 수출건에서도 정부 주요 기관간 커뮤니케이션 문제와 수출 업체 애로사항들이 불거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 말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부 장관이 방한해 이종섭 국방장관과 한-폴란드 국방장관 회담을 열고 한화디펜스,현대로템, KAI(한국항공우주산업) 등 주요 방산업체를 방문했는데요, 그 직후 현역 장성 등으로 구성된 실무 조사단도 방한해 주요 방산업체를 방문하고 국방부·방사청과 회담을 열었습니다.
◇ 폴란드에 최소 10조 이상 K-방산 대박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폴란드측에선 K2 전차의 경우 180대, FA-50 경공격기의 경우 48대 구매의사를 밝혔다고 하는데요, 실제로는 폴란드측에서 K9 자주포 수백문 등 더 많은 한국제 지상무기 구매의사를 밝혔다는 보도와 소문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K2전차 180대만 해도 3조원 이상 규모로 추정되는데요, 보수적으로 잡아도 폴란드에 최소 10조원 이상의 K-방산 수출 대박시장이 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당초 군과 방사청에선 올해 방산 수출규모를 150억 달러 이상으로 예상했습니다. 여기엔 올해 말 기종이 선정될 노르웨이 차기 전차 사업(17억 달러 규모)을 비롯, 호주의 차기 장갑차(레드백·50억~75억달러), 폴란드의 FA-50 경공격기(20여억달러) 및 K-2 전차(최소 3억달러 이상), 말레이시아·콜롬비아의 FA-50 경공격기(총 17억달러 이상) 수출 사업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폴란드 시장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려 급격히 커짐에 따라 올 방산 수출액이 최소 200억 달러 이상도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K-방산은 지난 수년간 수출액이 10억~30억달러 수준에서 정체 상태였지만 지난해엔 처음으로 70억 달러를 넘어 세계 6위권에 진입했고, 이제 5위권을 노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 방사청에 대한 일각의 비판과 방사청 힘빼려는 윤석열 정부
이런 수출 성공은 해당 업체 직원들과 CEO는 물론 방사청, 국방부, 구 청와대 등 군 및 정부 기관 등이 오케스트라처럼 유기적으로 총력전을 펼쳐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 한 사람, 악기 하나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제대로 연주가 어렵듯이 방산 수출도 방사청 등에 문제가 생기면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방산 FTA(자유무역협정)’로 불리는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DP) 협상에 착수하기로 공동성명을 통해 발표한 상태입니다.
또 이달말 윤석열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이 될 나토 정상회담에선 폴란드 방산수출을 통한 우크라이나 우회 지원 방안 등이 논의될 전망인데요, 이들 모두 방사청 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사안들입니다.
새 정부는 그동안 방사청이 과도하게 권한을 행사해 군 무기도입 등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권한 상당 부분을 국방부로 옮겨 제2차관을 신설하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실이 방사청 보고를 직접 안받고 있는 것도 그런 차원의 ‘방사청 힘빼기’라는 것입니다. 방사청이 지난 2006년 신설된 이후 분명 공과가 함께 있고 육해공 각군, 특히 육군 입장에선 불만스런 점들이 많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 국익 손실 초래할 수 있는 어정쩡한 상황 빨리 끝내야
하지만 아무리 방사청 개혁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현 상황은 정상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방산업체들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들이 늘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후임 청장을 발표하든, 현 청장에게 앞으로 몇 달간만 더 일을 해달라고 얘기하든 명확히 정리가 돼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을 끌수록 인사권자에게 비판의 화살이 돌아가는 것은 물론 방산수출 등 국익에도 가시적인 손실이 생길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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