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틴 니퍼트와 계약한 kt가 "돈 로치(29)를 조건 없이 풀어 주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뒤늦은 결정이다.

kt는 지난 5일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한 니퍼트와 총액 100만 달러(약 10억6000만원)에 계약했다. 앞서 전년도 평균자책점 1위 피어밴드와 재계약한 kt는 2018시즌 외국인 선수 구성을 완료했다. 이로써 로치와 kt의 재계약이 무산됐다.

사실 kt는 처음부터 로치와 계약 가능성을 1순위로 두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빅리거를 최우선했다. 그럼에도 로치를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시켰다. 혹시나 새 외국인 투수 영입이 여의치 않을 경우 로치와 재계약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구단은 "(다른 선수와 계약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로치에게 구단의 사정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밝혔다. 일종의 '보험'으로 여긴 것이다.

kt가 새 외국인 투수 후보와 협상을 진행하면서 기존에 뛴 외국인 투수를 일종의 '보험 장치'로 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창단 이후 세 시즌 연속 그랬다. 2016년 댄 블랙, 2017년 고(故) 앤디 마르테와 라이언 피어밴드를 보류명단에 포함시켰다.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건 '구단이 다음 시즌에 재계약할 의사가 있다'는 의미다. 세 명 모두 "kt와 재계약을 희망한다"고 밝혔지만 피어밴드만 유일하게 kt에 잔류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1선발을 영입하겠다"는 공언을 지키기 어렵게 되자 2017년 1월 말 뒤늦게 피어밴드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 외에 보류명단에 포함된 블랙과 마르테 그리고 로치는 모두 짐을 쌌다. 구단은 "우리팀에 가장 잘 맞는 외국인 선수와 계약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했다. 

유독 kt만 외국인 선수를 보류선수 명단에 넣고선 재계약하지 않고 있다. KBO 리그 최근 분위기는 kt 행보와 반대다. 각 구단은 외국인 선수와 재계약에 관해 빠른 의사 결정을 한다. 니퍼트와 해커, 밴 헤켄 등이 보류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일찍 시장에 나왔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내가 계약하긴 아깝고, 그렇다고 남의 구단에 뺏기긴 싫다'는 판단 아래에 보류선수 명단에 묶어 뒀던 것과 정반대다. 이제는 굳이 '타 팀 이적을 막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외국인 선수가 기존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의사를 통보받아 보류선수 명단에 포함되면 5년간 국내 타 구단과 계약이 제한된다. 보류권을 가진 구단이 풀어 주지 않으면 새 구단과 계약할 수 없다. 국내 선수와 다른 신분인 외국인 선수에게는 원소속 구단의 빠른 결정이 필요한 이유다.

여기에 '을'의 신분인 외국인 선수가 보류선수 명단에 묶인 뒤 재계약에 실패하면 '직업 선택'에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kt가 "조건 없이 풀어 주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한국이나 일본 모두 외국인 선수 구성이 거의 마무리 단계여서 2018년 새 둥지를 찾을 시간이 줄어들었다.

혹시나 하고 기대를 건 로치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물론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면 재계약에 관해 걱정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유독 불운했기 때문이다. 로치는 지난해 4승15패에 그쳤다. 그럼에도 4.69의 평균자책점에 비하면 승 수가 너무 적다. KBO 리그에서 땅볼 유도가 가장 많았지만 그의 등판 때 수비 실책이 쏟아졌다. 야수진의 실책이 나온 뒤 로치는 자주 흔들렸다. 구단 내부에서도 "수비가 뒷받침됐다면 분명 로치가 더 좋은 성적을 올렸을 것이다"고 했다. 로치는 피어밴드(26경기, 160이닝)보다 두 차례 더 많은 28차례에 등판했고, 더 많은 165이닝을 던졌다. 팀 내 1위였다.

로치는 재계약 실패뿐 아니라 kt의 뒤늦은 의사 결정으로 더욱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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