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들어선지도 한참이건만, 밤하늘에선 추적추적 때늦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허나 비구름에 가려버린 달빛이 무색하게도, 미르시티 뒷골목의 유흥가는 온갖 사람들로 북적였고
붉고 푸른 형형색색의 LED 조명,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국어들이 적힌 네온사인들은 환하게 빛났다.
고작 가을비 하나 정도로는, 이들의 달아오른 정욕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티에르노가 운영하는 주점, 꼼데가르송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바삐 움직이며 술을 나르는 웨이터들, 답답한 방을 나와 휘적휘적 걷고있는 취객들
가게 한구석 대기실에 모여 수다를 떨고, 화장을 고치며 다음번 지명을 기다리는 도우미들
새빨간 조명, 취객들의 노랫소리, 밀실을 가득채운 담배연기, 시비가 붙은 남자들
시곗바늘은 자정을 한참 넘겨버렸지만, 오만가지의 인간군상들로 가득 찬 이곳은 불야성을 이루었다.
티에르노는 카운터에 걸쳐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지폐 수를 세어보고, 때로는 웨이터들에게 자잘한 오더도 내리며
날이 갈수록 번창해가는 자신의 사업,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상상하고 만끽했다.
허나 그 잠시간의 평화는, 한 사내의 등장으로 깨져버리고 말았다.
'쾅' 카운터 앞의 VIP룸의 문짝이 떨어져나갈듯 거칠게 열리며, 크세로시키가 나온 것이다.
무언가에 단단히 화가난듯, 창백한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라올라서는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그는 곧장 카운터의 티에르노에게 성킁성큼 걸어와, 멱살을 부여 잡고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어이 티에르노, 니는 씨발 마 사업장 굴릴만할 능력이 없는갑네?"
"예..? 형님? 왜 그러십니까?"
이해하기 힘든 지금 상황에 놀란 티에르노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하 이 새끼보소, 어이 씨발롬아 진짜 왜 그러는지 몰라서 물어보나"
티에르노는 크세로시키가 정말로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으니, VIP룸에서 배를 부여잡은 세레나가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티에르노는 그제서야 어찌된 일인지 대강의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크세로시키는 세레나의 부상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곧장 그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왔다.
그 바람에 세레나는 나자빠져, 땅바닥에 쓰러지고는 신음하였는데 그 모습이 티에르노의 눈에도 퍽 가엽다 느껴졌다.
크세로시키는 그 억세고 굵은 팔을 휘둘러 세레나의 원피스를 잡아 들어올리더니 원피스의 일부분을 부북 찣어냈다.
그리고 그 쥐여진 천쪼가리를 티에르노의 눈 앞에 가져다 대며 소리쳤다.
"아새끼들 홀복이 왜 이따구고, 빤짝이 원피스? 니 지금 내랑 장난치나
어데 쌍팔년도에서나 먹힐만한걸 입혀놨노, 이 빙신같은 새끼가
사업하기 싫나? 다 말아쳐먹고 싶나? 지금이라도 당장 때려쳐주까?"
"아닙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
크세로시키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담배를 꺼내물고 손짓했다.
그걸 본 티에르노가 반사적으로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붙여주었다.
크세로시키가 내뿜는 날숨과 함께 담배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심신의 안정을 되찾은 크세로시키가 티에르노의 뺨을 후려쳤다.
쫙하는 소리와 함께 티에르노의 거구가 그대로 나자빠지고, 시끄럽던 가게 안 분위기는 그대로 냉각되었다.
주위 사람들이 얼어붙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자, 기분이 좀 풀린듯 크세로시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니 밑에 아들 관리 존나 안되는갑네? 니 방금 내 방에 에이스랍시고 저 새끼 넣어놨제?
마인드 씹창에 존나 내숭 떠는걸로도 모자라서, 저 새끼 내가 누군지도 못알아보데?
보도방 떨거지로 끝날 니 새끼 이만큼 키워놨더만, 지금 이딴 식으로 나를 물먹이나?"
'클레임..? 아닌데, 셋팅 잘되있고, 세레나도 본인이 지명한거고 화낼만한 껀덕지가 없을텐데"
눈치 빠른 티에르노는 크세로시키의 행동에 숨겨진 의미을 깨달았다.
애초에 저 인간이 화를 낸 이유, 진짜로 원했던 목적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이 매장의 지분은 티에르노가 6, 크세로시키가 4을 가지고 있었다.
가게의 매출 또한 그것과 동등한 비율로 나누고 있었는데, 크세로시키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 것 분명하다.
웨이터들의 부축을 받으며 힙겹게 일어난 티에르노는 곧장 카운터 금고에 엄지손가락을 눌렀다.
지문을 확인한 금고가 '삐빅' 소리를 내며 활짝 열렸다.
다행히 요 며칠전 은행을 갔다왔기 때문에 금고 속의 현금은 평상시보단 적었다.
천천히 금고 안에 들어있는 만원짜리 다발을 꺼내어 쇼핑백 속에 담았다.
그게 다 합쳐 총 아홉 다발, 주말기간의 매출을 통째로 빼앗기게 생긴 것이다.
무리하게 계약한 외제차 리스비에 나날이 떨어지는 주식, 대출이자를 생각하니 뱃속이 비비꼬이듯 아팠지만
티에르노에겐 별 수가 없었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이 진상을 쫓아내는게 먼저다.
"형님, 죄송합니다. 간만에 즐기시려는데 교육이 안됐습니다. 일단 이걸로 다른데서 즐기시고
나중에 가게 오시면 제가 다 완벽하게 정리 해놓겠습니다."
티에르노의 예감은 적중하여, 크세로시키는 겸연쩍게 웃으며 그 돈을 받아챙겼다.
"정신차리고 똑디 해라.. 애들 교육 똑바로 시키고
뭐 실수할수도 있는데, 계속 저러면 그게 가게 망하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이 행님이 티에르노 니 존나 믿는거 알제? 열심히 하자"
말을 마친 크세로시키는 곧장 가게문을 열고 나갔다.
그제서야 티에르노가 '퉷' 침을 뱉어내니, 시꺼멓게 굳은 피가 섞여나왔다.
누런 조명이 비추는 룸 안은 마치 수라장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뒤짚힌 테이블과 함께 여기저기 안주 부스러기가 쏟아져 있고, 맥주병은 깨진채 나뒹굴고 있었다.
그 광경에 압도된 티에르노가 한숨을 내쉬더니, 넘어진 소파를 대충 일으켜세워 세레나를 앉혔다.
티에르노는 이미 반쯤 쏟아진 브랜디 병을 들어, 크리스탈 텀블러에 남은 내용물을 부으며 물었다.
"뭐했길래 그 새끼가 그렇게 지랄 하는거냐?"
언제나 그렇듯 세레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냐..?"
잔을 들어 내용물을 들이키니, 쏴아하며 목을 알싸하게 태우는 듯한 넘김이 티에르노에게 전해져왔다.
남은 잔을 마저 텀블러에 털어넣고 세레나에게 건냈다.
그리고는 금연을 마음먹고 주머니 한구석에 쳐박아두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물었다.
길게 숨을 들이키니 간만에 들이마신 이산화탄소 때문에, 잠시 시야가 흐릿해지며 어질어질한 느낌이 들었다.
티에르노가 생각하기에, 세레나는 사실 조금 완고하고 딱딱한 면이 있었다.
그 이유가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순수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되는건지 잘모르겠지만
일단 이 바닥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란걸 생각해보면 그저 답답하고 멍청한 짓일 뿐이다.
목적에 전혀 맞지 않는 쓸데없는 짓들을 반복하며, 괜스레 자가당착의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라 느꼈다.
"관장은 다했냐?"
아직 반도 채 피지않은 담배를 털며, 세레나에게 물었다.
텀블러 잔에 든 내용물을 홀짝이던 세레나는 이번에도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엎드려라"
원피스를 들어올려 세레나의 배를 까보니, 새하얀 몸 여기저기 피멍이 들어있었다.
"개자슥, 상품을 이따구로 써먹으면 쓰나 좆같은 새끼"
는 쓰다지쳐 관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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