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아니 어제) 피맛골 후기.

먼저 난 내한보다 라이센스 뮤지컬이 좋고, 우리 배우들이 우리 말로 노래하는게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어떻게든 좋은 창작 뮤지컬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음. 글구 나 은태 정말 이뻐라함.

그러니 내가 피맛골을 얼마나 기대했겠...나 보기도 전에 일케 여러 번 표 실결해 놓은 작품은 처음이었음.

갤 후기도 반응 갈리는 거 같아서 일부러 걍 스윽 넘어가고 제대로 안 보고 갔었는데, 보고 나니 왜 2막에 그런 반응 나오는지 알겠음;;;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진짜 궁금하더라-_-;;

일단 칭찬부터 하자면, 이미 오스트로 풀렸으니 다들 들었겠지만 창작뮤지컬 치곤 넘버 참 훌륭함. 글구 그 넘버를 원 퀄리티 이상으로 소화해주는 주역 배우들이 있음. 무대도 그 정도면 정말 공 많이 들였다는 거 알겠음. 앙상블 퀄리티 자체는 ㅎㄷㄷ할 정도임(하긴 성민페뷔랑 이선생김순택씨가 이름도 따로 안 나오는 앙상블로 올라가 있는 공연이니 뭐..).

글구 난 사실 피맛골이라는 테마도 참 좋았음. 실제의 피맛골이 없어진 마당에, 콘텐츠로나마 피맛골을 남겨놓을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 1막 처음엔 이 공연이 우리 머릿 속에 피맛골을 살아있게 해줄 수 있을지 알았는데, 2막...에 가서 그 생각은 쥐떼와 함께 사라짐-_-;;;

1막은 너무 달린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럭저럭 무난하다고 봐. 물론 뜬금없이 역적집안 자식이 얼케 과거를 볼 수 있게 되었는지..같은 건 집안이 신원이 되었다던가 하는 한 마디 설명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봄. 글구 솔직히...뭔 수로 과거 시험 답안을 대신 써 줄 수 있었는지도 너무 걍 넘어가는 듯...하지만 그거야 스토리 전개를 위해서 그렇다 치고. 김생과 홍랑의 사랑이 좀 급작스럽다 싶긴 했는데, 솔직히 2막이 제대로 만들어졌다면 그것도 넘어갈 수 있었다고 봄. 근데 이 달린다, 는 느낌이 스토리 전개 탓도 있겠지만, 뭔가 오늘따라 오케도 달리는 느낌이긴 하더라. 시작 전에 1부 80분이라고 자막이 뜨던데 1부 끝나고 보니 70분도 안 걸린 듯. 내가 화장실 다녀와서 전화통화 한 시간이 9시 십이분이었음;;; (이건 다른 날도 그런 건지 오늘이 심했던 건지가 좀 궁금)    

2막은.........;;;;;;; 충분한 경고를 듣고 들어갔어도 충격과 공포였음; 2막의 목적은 퀄리티 좋은 앙상블을 최대한 무대에 오랜 시간 올려놓는 거였나 싶더라. 그 님들이 잘한다고 꼭 글케 오래 무대에 올려놓을 필요는 없다고 맨 뒷자리서 보고 있던 유연출께 쪽지라도 쓰고 싶은 심정. 글구 2막이 작가 혼자서 만들어낸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 의견이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꼭 그렇게 새롭고 실험적이고 낯설게 하려고 노력할 필요 전혀 없다고 역시 쪽지쓰고 싶었음. 뮤지컬 스토리는 진부해도 된다고. 그 진부함을 얼마나 고퀄리티로 만드는가가 문제지. 솔직히 짧은 시간에 많은 걸 전달해야 하는 뮤지컬은 스토리 라인 자체는 예상 가능하고 진부해도 큰 문제 없다고 봐. 수많은 작품들이 백만번 우려먹은 환생 컨셉도 적어도 그 뜬금없는 쥐떼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임. 

정말 아쉬운게, 이 작품이 충분히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거라는 거임. 극본을 수십번 갈아 엎었다는데, 그 채택 안 된 극본들 다 뒤져보면 틀림없이 이보다 훨 나은 플롯이 있었을 거라고 봐. 피맛골의 의미는 2막에선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데, 도무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일단 피맛골과 행매라는 코드로 충분히 1-2막을 이어줄 수 있기 때문에 2막에선 환생 스토리로 뭐가 나와도 좋았을 거임. 갠적으로는 독립운동하는 학생복 입은 은태라든가..이런 게 보고 싶었음. 정은씨는 친일파 딸이라던가 뭐 이런 걸로..이런 구도 만들면 2막에서 가장 건질 만 했던 아침은 오지 않으리 노래 그대로 써도 될 거 같고, 2막의 숨어라 사랑아 리프라이즈도 그대로 쓰면 될 텐데. 푸른학 리프라이즈가 아까우면 그거야 2막 초반에 잠시 넣으면 그만이고. 행매가 죽는 것도, 실제로 피맛골이 사라진 것과 겹쳐서 의미부여하면 훨씬 좋을 거 같았음. 난 정말 진부하게 "실제의 피맛골은 사라졌어도 피맛골의 옛 이야기는 남았습니다" 같은 자막 나왔어도 아마 울었을 거임(..) 

그러니 두고두고 올릴 거면 제발 2막을 전면적으로 좀 갈아 엎습니다;;;; 나 진챠 조기예매 4만천원으로 보고 걍 1막 값이라고 생각하기에 망정이지 보통 세종 대극장 가격이었으면 정말 2막에서 뭐 집어던지고 싶었을 듯.

사소한 이야기 몇 가지 더 하자면 은태 캐러는..깨방정에 귀엽긴 한데, 김생어르신보다는 김생도련님, 이었으면 하는 건 내 욕심인가요. 그 능글능글 어르신 캐러가...내가 이제까지 봐온 은태 페르소나랑 살짝 어긋난다는 느낌. 난 은태는 아직 \'노래하는 청년\' 일때가 제일 매력적인 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해서, 좀 더 청년, 혹은 소년스럽게 캐러를 만들어줬으면 했어. 능글한 해결사보다는 서출이라는 출신 때문에 좀 더 상처받고 쓸쓸한 도련님이었으면, 그래서 피맛골 주민들이 어르신~ 보다는 아이구 측은한 도련님- 하고 좀 우쭈쭈해주는 거였으면 난 더 좋았을 듯. 이건 원캐이니 딱히 어렵지 않았을 거 같은데. 잭더리퍼도 다니엘 배우 특성 맞춰서 캐러 만드는 판에, 창작은 그 정도 유도리는 충분히 더 발휘해도 되지 않나 싶어.  

정은씨는....솔직히 오늘 은태는 오스트보다 목상태 좀 별로라고 느껴져서 아쉬웠는데 정은씨 노래에서 팔에 소름돋았음(...) 정은엠마여 제 통장을 바치겠습니다, 하고 속으로 되뇌었네요. 로맨스로맨스 때도 느꼈지만 정은씨 진챠 레알 대극장용 배우. 글구 어지간한 남자배우들은 인제 정은씨랑 듀엣 부르면 목소리 안 묻히게 바짝 긴장해야 할 듯.

근데..홍랑 한복 좀 어뜨케 해줬으면 싶었던 건 내 욕심인가효; 그 핑크랑 하늘색 조합은 나오는 여배우들 한복 중에 제일 촌스럽고 둥둥 떠.........의상비 부족한 거 같지도 않은데 왜 그럴까.

임현수씨는 분장 글케 하니 못 알아볼 뻔 했는데, 보는 내내 저 님 저런 거 하고 싶어서 아르코 백작 얼케 하셨나 싶었음;;; 완전 모촤의 대주교 소환삘...베로나 영주님 때도 카리스마는 넘쳤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ㄷㄷㄷㄷㄷㄷㄷ

한강에 빠뜨리는 영상 쏘는 장면에서 몬테가, 김생 둘러싼 군무 장면에서 모촤가 생각난 건 내가 몬테랑 모촤를 너무 많이 본 탓이라고 해 두겠음.

암튼 뭐...여기서 아무리 떠들어 본들 이번에 바뀔 수는 없는 거고, 이런 소리 함에도 불구하고 난 또 보러 가겠지만 처음 생각한 만큼 다 보지는 못할 거 같긴 함........배우들 때매 한 번만 보기는 분명 아까운 공연인데, 그렇다고 달리기엔 너무 정신적 데미지가 큰 공연이긴 하네. 이대로 바이바이하기는 대형 창작이 없는 우리 현실에서 분명 아쉬운 퀄리티이니 어떻게든 좀 해 주길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