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은 포르쉐에게 의미가 큰 날이었다. 이날 포르쉐는 전기차로 거듭난 2세대 마칸을 공개해 전동화 미래로의 새로운 한 발을 내디뎠다. 이는 단순 신차 발표에 지나는 일이 아니다. 내연기관 모델이 세대 변경을 거치며 전기차로 완전히 전환된 경우는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운전 재미와 감성이 핵심인 포르쉐가 이 같은 행보를 보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혹자는 마칸이 SUV이며 본격적인 스포츠카가 아니기에 과감히 전동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포르쉐가 카이맨과 박스터 전기차도 준비 중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포르쉐의 과감한 전동화 행보에 기대보단 우려가 큰데, 당연히 그럴 만하다. 단지 전기차에 기계적 매력이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다.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던 상대와 저울질 되며, 심지어 그 격차가 줄어드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부족함 없는 성능 문제는 비교 상대?
폭스바겐그룹 전기차 이키텍처 ‘PPE’가 기반인 신형 마칸은 마칸 4, 마칸 터보 등 2가지 사양으로 나뉜다. 모두 듀얼 모터 사륜구동 레이아웃으로 마칸 4는 최고 출력 408마력과 최대 토크 66.3kgf.m, 마칸 터보는 각각 639마력, 115.2kgf.m를 발휘한다. 0~100km/h 가속은 각각 5.2초, 3.3초에 끊으며, 최고 속도는 220km/h, 260km/h에서 제한된다.
CATL에서 공급하는 100kWh 리튬이온 배터리를 얹어 마칸 4는 1회 충전으로 613km(WLTP 기준), 마칸 터보는 591km를 주행할 수 있다. 제원표에 적힌 숫자만으로 자동차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쯤 되면 비슷한 체급, 비슷한 성능의 다른 차량과 비교되기 마련이다. 포르쉐라면 프리미엄 브랜드 전기차가 자연스러운 경쟁 상대겠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이 차’를 엮었다.
현대차 아이오닉 5 N 반값이지만 성능 비슷
현대차 아이오닉 5 N은 마칸 터보와 비슷한 성능을 갖췄다. 듀얼 모터 사륜구동 구성으로 합산 총출력 650마력, 최대 토크 78.5kg.m를 내며, 0~100km/h 가속은 3.4초에 끊는다. 배터리 용량이 84kWh로 비교적 낮아 WLTP 기준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는 448km에 그친다. 하지만 가격은 마칸 터보의 절반을 약간 넘길 뿐이다.
많은 이들이 해당 비교의 적합성에 의문을 가지는데, 현재 상황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가령 전동화 시대 전에 판매된 현대차 제네시스 쿠페 380 GT는 당대 판매되던 포르쉐 911 기본 사양과 비슷한 출력을 갖췄음에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동력을 전달하는 변속기와 운동 성능을 좌우하는 하체, 중량 등의 변수가 이 둘의 격차를 완전히 벌려놨기 때문이다.
성장세 무서운 대중차 업계 내연기관 시절 영광은 끝?
하지만 전기차는 모터가 구동륜과 직결되니 변속 속도, 동력 전달 효율 따위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가속 성능 부분에서는 대중차와 기존 스포츠카 브랜드의 격차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포르쉐가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섀시 세팅 노하우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대차의 운동 성능 역시 도전장 정도는 내밀 수준까지 올라왔다. 아이오닉 5 N의 차체 중량은 마칸 터보보다 0.2톤가량 더 가볍다. 회생 제동 시스템의 최대 감속도는 0.6G로 타이칸(0.4G)보다 높다. 신형 마칸에 아이오닉 5 N의 두 배 값을 치를 가치가 있는지 질문한다면 고민 없이 Yes를 외칠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마칸의 직접적인 경쟁 상대가 딱히 없다는 점이다. 더구나 든든한 충성 고객층과 브랜드 가치를 생각하면 판매량을 걱정할 상황도 아니다. 하지만 포르쉐가 전동화 시대에도 경쟁력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대중차 브랜드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유의미한 격차를 벌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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