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란 조선시대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 장군에게 파견됐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뜻합니다. 외교 사절이지만 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문화상 교류도 성대하게 이뤄졌습니다.
이에 <게임조선>에서는 '게임을 통해 문화를 교류한다'라는 측면에서 게임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조선통신사'라는 기획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최근 뜨거운 화제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까지. <게임조선>이 매주 색다른 문화 콘텐츠를 전달해드리겠습니다.
[편집자 주]
6월 막바지에 출시하여 2024년 상반기의 마무리를 화려하게 장식한 '엘든 링'의 DLC '황금 나무의 그림자'는 출시하자마자 높은 완성도와 퀄리티를 통해 역대 DLC 중 가장 높은 평점과 가장 빠르게 500만장 판매를 기록했으며, 본편 이상으로 악랄한 난도와 설계 그리고 DLC로 게임을 처음 시작하는 이용자들에게는 '별 부수는 라단'과 '피의 군주 모그'를 처치해야만 입장을 시켜주는 악랄한 입구컷을 제시하며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
물론 이는 제 발로 '유다희' 지옥으로 걸어들어가는 게이머들의 정신 건강을 지켜주는 동시에 입구컷도 못 넘을거면 클리어는 꿈도 꾸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와도 같은 수문장 역할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는 온갖 게임을 플레이하며 이와 같은 입구컷 수문장은 몇 번이고 만나왔다.
바로 아래의 사례들처럼 말이다.
■ 너, 먼저 공격했구나? 응, 안 내려갈게
'레드 아리마'는 마계촌 시리즈에서 가장 유명한 적 캐릭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즈를 눈감고 깰 정도로 하드하게 파본 사람이면 몰라도 게임을 플레이해본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마계촌 1편, 1스테이지의 공동 묘지 파트와 숲 사이 등장하는 중간 보스인 레드 아리마조차 넘기지 못하여 이후 등장하는 보스와 숱한 적 캐릭터들을 당연히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레드 아리마가 이토록 마계촌 플레이어들의 영원한 악몽으로 자리 잡은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AI가 플레이어의 키 입력을 인지하고 그에 맞춰 대응하는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마계촌은 조작감, 특히 점프와 공격 연사가 캐슬바니아 1편과 함께 플랫포머 액션 게임 중에서는 1, 2위를 다툴 정도로 최악에 가까운 성능을 자랑하는데 까마귀와 같은 비행 크리쳐들은 기본적으로 날아드는 속도와 궤도가 매번 달라 대응이 어렵고 레드 아리마는 거기에 한 술 더 떠 '정확하게 날아드는 타이밍에 공격을 맞히는 카운터'가 아니라면 플레이어 캐릭터인 아서가 공격을 날리는 족족 그에 맞춰 고도가 상승하는 회피 기동을 해버린다.
물론 오래된 게임이다 보니 고인물들이 클리어를 위한 다양한 공략법과 꼼수를 개발하긴 했다. 심지어 후반부에서는 레드 아리마가 줄줄이 사탕으로 나오는 구간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공략에 익숙해져아만 한다.
하지만, 이를 미리 알지 못하고 처음 게임을 찍먹하는 플레이어에게 레드 아리마는 패드를 집어던지고 싶게 만드는 난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 공략법을 알고 있어도 그걸 정확하게 실천하는 게 쉽지 않은 환경이니 그 악랄함은 앞으로도 쭉 이어져 내려갈 것이다.
■ 탈 라샤의 방에 진입, 죽었습니다. ESC를 눌러 계속하십시오.
디아블로 2에서 2막(액트 2)의 보스로 등장하는 두리엘은 플레이어들이 적당한 수준의 육성 상태로는 클리어가 굉장히 힘든 것으로 악명을 떨쳤다. 사막 곳곳에 흩어진 온갖 유물을 모으고 8개로 나뉘어진 무덤 중 진짜 탈 라샤의 무덤을 찾아야하는 과정도 번거롭기 그지 없었지만 보스 자체가 강한 '보자강'에다가 게임이 현역으로 굴러가던 당시 게임을 구동하는 플랫폼인 PC의 한계라는 외적 문제 또한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보스의 스펙과 패턴을 보면 빠른 이동속도와 공격속도, 강타(배쉬)와 돌진(차지)를 사용하여 밀쳐내기와 무력화를 시도하며 냉기 속성이 부여되어 있고 신성한 빙결(홀리 프리즈) 오라를 두르고 있다.
해당 옵션들을 분리해서 두고 보면 사실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다. 암만 빠르다고는 해도 고유 괴물에게 부여되는 옵션 중 매우 빠름(엑스트라 패스트) 수준으로 빠르지는 않고 냉기 강화 속성은 맞을 때마다 번개를 뿜어내거나 처치 즉시 엄청난 피해를 입하는 다른 속성 강화에 비하면 그리 위협적이지 않으며 강타와 돌진은 마법이 아니기 때문에 필중 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리엘을 상대하게 되는 전용 맵인 '탈 라샤의 방' 하나로 두리엘은 많은 이들의 악몽으로 자리 잡았다. 맵이 워낙 좁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빠르지 않은 두리엘의 추격을 떨쳐내기 어렵고 숨거나 도망다닐만한 지형지물도 없으며 강타와 돌진을 한번 맞기만 하면 무력화된 상태로 벽으로 몰리기 때문에 연타로 두들겨 맞아 '루트 골레인' 마을로 사출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다른 몬스터가 두르고 있으면 그저 귀찮은 정도인 신성한 빙결 오라가 좁은 맵이라는 특성과 합쳐져 더욱 두리엘의 상대를 피곤하게 만들었는데 1막 보스였던 안다리엘은 '해독 포션' 하나만으로 손쉽게 주요 패턴을 무효로 할 수 있었지만, 신성한 빙결은 이펙트만 냉기일 뿐 '해빙 포션'으로 해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두리엘이 입구컷으로 쐐기를 박은 것은 게임 외적 문제인 '렉'이었다. 당시 PC의 사양이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좋지도 않았고 디아블로 2는 원래부터 로딩 관련 이슈가 있었는데 이 '탈 라샤의 방'은 유독 입장할 때 렉이 자주 걸리기로 유명했기에 입장 즉시 캐릭터는 두리엘의 보이지 않는 맹공에 누워있고 두리엘만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본래 이명인 '고통의 군주' 보다는 게이머들이 지어준 '로딩의 군주'라는 별칭이 더 유명할 정도다.
■ 지금까지의 체육관전은 잊어라, 이것이 실전형 기술배치
포켓몬스터 금·은에서 세번째로 등장하는 금빛시티의 체육관 관장 '꼭두'는 꿈과 희망 가득하던 많은 어린이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신 분 되시겠다.
모든 RPG가 으레 그렇듯이 포켓몬스터 또한 시리즈마자 중간중간 난도가 급상승하는 구간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레벨 노가다와 상성에 맞는 몬스터와 기술 배치로 극복이 가능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면 꼭두는 초반부에 상대하는 관장치고는 게임을 1회차 클리어하고 실전에 투입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으로 에이스 몬스터를 육성해뒀다는 점이었다.
문제의 에이스 몬스터는 바로 '밀탱크'로 진화 루트가 없는 단일 포켓몬이기 때문에 기본 스펙이 좋긴 해도 배틀 환경에서 사기 수준의 성능을 지닌 것은 아니었으나, 앞에서도 언급했듯 초반부에 고스펙 그것도 스피드가 빨라 어지간하면 선공권이 보장되는 등 능력치 배분이 아주 좋은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는 특수성 그리고 몹시 실전지향형 기술 배치를 통해 덤벼왔기 때문에 난항을 겪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심지어 꼭두의 밀탱크는 기술 배치조차 환상적이었다. 짓밟기와 헤롱헤롱은 선공권이 밀탱크에게 있어 플레이어의 몬스터에게 상태이상을 걸어 수시로 행동불능을 유도했고 피해를 좀 누적시켜두더라도 전용 기술인 우유마시기를 통해 잃은 체력을 회복하며 동일한 대상에게 기술을 반복 사용하며 적중할 때마다 위력이 배가 되는 구르기를 보유하는 등 악랄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다.
이렇듯 실전에 내보내도 손색 없는 밸런스의 기술 배치 때문에 먼저 선봉으로 등장한 삐삐를 어렵잖게 쓰러트린 뭇 트레이너들은 꼭두의 벽을 쉽게 넘지 못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다.
지금이야 마계촌의 레드 아리마와 마찬가지로 첫 상대 시점에서 유효한 알통몬이나 꼬마돌 등 격투나 바위 타입 포켓몬 준비하기, 저주나 최면술 등으로 무력화하기 등 다양한 공략 방법과 꼼수가 개발 및 공유되었기 때문에 꼭두와 밀탱크의 악명이 지금까지 현역 시절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게임이 현역이던 시절 많은 어린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보던 TV 애니메이션에서도 꼭두의 밀탱크가 게임과 비슷한 전개로 선봉과 중견으로 나선 니드리나와 삐삐가 손쉽게 쓰러지고 밀탱크의 구르기고 리버스 스윕을 기록하는 장면이 나왔기에, 누군가는 게임 내에서 꼭두의 악명은 어느 정도 추억 보정이 들어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자. 사전지식과 공략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초반부 보스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친구는 준비 안되면 클리어 못하는 '입구컷'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증거다.
[신호현 기자 hatchet@chosun.com] [gamecho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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