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처음 만난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은 피가 낭자한 음모와 나의 선택에 따라 무수한 이들이 희생되거나 생존하는 등 암울한 다크 판타지의 세계를 제대로 선사하며, 기존 게임과 확연히 다른 맛을 보여줬다.
드래곤 에이지: 더 베일가드
심지어 모두가 별로라고 이야기했던 '드래곤에이지2'도 상당히 재미있게 플레이했었고, 3편인 '인쿼지션'도 바쁜 와중에도 100시간이 넘게 플레이했을 정도로 이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는 언제나 즐거움을 안겨주는 게임 중 하나였다.
이에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4편 ‘드래곤에이지: 더 베일가드’(이하 베일가드) 역시 상당히 기대했으나, 게임을 플레이할수록 이 즐거움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바로 개발사 바이오웨어의 집요하고, 고집스러우며, 그악한데다 끈질기기까지 한 PC(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뒤틀린 집착 때문이었다.
우선 ‘베일가드’의 전투와 스킬 구성, 그리고 특유의 장비 파밍이 중점적으로 드러나는 초반부~중반부 초반까지(대략 7시간)는 상당히 재미있다. 솔직히 역대 드래곤에이지 시리즈 중에서도 전투 콘텐츠와 아기자기한 맵 구성, 다양한 사물과 연동되는 퀘스트 시스템은 손에 꼽힐 정도다.
다양한 장비를 착용할 수 있다
먼저 게임 속 직업(클래스)은 워리어, 로그, 메이지 등으로 구분되어 시리즈의 전통을 지킨 모습이며, 직업마다 별도의 장비가 등장하고, 전투 스타일이 크게 달라져 이용자의 취향에 따라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는 선택지가 확 줄었다
여기에 클래스 선택 이후 진영을 결정할 수 있는데, 이 진영에 따라 대화문이 달라지고, NPC들의 행동이나 선택할 수 있는 스토리 방향성이 달라져 상당한 자유도를 부여한 느낌이었다.
전투는 상당히 화려하다
후반부 지겹도록 할 드래곤 전투
다양한 장비와 이를 활용한 액션도 상당한 재미를 보장한다. ‘베일가드’의 무기는 방패 & 활과 무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일반 무장과 거대한 무기를 휘두르는 양손 무장으로 나뉘며, 수 백 종의 무기와 장비, 액세서리 등장해 다양한 스타일로 전투를 즐길 수 있다.
독특한 옵션과 패널티를 지닌 유니크 아이템
특히, 고유 아이템인 유니크 장비의 경우 상당히 뛰어난 옵션과 이에 비례하는 높은 패널티가 동시에 부여되어 있는데, 위험 요소를 즐기는 이들이나 독특한 플레이를 원하는 이용자라면 이러한 유니크 장비를 착용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다.
패링 타이밍
다양한 스킬 조합이 가능하다
NPC 스킬 조합으로 강화할 수 있다
전투는 많이 너프된 ‘소울라이크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게임 속 적들의 공격은 패링(반격)할 수 있는 일반 공격과 방어 불가 공격으로 나뉘는데, 패링 타이밍이 상당히 너그럽고, 패링이 제대로 적중하면 적들이 일시적으로 스턴이 걸려 타이밍에 맞추어 공격을 진행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여기에 동료 NPC의 스킬 조합으로 스킬 대미지를 높이고, 주인공의 스킬을 동시에 사용하여 수많은 적을 한 번에 쓸어버리는 쾌감이 상당해서 액션 연출이나 전투 콘텐츠 하나만큼은 시리즈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모습이었다.
맵 구성은 상당히 치밀하고, 직관적이다
캐릭터 고유 능력으로 풀어야하는 퍼즐
외모가 귀여워진 오우거
맵 구성도 고평가를 줄 만하다. 사실 이번 ‘베일가드’의 맵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지나가는 장소 구석 구석마다 재료나 상자가 존재하고, 좋은 장비 상자를 찾을 수 있는 퍼즐 장치도 곳곳에 등장해 이를 찾아내는 재미도 상당했다.
다양한 퍼즐로 길을 헤처나가자
귀중품을 팔면 진영 등급을 높일 수 있다
아울러 같은 맵이라도 퀘스트 및 스토리 진행에 따라 사다리가 내려오거나, 닫혀있던 문이 열려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는 등 맵이 적은 만큼 구성을 상당히 치밀하게 해놓아 탐험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처럼 탐험과 퀘스트, 장비 조합과 아이템 파밍 등이 중점이 되는 초반부까지 ‘베일가드’는 상당한 재미를 보여준다. “망작이라고 하더니 의외로 재밌네?”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재미는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짙어지는 바이오웨어의 PC(정치적 올바름)의 강요로 모두 가려져 버리고 단점만 드러나 버린다.
그래픽은 그냥저냥한 수준
캐릭터를 선택해 전투에 나설 수 있다
이 게임에서 바이오웨어는 “아니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할 정도로 광적으로 ‘성(性)’에 집착한다.
캐릭터 커스터마이징부터 성전환 수술로 인해 가슴에 남는 흉터를 구현한 것부터 시작해서 여성 캐릭터도 ‘고간’을 늘릴 수 있지만, 가슴과 둔부 크기는 거의 키우지 못할 정도로 제한하여 “절대 남성이 좋아하는 요소는 넣지 않겠다”라는 의지를 보여준다.
시작부터 이런다고?
여자도 고간을 키우는 진보적인 게임
여기까지도 억지로 넘어갈 수 있겠지만, 바이오웨어는 이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판타지 세계관이나 사건에 1도 상관이 없는 ‘논바이너리’(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 ‘트랜스젠더’ 등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선택지를 끊임없이 등장시킨다.
이게 게임과 무슨 상관이 있죠?
아니 그 맘대로 하셔요 그걸 왜 저한테...
이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동료 NPC인 ‘타쉬’의 스토리다. ‘타쉬’의 동료 퀘스트는 본인은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 ‘논바이너리’로 변화하는 내용으로 진행되는데, 이 정체성 변화에 무조건 동조를 해줘야 스토리가 진행된다. (반대는 허용되지 않는다.)
아니 그니까 상관 안한다고요!
반대는 반대한다
이는 사실상 사상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인지라, 평소에도 성적 정체성 이슈에 대해 “본인은 얼마나 힘들겠어, 자기가 좋으면 된 거지”라는 생각을 가졌던 본 기자도 심히 불쾌한 느낌이 들 정도여서 스토리 진행을 포기할 정도였다.
아시아인은 수학을 잘하니 아시아 엘프는 공학을 잘함
여기까지만 해도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나, 바이오웨어는 이에 굴하지 않고, 가속 페달을 밟아버린다. 바로 남성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고, 깎아내리는 가장 저급한 방식으로 PC(정치적 올바름)를 부각한 것이다.
우선 ‘베일가드’에 등장하는 모든 진영의 대표자는 여성이다. 이 여성들은 발언권이 가장 강하며,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핵심 NPC로 등장하고, 전투 역시 모두 여성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서사에 비해 남성들은 딱 두 가지 역할만 지니고 있다. 이 여성들을 서포트 해주거나, 아니면 사건을 일으키는 빌런으로 등장하거나.
연애루트도 당연히 등장
이 대사를 이용자 캐릭터한테 하게 한다고?
‘베일가드’의 남성들은 대부분 몸이 허약하거나, 다정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몸이 건장하다거나, 드센 성격의 캐릭터들은 십중팔구 악역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요소는 스토리 후반으로 갈수록 심해지는데, 억지로 ‘여성의 역할’을 부각시키다 보니 판타지 세계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지고, 스토리가 오히려 단순해져 게임 진행을 방해할 정도로 뻔해진다.
이러한 행태 속에서 본 기자가 가장 분노한 부분은 시리즈의 핵심 인물인 ‘바릭’까지 무능력한 인물로 전락시켜버렸다는 것이었다. ‘바릭’은 ‘드래곤에이지2’부터 꾸준히 시리즈에 등장한 핵심 캐릭터로, 전용 무기인 ‘석궁’을 ‘비앙카’로 부르며,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이 ‘바릭’은 게임 속 종족 중 하나인 드워프를 대표하는 캐릭터이며, ‘비앙카’와 함께 수많은 모험을 함께한 동료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베일가드’에서는 시작부터 이 ‘비앙카’가 부서지더니, 부상을 당했다는 핑계로 뒷방 늙은이로 전락해버린다.
뒷방 늙은이로 전락해버린 바릭
더욱이 몇몇 핵심 퀘스트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네 마음이 가는 데로 해라”라는 하나마나 한소리나 반복하는 등 아무런 영향력도 전투에 대한 의지도 없는 남자로 등장한다. 플레이 도중 “아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바릭’한테 이러면 안 되지!”라고 분노에 차 소리칠 정도의 푸대접이었다.
여기에 후반부 콘텐츠 역시 전반부의 재미에는 크게 미치지 못해 모든 보스가 드래곤으로 이뤄져 있는 데다 이 드래곤들의 전투 패턴이 전부 똑같아서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기도 어려워 게임이 급속도로 지루해진다.
하...
양심고백합니다. 진짜 캐릭터 보기 힘들어서 모드 깔았습니다
이 와중에 PC(정치적 올바름)로 가득한 NPC와의 대화를 계속 만나야 하는 상황까지 더해지면 초반부의 즐거움은 모두 사라지고, 개발사의 아집과 강요만이 남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한마디로 게임이 주는 재미와 흥미 요소는 없어지고, 개발사의 ‘性 역할’에 대한 강요만 반복되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드래곤에이지 더 베일가드’는 흥미로운 초반부를 지나 점점 게임과 관련 없는 PC 사상의 등장으로 재미가 수직으로 하락하는 수많은 게임 중 하나에 불과했다.
몇몇 해외 언론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올해의 게임’(GOTY) 유력 후보라고 주장하지만, 단언컨대 후반부까지 게임을 진행해보고 이런 소리를 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으리라는 것이 본 기자의 생각이다. (아니면 원래부터 이런 사상 강요를 즐기는 이들이거나)
아 그만 나와
안녕 마지막 바이오웨어 게임아....
이 게임의 엔딩을 보면서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내가 좋아했던 바이오웨어는 이제 끝인가보다”라는 것.
‘메스이펙트’, ‘드래곤에이지’, ‘스타워즈 구공화국 기사단’ 등의 명작을 선보이던 반짝이는 이들은 간데없이 ‘앤썸’이나 ‘안드로메다’ 같은 실패작을 양산하고, 자신들의 사상을 돈을 주고 게임을 산 이용자에게 강요나 해대는 저급한 이들을 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도 ‘베일가드’를 마지막으로, 앞으로 ‘바이오웨어’의 게임은 하지 못할 것 같다. 재료(PC) 하나 때문에 악취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치워버리게 되는 그런 게임을 더 이상 돈을 주고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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