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메카=이재오 기자] 크래프톤이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었던 '에어'가 갑자기 이름을 '엘리온'으로 변경한다고 했을 때는 내심 노심초사했다. 갑작스레 게임 콘셉트가 변경된 게임 치고는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선보였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에어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었던 공중전을 없앤다는 소식에 그에 준할 만한 새로운 요소를 확립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다행히도 지난 26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2차 서포터즈 테스트를 통해 즐겨본 엘리온에선 예전 에어의 공중전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정체성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다양한 형태의 스킬 커스터마이징과 체계적인 대규모 진영전이다. 테스트 단계인 만큼 다소 아쉬운 부분은 있었지만, 그 옛날 와우에서 느낄 수 있었던 진영끼리의 격렬한 충돌만큼은 테스트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액션은 극대화하고, 지루한 진행은 확 줄이고
엘리온은 과거 에어 시절 느낌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일단 전반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다. 공중전을 내세운 에어 시절에는 스팀펑크 특유의 기계 문명이 느껴졌다면, 공중전이 없어진 엘리온에선 보다 정통 판타지에 가까운 분위기를 보여준다. 게임 주요 시나리오는 낙원으로 갈 수 있는 포탈 '엘리온'을 놓고 신흥 세력인 온타리와 왕국을 부흥하려는 귀족 세력 벌핀의 충돌과 공공의 적인 검은 사도를 두고 벌어지는 암약을 다루고 있다.
기존에 논타겟팅과 타겟팅이 섞여 있던 조작법은 테라가 연상되는 완전한 논타겟 형식으로 바뀌면서 액션성이 한층 극대화됐다. 공격방식은 좀 더 직관적으로 변한 대신, 좀 더 정밀한 컨트롤과 콤보 플레이가 중요해졌다. 적을 띄우거나 눕힌 다음 스플래시 대미지가 들어가는 공격이나 광역 공격으로 딜을 넣은 뒤 회피기로 도망가는 식의 정확한 운용이 중요하다. 콤보가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듯이 전투 중에 스타일 랭크가 나오기도 한다.
이 액션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바로 스킬 커스터마이징이다. 엘리온에선 전에 예고했던 대로 똑같은 스킬이라도 유물과 룬 여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가령 유물을 사용하면 아무 효과도 붙어있지 않은 평범한 난사 스킬에 속성을 추가해 다른 광역기와 연계할 수도 있으며, 아예 후속타를 추가해 두 번의 강력한 공격을 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치명타나 체력 등을 올려주는 룬을 장착하고 룬 특성을 활성화하면 치명타에 적 피를 흡수하는 기능을 넣거나 확률적으로 적이 기절하는 능력 등을 추가할 수 있다. 후반에 수십 개에 달하는 스킬과 룬을 놓고 조합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한 시간은 우습게 흐를 지경이다.
또한 다소 복잡하거나 의미 없던 퀘스트 동선도 매우 단순해졌다. 일전에는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하며, 이벤트도 없는 동굴을 탐험하는 등 동선 낭비가 심했다면, 지금은 그럴 필요 없이 중요한 대화는 근처에서, 꼭 필요한 행동만 마을 밖에서 하면 되는 식이다. 더불어 제한 레벨 때문에 스토리 진행이 막혔을 경우 퀘스트 수행원에게 다수의 퀘스트를 받아서 즉시 레벨을 올릴 수 있다. 서브 퀘스트 또한 대부분 몇몇 지역을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깰 수 있도록 치밀하게 구성돼 있어 크게 지루한 부분 없이 진영전이 가능한 35레벨까지 올릴 수 있다.
스케일과 구성 모두 맘에 들었던 진영전
이번 테스트의 목적이자 엘리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진영전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나 잘 만들어졌다. 200 대 200으로 펼쳐지는 엘리온의 진영전은 인스턴스 지역이 아닌 일반 필드에서 진행된다. 분쟁 지역에서 40분 동안 상대편 진지를 점령하고 이프리트 드래곤이나 대형 마갑기 등을 처치해 더 많은 점수를 딴 진영이 이기는 구조다.
진영당 2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전투답게 전장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포지션을 잘못 잡는 순간 누구에게 공격당하는지도 모르고 죽기 마련이며, 어떤 움직임이 우리 팀에 도움이 될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채팅창을 보고 다른 플레이어의 지시에 맞춰서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전열이 갖춰지고 전선이 형성된다. 처음엔 다소 당황할 수 있지만 차근차근 적응하며 진영전 특유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다.
엘리온 진영전의 가장 큰 장점은 레벨이 낮은 유저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레벨이 낮아 공격력도 낮고 공성병기도 안 가진 유저는 팀에 도움이 안 되기 마련인데 엘리온에선 그렇지 않다. 발리스타나 대포를 이용해 적이 밀집한 곳이나 대형 마갑기에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며, 우리 팀이 불리하거나 앞으로 전진할 때 소환되는 마갑기를 타고 부상병을 치료하거나 공격력과 방어력 버프를 걸어줄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공성병기도 무적은 아니라서 집중 공격을 받으면 금방 녹아버리기 일쑤며, 소환 시간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전략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초보자도 배려하면서 게임이 단순하게 흐르지 않도록 밸런스를 잘 조절했다고 느껴졌다.
더불어 전장 내에서 부상병을 치료하거나 진지를 점령하고, 적이 소환한 이프리트 드래곤, 지휘관 등을 처치하면 개인 점수를 부여하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이 개인 점수는 곧 플레이어 개개인의 보상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진영전을 플레이함에 있어 큰 동기부여가 되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팀에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엘리온이 진영전에 몰입할 수 있도록 스토리와 퀘스트를 진행하는 내내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점이다. 사실 현재 엘리온은 캐릭터 더빙이 안 되어 있고 컷신이 부실하다 보니 스토리가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토리 진행 중에 지속적으로 마을을 습격한 적대 세력을 상대해야 하며 퀘스트 중에도 소규모 분쟁이 발생한다. 플레이어는 이를 통해 게임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가 진영전이며, 게임 내 상황이 분쟁 중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덕분에 진영전에 훨씬 쉽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유저가 원하는 것은 좀 더 쾌적한 진영전
진영전 외에도 이번 테스트에선 다양한 PvP가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PvP는 필드에 함께 소환되는 몬스터를 처치하고 새로운 능력치를 얻거나 점수를 얻어 상대팀을 축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비유하자면 진영전을 소규모 인원이서 진행하는 것에 가까웠다. 기계 몬스터를 부수고 모은 부품으로 마갑기를 소환해 싸우는 마갑기 공장도 마찬가지며, 분쟁지역에서 발생하는 RvR 콘텐츠인 심판의 거인도 비슷한 골자다. 여타 PvP는 매칭을 걸어놓고 사냥을 즐길 수 있어서 꽤 재밌게 자주 즐길 수 있었지만, 심판의 거인은 특정 분쟁지역에서 정해진 시간에만 발생하는 콘텐츠다 보니 때를 놓쳐 즐길 수 없었으며, 클랜전 또한 테스트 기간이라 유령 클랜이 많아 체험해보기 쉽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훌륭한 인상을 남겨준 엘리온의 두 번째 테스트였지만 그만큼 고치면 좋을 부분도 눈에 띄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최적화다. 대규모 PvP를 내세운 게임인 만큼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를 대비해 최적화 작업을 충분히 해놨어야 마땅하지만 이번 테스트에서는 해당 부분이 많이 미흡했다. 서버렉과 프레임 저하 등으로 인해 조작이 제대로 힘들었을 정도다. 여기에 더불어 피아식별이 제대로 불가능한 UI까지 더해져서 권장사양을 넘긴 PC에서도 일정 구간이나 상황에선 진영전을 제대로 진행하기가 힘들었다.
더불어 개성 없고 비슷한 디자인의 캐릭터 또한 다소 수정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내에서 출시되는 MMORPG가 전반적으로 지닌 문제점이기도 하다. 엘리온의 경우는 주역 캐릭터나 잡화상인, 퀘스트 수행원이 모두 똑같은 생김새에 헤어스타일과 복장만 다르게 하고 있을 뿐이라 몰입감이 크게 떨어진다. 더불어 작고 불편한 UI와 가시성이 떨어지는 이펙트, 긴 로딩 등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고쳐야 할 부분은 아직 남아 있지만 엘리온의 2차 테스트는 꽤나 성공적이라고 할 만했다. 무엇보다 공중전이라는 핵심 콘텐츠를 과감히 포기하고 나서도 마갑기 등이 포함된 대규모 진영전과 스킬 커스터마이징을 이용한 독특하고 깊이 있는 액션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남은 과제는 이 정체성을 더욱 보기 좋게 다듬는 것이다. 엘리온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만큼 좋은 모습으로 출시돼 다시금 침체기를 겪고 있는 PC MMORPG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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