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오늘 야구경기 했다는 말 하지마라. 창피하다" 지난 22일밤 구덕운동장 야구장을 빠져 나오면서 20대 부산청년들이 귀엣말로 나눈 말이다. 자이언츠 팬인 이들은 롯데가 삼성에게 1-15로 대패하자 "이런 게임을 보려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게 한심하다"는 의미로 이같은 얘기를 건넨 것이다.

이날 유료관중은 1만 2백명. 1만 4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구덕경기장을 거의 메웠다.

23일 저녁 계속된 롯데-삼성전에서 본거지 롯데구단 사람들은 전날 참패와 최근의 극도로 저조한 팀 성적을 감안할 때 2, 3천명 정도가 다시 찾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스탠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관중들로 덮였다. 유료관중 8천 4백명, 삼성 팬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롯데팬이었고 이날 저녁 3개 도시 구장에서 열린 경기 중 가장 많은 관중이 찾아들었다.

부산시민들의 스포츠열기는 예전부터 굉장하다. 특히 프로야구라면 광적이다. 

올시즌 들어 부산 경기 한 게임 평균 관중이 7천 5백 89명(23일 현재). 한 게임 평균 2만명 가량이 입장을 해야 프로구단은 적자를 면한다고 하지만 부산은 6개 도시 구단 중 관중동원이 가장 짭짤하다. 롯데보다 성적이 앞서고 인구가 3배 가까이 되는 서울 잠실구장 평균 관중이 9천 5백 81명인 것과 비교하면 부산 팬들의 프로야구 관심도를 알 수 있다.

부산 경기는 거의 빠짐없이 구경한다는 김춘식씨(34·회사원)는 "요즘 롯데가 깨지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밀지만 원래 야구가 재미있읍니다. 또 롯데가 아무리 져도 자꾸 성원해줘야 되지 않겠읍니까"라고 순수한 팬임을 자부한다. 올해 들어 5번쯤 구덕경기장을 찾아왔다는 이명동씨(42·상업)는 "요즘은 TV에서도 중계를 잘 안해 좀이 쑤셔 못 견긴다"고 말했고 회서원인 서지숙양(24)은 "김용희, 최동원 선수를 좋아하는데 요즘 잘 때리지 못하고 자꾸만 져서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곧 잘할 것으로 믿고 자꾸 구경오는 것입니다"라며 웃는다.

롯데팀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증오심(?)을 품고 경기장을 찾는 팬도 상당수다. 이만수, 장효조가 나오면 "또 하나 때려라"라는 응원소리가 작지 않고 김일융의 시원시원한 피칭에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한다. 짓궂은 어떤 팬은 "롯데가 잘하는 길은 한 가지 있다. 울릉도로 본거지를 옮겨 그곳에서 리그전을 하면 우승을 할 것이다"라고 시니컬한 농담을 던진 것이다. 

23일 경기도 0-1로 완봉패한 후 구덕운동장 주위에는 섬뜩한 느낌을 주는 유인물이 나돌기도 했다. 공책 크기만한 시험지에 등사된 인쇄물이었는데 '때려잡자 롯데, 쳐부수자 롯데'라는 구호와 롯데 구단이 부산시민들에게 실망을 많이 주므로 해체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호소한다는 것이었다.

롯데 구단을 사랑하든 욕을 하든 그만큼 부산 팬들은 애정을 갖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요즘 일본에서는 최고의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기대 밖으로 부진한 성적으로 내고 있어 일본 경제 GNP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런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다 해도 부산시민들은 롯데에 대해 대단한 애착심을 갖고 있다. 롯데의 분발만이 모든 일을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 지름길이다.

[부산=천일평 기자]

1984년 5월 25일 일간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