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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본 짜안한 게시물...Goering`s List

ㅋㅋㅋㅋㅋ(122.46) 2007.10.09 13:26:59
조회 670 추천 0 댓글 4

 

루프트 바페의 수장이자 히틀러의 최측근, 나치 권력의 중추에 있던 헤르만 괴링이 워낙 알려진 인물이니 그의 동생 알버트 괴링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디씨에 이미 올라온 적이 있었나요?


만약 알버트 괴링에 대해 잘 모르셨던 분들은 막연히 그가 나치당에 가입은 했을테고 형의 권세를 등에 업고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으리라 상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버트 괴링은 영화제작자였습니다. 형인 헤르만 괴링이 가졌던 무소불위의 파워를 생각한다면 아주 초라했죠.

형이 히틀러와 함께 나치당을 결성하고 권력의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동생은 오히려 그것을 멀리하고 때론 공개적으로 나치를 비판하기도 하면서 반체제 인사들을 도왔다 합니다.

유태인들의 포르투갈로의 탈출을 돕거나 이주를 알아봐 주었죠.

체코 스코다 공장에 있을 때도 수용소에 가게 된 유태인들을 빼내주기도 하고 그랬다는군요.

또 나치치하 독일에서 탈출시킬 자금을 모으기 위해 게쉬타포로부터 추적당할 위험이 있는 은행구좌도 가지고 있었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성 \'괴링\' 때문에 연행, 투옥, 방면을 반복하면서 힘든 시절을 보냈다 합니다.

그의 선행또한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고...

참고사이트 입니다.

<U>http://www.auschwitz.dk/Albert.htm</U>

<U>http://en.wikipedia.org/wiki/Albert_G%C3%B6ring</U>

예전에 PK란 닉을 쓰시는 분의 글을 스크랩 해두었는데...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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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만 하기 미안해서 잘 알려지지 미담 하나 소개합니다.

제목만 보고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일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겁니다.

이 이야기는 나찌독일의 제2인자 헤르만 괴링의 형제인
알베르트 괴링에 관한 실화입니다.

이 두 형제는 가족성만 빼곤 모든 면에서 공통점이 없었습니다.

젊은시절 헤르만은 열정적인 군인으로 1차대전에서 공군에이스로 영웅이 된 반면
알베르트는 평범한 통신병으로 부상을 입은채 군경력을 마칩니다.

패전후 헤르만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히틀러와 나찌당을 결성하지만
알베르트는 기계공학을 공부한후 어느 영화사에 일하게 됩니다.

나찌당이 정권을 잡은후 독일전역에 반유태정책이 시작되었을때
알베르트는 나찌의 인종차별정책에 혐오를 느끼고

주위사람들에게 나찌의 정책을 서슴없이 비판하곤 했으며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나찌가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곧 독일전역에서 유태인 재산몰수와 강제수용이 시작되자
알베르트는 "괴링"이란 자신의 성이 유태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재빨리 깨닫게 됩니다.

SS 에게 끌려갔던 사람들도 나치 권력서열 제2인자의 헝제의 전화 한통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전쟁발발후 체코에 위치한 어느 군수공장의 경영을 맡게된 알베르트는
나찌의 유태인학살에 관해서 알게 됩니다.

그는 그의 성 "괴링"을 이용하여 강제수용소에서 유태인을 공장노동자로
빼내어 오거나 반체제인사의 국외탈출을 돕습니다.

그는 스위스 은행에 비밀계좌를 만들어 탈출자금을 제공하기까지 합니다.

얼마후 알베르트는 그곳에서 체코여성과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반나찌적 행위는 곧 게슈타포의 첩보망에 걸려듭니다.

알베르트가 헤르만에게 보낸 "유태인 학살중지를 간청하는 편지"가
도중에 게슈타포 손으로 들어가게 되고

당시 SS의 거물이자 체코 총독이었던 하이드리히는
이 사실을 SS 장관 히믈러에게 보고합니다.

당시 헤르만 괴링과 권력암투를 벌이고 있던 히믈러는
히틀러의 후계자를 숙청할 수 있는 좋은 호재로 여기고

하이드리히에게 알베르트 체포를 준비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이드리히가 체코특공대에 의해 암살되면서
알베르트는 일단 위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이드리히 암살후 나찌의 보복강압정책으로
체코에서 더이상 유태인을 돕는것이 힘들게 됩니다.

전쟁말기 그는 히믈러의 명령에 의해 자택에 연금조치되어
그곳에서 패전을 맞게 됩니다.

(cleve의 보충: 1942년 게쉬타포 우두머리급 하이드리히를 암살한 사건은 영국에서 훈련받은 체코인들에 의해 행해졌으며 이들은 후에 수도원에 숨어있다가 독일군에 포위되어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하이드리히가 살해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체코의 리디체라는 마을을 깨끗하게 몰살시켜 버립니다. \'새벽의 7인\'이란 영화로 잘 알려졌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무척 비장미가 흐르던 영화였죠. 독일군들은 수장시키려 지하실에다 물을 채우고 남은 두사람은 서로에게 총을 쏴 생을 마감하고...

실화와 영화가 다른 점은 실제에서는 독일군이 체코 특공대원들을 사살하는 순간까지도 그들이 하이드리히의 살해범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는 헤르만 괴링의 형제란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연합국의 심문을 받습니다.

나찌 권력 제2인자의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나찌당원조차 아니었고
전쟁전 그가 미국으로 탈출시킨 유태인 친구들의 탄원으로
그는 기소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러나 전후 들어선 새 체코정부는 군수공장 운영을 이유로
그의 신병을 인도받아 재판대 위에 올립니다.

알베르트 괴링의 선행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음을 밝히려 애썼지만
그의 과거 행적에서 전혀 친나찌적 행위를 발견할수 없었고

그의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체코인들의 탄원으로 곧 석방됩니다.

이래저래 1년여의 옥살이에서 풀려나 독일로 돌아온 알베르트 괴링은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됩니다.

한때 곧 "권력"을 의미하던 그의 성 "괴링"은
이제 독일에서 "혐오"의 대상, "악마"의 상징으로 통했고

모든 관공서, 회사에서 그를 채용하길 거부했습니다.

결국 알베르트 괴링은 과거 그가 도와준 이들로부터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으며
초라한 은둔의 여생은 보내게 됩니다.

알베르트는 헤르만이 감옥에서 자살하기 직전, 단 한번 면회할 기회를 갖었습니다.

그때 헤르만은 자신과 다른 길을 걸은 알베르트에게 마지막 부탁을 합니다.

"내 가족을 부탁하네..."

수백만명의 학살을 주도했던 나찌의 제2인자가
이를 반대했던 그의 형제에게 건넨 최후의 말이

결국 자신의 아내와 딸에 대한 염려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알베르트 괴링... 또다른 쉰들러
그는 그의 형제 헤르만 괴링의 후광으로 나찌독일에서 권력과 부를
거머쥘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따라 헤르만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고
그 결과 수백명의 생명을 구했으며

나중에는 그의 형제, 헤르만 괴링의 가족까지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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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g.jpgalbertg3.jpg

The famous Reichmarshal Hermann Goering aided Adolf Hitler\'s rise to power and for years he was second in importance only to Hitler in The Third Reich. As founder of the Gestapo, Hermann Goering was instrumental in creating the first concentration camps for political dissidents and a prominent leader of the final solution, the murder of 6.000.000 Jews. Next to Hitler the man who played the largest part in the shaping of the Nazi inferno ..

But his younger brother Albert Goering loathed all of Nazism\'s inhumanity and at the risk of his career, fortune and life, used his name and connections to save many Jews and gentiles. The parallel with Oscar Schindler is inevitable. The story of Albert Goering, however, is almost unknown - he was shoved into obscurity by the enormity of his brother\'s crimes. But testimonies of survivors and a report, buried until recently in British archives, documents that Albert Goering actually saved many lives from the horrors of Holocaust.

albertg2.jpg
Albert and Hermann

There were all the difference in the world between the two brothers, though they were very fond of each other. The elder Hermann with his bright blue eyes, bold, resolute and completely without fear, loved his youngest brother, Albert, who was a sad boy with doe-brown eyes, looking uncannily like his godfather, Baron Hermann von Epenstein, intimate with their mother Fanny.

The author Leonard Mosley tells in his great biography The Reichmarshal that the resemblance became so noticeable that most people who saw them together assumed that they were father and son. And with the birth of Albert, von Epenstein announced that he was adopting all five of Fanny\' s family as his godchildren. "Godfather had made Hermann his favorite godchild until then," said his sister Olga in later years, "but after Albert\'s birth he was always fussing over him ..."

All his life Albert was a man of deep moral conviction. He soon became disenchanted with the Nazis, went to Austria and lived for a time on an allowance from von Epenstein. He worked in a film studio in Vienna and often spoke out against Adolf Hitler and the Nazis. Once the Germans marched into Austria, he might be in trouble, but Hermann Goering protected him and kept him out of the hands of the Gestapo.

albertg4.jpgalbertg5.jpg
Goering\'s List with 24 names - and Franz Lehar

As the brutality of the Nazis accelerated with murder, violence and terror, the seeds of their plan for the total extermination of the Jews dawned on Albert Goering in all its horror - he saw the Jews as mothers, fathers, children. So he decided to act and helped many Jews escape from Vienna by procuring travel documents. Once he had his brother guarantee the safety of the famous composer Franz Lehar\'s Jewish wife.

Professor Guido Knopp, head of history and current affairs at ZDF, a German national television channel, tells in his book Hitler\'s Holocaust that Albert Goering was always willing to help those in need. On one occasion - in the autumn of 1943 - he signed passports with his own hand for a Jewish family he had befriended. Once he persuaded SS chief Heydrich to release some Czech resistance fighters from the cellars of the Gestapo.

Richard Sonnenfeldt, chief interpreter and youngest member of the American prosecution team at the Nuremberg War Crimes Trial, later recalled how the Reichmarshal enjoyed displaying his power to Albert by freeing Jews from the concentration camps. "Albert would go to his brother Hermann and say, \'Hermann you\'re so big and so powerful, and here\'s a Jew who\'s a good Jew and doesn\'t belong in a concentration camp\'," Sonnenfeldt said.

" \'Can\'t you just sign a paper?\' And Hermann would say, \'This is absolutely the last time I\'m going to do this, don\'t come back\'," said Sonnenfeldt, 80, on a tour of Germany to promote a book about his Nuremberg experiences Mehr als ein Leben. "A month later, Albert would be back," he said. "We found a hundred people on Albert\'s list that were freed. All because Goering had such a need to show off to his younger brother."

Albert was arrested by the Gestapo several times, however was released with the help of his brother.

Tatiana Otzoup Guliaeff was only six years old when she saw Albert Goering, her godfather, for the last time in Vienna. Her parents and Albert were very close friends and only through the efforts of her godfather were the family able to flee with false papers. 

Tatiana later told this amusing anecdote about Albert in Austria: Whenever the family would walk into a store with Albert and were able to find whatever they needed, he would always depart saying \'Gruess Gott\' (God greet you), but, if the items were not to be found, he would sarcastically say: \'Heil Hitler\'.

Later - as part of his job as export director of the Czech arms factory Skoda - Albert Goering was able to save many employees, among them the director Jan Moravek and his family. He protected several members of the Czech resistance and covered resistance actions.

Sobota.jpg
Karel Sobota in Prague


Karel Sobota, for several years assistant to Albert Goering, worked in the Exports Department of Skoda and endangered himself by taking actively part during the german occupation of Czechoslovakia, related to the Czech Resistance movement against Nazism. Karel Sobota later recalled how Albert Goering refused to return the Nazi salute when Nazi officers visited Skoda. At that time, this refusal was sufficient for one man to be imprisoned or worse.

Albert Goering insisted that all people, no matter the rank or position, be announced to him before entering his room. Karel Sobota later told how a high ranking SS officer one day arrived in Skoda and quickly entered directly in Albert Goering\'s room with Sobota unsuccessfully trying to block him. In a rage, Goering expelled the Nazi from his room and ordered him to wait outside. Then Goering begged Karel Sobota to come in and sit down by him, he calmly talked about the weather, his family and they both examined some of Albert\'s picture albums. This took about thirty or forty minutes.

Said Albert Goering: - \'Well, Herr Sobota, now it is time to let that Nachtwachter talk to me. Please allow him to come in ..\' (night watcher, in german, reference to the black SS uniform).


Sobota2.jpg
Karel Sobota defied the Nazis


The employees were very grateful to Albert Goering due to the human treatment he always gave to all Czechs and people of other nationalities. At that time passive resistance was the order of the day. Any work in the lines of production or in the administrative area always took much more days to be done than was initially expected. Karel Sobota recalled how Albert Goering looked the other way as the Czech employees made wrong translations of catalogs, \'forgot\' to do tasks assigned to them, left work unfinished in their desks or \'lost\' important documents. The employees risked their lives - had they been caught red-handed by the Gestapo or the SS, they had been executed on the spot.

Albert Goering is credited with many acts of kindness, small and large. Even today survivors remember once he took off his jacket, went down on his knees, and scrubbed a sidewalk together with Jews who were ordered by the Nazis to do so in public as a humiliation.

The physician Laszlo Kovacs had been the personal doctor to Albert Goering since 1939. He later recalled hearing Goering say: \'I defy Hitler, my brother and all the National Socialists.\' He began giving Kovacs money and set up a joint bank account at the Bank Orelli in Bern which he instructed Kovacs to use to help Jewish refugees to get to Lisbon. After the German occupation of Italy in 1943, Goering wrote out a laissez passer for Kovacs as his personal doctor.

When Albert was stationed in Bucharest, Rumania, two Nazi officers saw him standing on a balcony and recognized him as the brother of Hermann Goering. They did the Nazi salute \'Heil Hitler\' in front of him, but Albert coldly replied \'you can kiss my ass ...\'


albert9.jpgalbertg6.jpg
Hermann Goering


After World War 2 Hermann Goering was found guilty at Nuremberg in war crimes and crimes against humanity and sentenced to death by hanging. On 15 October 1946, two hours before his execution was due to take place, he committed suicide in his Nuremberg cell, taking a capsule of poison that he had succeeded in hiding from his guards during his captivity. Shortly before he had his brother Albert promise that he would take care of his wife Emmy and his little daughter Edda.


albert8.jpg 
Albert Goering - saviour of victims of the tyranny his brother helped create - was imprisoned for several years after the war for his name alone. During the post-war-years he had many difficulties, the name Goering had become an almost impossible handicap. Grateful survivors, rescued by Albert Goering, helped him survive bitter years of joblessness. He married several times and died in 1966, after working as a designer in a construction firm in Munich.

Albert Goering proved that humanism knows no borders, no race, no family ties ...

Tatiana Guliaeff and her family never forgot the selfless generosity and heroism of Albert Goering, his love and compassion toward mankind. She later wrote this letter to him titled \'Onkel Baer\':


Onkel Baer (Uncle Bear)

From the time I can remember I loved and cherished you, I remember every moment we were together, the walks in the parks, the treats you bestowed on me, the way you taught me to pray, always accompanying me to church, although you were a devout Catholic and I Russian Orthodox.

How hurt I was when I was forbidden to enter the study in our house, where you sat grim faced, clutching a telephone with reams of papers, pens and inkwells surrounding you. Through the mists of cigarette smoke that encircled your being, I saw you, haggard and tired, yet with a determination to fullfill some dreadful task.

Little did I know that you, at the risk of your own life, gave orders in the name of your half brother, a high ranking German official, to release prisoners, to issue exit papers to thousands of Jewish and other ethnic peoples, thus saving their lives. How you forged your half brother\'s name on the documents, how you changed your voice and bearing to sound like he.

Neither did I know that, after saving the life of the composer of the "Merry Widow" Franz Lehar and his family, he composed an important musical piece in your honor.

Nor did I know that you were tried in Nuremberg, absolved of all your crimes, and banished to Argentina for a number of years for your own safety, for the name of your half brother was well known and hated by all. Most of this I found out from an article written in the 1950s in the News Call Bulletin of San Francisco, where it stated that all the Jewish families, that you saved, remembered you with kindness, gratitude and respect, that they had sent affidavits to certify of your courageous actions.

To my regret, I only have one letter written by you to my mother, when you returned to Germany.  Also in my possession I have a letter from your sister Olga, who wrote that as your last act of selflessness, on your deathbed, you married your housekeeper, so that she could receive your pension.

Truly we were blessed to have had you in our lives.

God rest your soul, my dearly beloved godfather, my "Onkel Baer"

Tatiana

Acknowledgement and thanks to Tatiana Otzoup Guliaeff and Jorge Sobota

Adolf Hitler\'s SS Men
Hitler surrounded himself with a small clique of fanatical, ruthless henchmen - a violent group of outsiders who rose to power in the Third Reich and established political and economic institutions of legitimized terror.

These masterminds of death were found to be quite psychologically normal. They were men of fine standing, husbands who morning and night kissed their wives, fathers who tucked their children into bed.

But murders, brutalities, cruelties, tortures, atrocities, and other inhuman acts were an everyday occurrence.

The European Jews were the primary victims of the Nazis. In 1933 nine million Jews lived in the 21 countries of Europe that would be occupied by Germany during the war. By 1945 two out of every three European Jews had been killed.

But Jews were not the only group singled out for persecution by Hitler\'s Nazi regime. One-half million Gypsies, 250,000 mentally or physically disabled persons, and more than three million Soviet prisoners-of-war also fell victim to Nazi genocide. Jehovah’s Witnesses, homosexuals, Social Democrats, Communists, partisans, trade unionists, and Polish intelligentsia were also victims of the hate and aggression carried out by the Na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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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차대전갤에 Cleve라는 고정닉횽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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