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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변덕쟁이 황제…한국, 파트너로서의 가치 증명해내야"

ㅇㅇ(61.79) 2025.01.19 18:01:01
조회 75 추천 0 댓글 0

<20세기 경제사>란 저서로 유명한 경제사가 브래드퍼드 들롱 미국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장기 20세기’가 종언을 고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본다. 그가 말하는 장기 20세기는 1870~2010년대, 인류가 빈곤에서 벗어나 폭발적 성장을 이룬 시기다. 트럼프의 집권과 재집권으로 이전 시기 사회 발전을 이끌던 낙관주의와 자신감이 사라지고, 비관주의와 공포가 주도하는 시대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들롱 교수는 트럼프를 “변덕스러운 황제”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변덕스러운 지도자 앞에선 자신이 얼마나 유용한 존재인지 꾸준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한국에 조언했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최근 버클리의 한 카페에서 들롱 교수를 만났다.

▷트럼프 재집권을 어떻게 보십니까.

“잔인할 정도로 실망스럽습니다.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 두 가지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한 ‘워프 스피드 작전’과 북미자유협정(NAFTA)을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워프 스피드 작전은 트럼프 같은 반(反)관료주의적 정치인만 해낼 수 있었던 성과입니다. 하지만 NAFTA와 별 차이가 없는 USMCA는 다릅니다. 트럼프가 당시 ‘최악의 무역협정을 최고로 바꾼 것’이라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당시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의 설득에 넘어갔는지, 아니면 똑같은 협정이란 걸 알면서도 언론과 청중이 차이점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자랑스러워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이런 헛소리를 하는 사람이 주(州)가 후원하는 카지노의 독점 운영권을 갖고도 파산시킨(그만큼 경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NAFTA 파기는 왜 문제가 많다고 보나요.

(들롱 교수는 NAFTA 협상 때 미 재무부 차관보로 협상을 주도했다.)

USMCA는 NAFTA와 큰 차이도 없을뿐더러, 꼼꼼한 거시경제 전망을 거쳐 내놓은 협정이 아닙니다. 트럼프가 NAFTA와 USMCA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내세우는 게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자동차 부품의 현지 조달 기준을 기존 62.5%에서 75%로 높였다는 점입니다. 이 조항은 미국자동차노조(UAW)나 (자동차 생산이 많은) 미시간주의 민주당 상원의원 두 명은 좋아할지 몰라도, 소비자와 미국 자동차 회사 누구도 좋아할 만한 건 아닙니다. 트럼프는 NAFTA가 멕시코에 좋은 일만 했다고 말하지만, NAFTA가 없었다면 미국 내 한국 자동차 점유율은 훨씬 높았을 것이고, 이는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조업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집권 2기에도 적(敵)을 누구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정책을 아무렇게나 닥치는 대로 결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은 트럼프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요.

“우리가 세계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제국의 황실 내부에 뇌물을 줄 수 있거나 최소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포섭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변덕스러운 황제가 있을 땐 더욱 그렇습니다. 역사상 번성한 모든 상업국가는 하나의 거대한 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거래를 해 왔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변덕스러운 지도자(트럼프)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유용하고 가치 있고 무해한 존재인지를 꾸준히 인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과거 세종대왕이 별도의 문자(한글)를 만든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선견지명이 있는 정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문자의 독립 덕에 한국이 중국의 일부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물론 지금 한국처럼 두 개의 초강대국에 둘러싸인 상업 공화국이라면 두 나라를 모두 만족시켜야 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당선인과 달리 한국의 경제적 가치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은 정치·경제 발전의 비밀을 가진 것 같지 않습니다. 한국이 지금 중국을 더 가까이 해서 배우고 얻을 만한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미국에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인가요.

“이미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경제·문화적 영향을 받기만 하는 파트너가 아닙니다. 미국에서 한국의 산업과 문화적인 영향력은 엄청납니다. 버클리에 한국식 순두부집이 얼마나 많은지 모를 겁니다. 제 아내만 해도 마트에서 백김치를 사다 먹습니다. 두 나라 간의 끈끈한 관계는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여전하다고 봅니까.

“미국이 20세기 유일한 초강대국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경제 발전의 비밀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런 비밀이 사라졌습니다. 다만 미국이 전 세계에 미치는 문화적인 영향력을 무시해선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총기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외에는 미국의 영향력은 여전하다고 봅니다.”

▷중국이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정치 제도의 비밀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레닌주의적 당 국가 체제는 장기적으로 정치·경제·도덕적 위험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현재 중국의 총요소생산성 통계를 보면 경제 발전의 비밀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주강 삼각주 일대와 상하이가 지금처럼 번성할 수 있었던 건 글로벌 가치 사슬에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런 발전 경로를 무시하고 탈동조화를 시도하며 옛 소련과 같은 경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미 규모의 경제와 자본 축적으로 끌어올리는 경제 성장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중국 경제는 결국 역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21세기도 ‘장기 20세기’처럼 유토피아를 향한 여정이 될까요.

“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1870~2010년 사이 경제적으로 번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굵직한 정책들이 기술 발전에 초점을 맞춰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민주화된 제도를 통해 사람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21세기는 유토피아로의 진전을 이룰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비능력주의적, 비민주적, 비대표적 정치지도자의 등장 때문에 퇴색할 수 있습니다.”

▷21세기는 ‘저성장 시대’가 된다는 뜻인가요.

“노인이 너무 많은 사회는 변화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 진보와 경제 발전에 적대적인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20세기에 인간을 다스리는 정치 체제는 기술 발전을 중시하는 민주적 기관이었습니다. 정치 엘리트 계층이 기술 발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이를 통한 부의 창출에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렇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한국에 조언해줄 것이 있다면.

“앞으로 기후 변화를 다루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것입니다. 한국은 기후변화의 타격이 가장 심각하게 일어날 지역(중국·동남아시아·인도 등)의 ‘링사이드 좌석’(링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고 한국도 이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저출생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특히 여성들이 엄마가 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삶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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