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전기차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전동화 전환에 속도가 붙으면서 자동차 엔진과 소재, 부품뿐만 아니라 연료를 채우는 방식까지 기존과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수한 의문점이 생겨납니다. 이에 IT동아는 전기차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살펴보는 ‘EV(Electric Vehicle) 시대’ 기고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1885년 다임러 벤츠에 의해 발명된 페이턴트 모터바겐 (Patent Motorwagen)은 당시 말이나 소를 동력원으로 삼아 수동으로 움직이던 이동 수단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인 자동차의 등장을 알렸습니다. 이후 포드자동차를 설립한 헨리 포드의 모델T를 통해 이동 수단의 대중화를 거쳐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을 이룩하며 자동차는 현대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 왔습니다.
이렇듯 성장을 거듭한 자동차 산업은 최근 급격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공유경제, ICT의 발전 및 친환경, 지속가능성 등이 촉발한 사용자 중심의 이동 경험과 모빌리티 영역의 확장이라는 변화입니다.
목적 기반 자동차의 종류 / 출처=카누
이동의 자유, 친환경, 지속가능성 등 주요 가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비전과 방향성을 내포한 모빌리티들이 매년 초 미국 CES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 모터쇼를 통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는 컨셉트카는 물론, 최근 출시되는 자동차까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통적인 변화 중 하나는 단연코 동력원의 전동화일 것입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
기존 디젤과 휘발유 등의 화석연료를 동력원으로 삼은 내연기관의 시대가 저물고, 전기자동차(EV, Electric Vehicle)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전기자동차는 내연기관차가 내포하는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배기가스 배출 문제를 해결하며, 미래 모빌리티가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패러다임의 변화 등 다양한 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최근 등장한 것 같은 전기차의 역사는 사실 오래됐습니다. 최초의 양산형 전기차는 1884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개발됐으니, 앞서 언급한 내연기관 자동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보다 1년 앞선 셈입니다.
하지만 내연기관의 급속한 발전에 비해, 전기자동차는 핵심요소인 모터와 배터리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탓에 발전이 더뎠습니다. 그러다가 최근 배터리, 모터 등 주요 핵심기술의 발전을 통해 전기자동차는 수년 전부터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사의 미래 모빌리티 비전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간 전기자동차의 낮은 배터리 효율과 대중성의 결여로 디자인의 발전 또한 상대적으로 더뎠습니다. 유럽의 경우에도 우유배달 및 도심의 출퇴근용도로 전기자동차가 제한적으로 개발, 운영됐습니다. 1974년 등장한 세브링 뱅가드(Sebring Vanguard Citicar)가 단적인 예입니다.
세브링 뱅가드 시티카 / 출처=위키피디아
당시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 차량 플랫폼에 배터리와 모터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개발됐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테슬라의 모델3나 현대자동차의 아이오닉5와 같이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공간 활용성을 높인 패키지 디자인이 아니었으므로, 전동화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테스트 개념의 차량이었습니다. 당시 전기자동차의 디자인적 가치와 차별성을 논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자동차의 개발은 이어져 왔습니다. 1990년대에 등장한 GM의 EV-1은, 유선형의 디자인 컨셉을 중심으로, 후면부 차폭을 전면부보다 좁게 설계한 패키지를 비롯,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디자인을 통해 전기자동차의 효율성을 높인 상징적인 차량이었습니다.
제너럴 모터스 EV-1 / 출처=위키피디아
전기자동차의 특성상 냉각을 위한 전면부 라디에이터 그릴이 사라짐에 따라 기존의 내연기관 차량과는 확연히 다른 디자인을 보여주었으며, 유선형 디자인이 주를 이루는 디자인 컨셉은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주행거리와 부족한 충전 인프라 등을 이유로 시장에서 퇴출당했습니다. 이후 내연기관과 전기를 동력으로 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거쳐, 닛산자동차의 리프(Leaf), BMW의 i3, i8과 같은 최신 전기자동차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다양한 제조사의 전기자동차 중 닛산의 리프와 BMW의 i브랜드 차량은 새롭게 정의되어가는 전기자동차의 디자인 방향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닛산 리프와 같이 그릴이 필요 없는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헤드램프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한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제시하는 차량이 있는 반면, BMW의 경우처럼 전기차 특성상 엔진 냉각을 위한 그릴이 필요 없음에도, 막힌 형태로 그릴의 형상만을 유지하며 내연기관 시절부터 이어져 온 디자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간 쌓아온 헤리티지를 전기차에서도 이어가고자 하는 각사의 디자인 전략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현재 국내외 다양한 제조사에서 만들어내는 전기자동차는 전용 플랫폼을 바탕으로 제작됩니다. 기존의 내연기관 기반 차량의 패키지인 전면부 엔진, 중간에 위치한 탑승공간, 후면부 연료탱크 및 적재 공간으로 구성된 3박스 패키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전면부에 위치한 모터 및 구동계, 바닥에 위치한 배터리로 이뤄진 패키지를 통해 전·후륜 축간거리(휠베이스)를 길게 뽑아 상대적으로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하며, 거주성과 공간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입니다.
차량 시트 배열 예시 / 출처=카누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미래의 모빌리티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모터 및 배터리 등의 구동계가 차량 바닥에 위치하고, 거주공간은 목적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목적기반 모빌리티 (PBV)로 진화할 전망입니다. 이에 따라 공간의 활용성을 극대화한 박스형의 모빌리티가 주된 디자인 방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외관디자인의 스타일링 및 조형성을 중심으로 한 디자인에서, 사용자 중심 공간 구성 및 활용성, 그리고 확장된 이동 영역과 경험 제공 등을 주요 가치로 새롭게 자동차 디자인이 재정립되고 있습니다.
※ [EV 시대]는 2024년 새해부터 다시 연재됩니다.
글/ 노재승 국민대학교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
노재승 교수는 영국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디자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이자 휴머나이징 모빌리티 디자인 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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