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차주경 기자] 남녀가 결혼 후 1년 이내에 임신하지 못하는 것을 난임이라고 일컫는다. 난임은 세계 인구가 모두 겪는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23만 명, 세계에서는 약 7240만 쌍의 부부가 난임 때문에 고생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의약계는 난임을 해결하려고 연구 개발을 거듭했다. 덕분에 여러 기술과 약품이 나왔다.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한 스타트업은 난임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홍릉강소특구 보육 스타트업 그리니쉬다.
지금 난임 치료는 대부분 여성 위주로만 이뤄진다. 이 치료 과정은 여성에게 아주 힘들고 고된 일이다. 그런데, 난임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에게도 원인이 있다. 주 원인 중 하나는 남성의 정자의 수가 적거나, 정자의 움직임이 약한 것이다. 그럼에도 남성의 난임 치료는 지금까지 대부분 영양제 섭취나 체중 조절 등 대부분 대안 요법으로만 이뤄졌다.
성인성 그리니쉬 대표 / 출처=그리니쉬
그리니쉬를 이끄는 성인성 대표는 이 점을 주목했다. 난임은 여성과 남성, 어느 한 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둘이 함께 치료를 받고 노력해야 한다. 이에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남성 난임의 원인, 약한 정자의 힘을 강하게 하고 난자까지 도달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가 고안한 제품 퍼티맥스(Ferti-Max)는 남성의 정액을 분석, 얻은 아이디어로 정자의 움직임을 활발하게 하는 제품이다. 우선, 이 제품은 정자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과당을 공급해 정자의 꼬리 운동을 촉진한다. 동시에 여성의 몸 속 환경을 산성에서 알칼리성으로 바꿔주는 성분도 활용한다. 정자가 알칼리성 환경에서 더 잘 움직이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니쉬의 난임 치료제 퍼티맥스 / 출처=그리니쉬
생화학과 약학을 전공한 성인성 대표는 10여년 동안 암과 황반변성, 혈관질환 등을 연구하며 풍부한 경력을 쌓았다. 여기에 연구원 출신 임직원을 초빙해 퍼티맥스의 연구 개발과 상품화에 나섰다. 임신과 출산 전반을 다루는 생식의학 역량도 고도화했다. 결국 이들은 퍼티맥스의 상품화를 마친다.
그리니쉬는 퍼티맥스에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적용한다. 약품이 아닌 러브젤 형태로 만드는 것. 난임 약품이라고 하면 자칫 소비자들의 거부감이나 우려를 부를 가능성이 있다. 반면, 부부 생활에서 자주 쓰는, 익숙한 러브젤이라고 하면 한결 부담 없이 퍼티맥스를 접하고 활용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퍼티맥스의 효능을 설명하는 성인성 대표(강연자) / 출처=그리니쉬
자체 실험 결과, 그리니쉬 퍼티맥스는 남성의 정자의 운동성을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자를 강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여성의 몸 속 환경을 정자 친화적으로 만드는 효능도 증명했다. 퍼티맥스의 성분은 물과 과당, 셀레늄 등이다. 그리고 여성의 몸 속에서 1시간쯤 작용한 다음 자연스레 흡수된다. 여성의 몸 속 유산균 덕분에 산성도 균형도 바로 맞춰지므로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리니쉬 퍼티맥스와 같은 기술은 이전에도 있었다. 미국에서 인기리에 사용 중인 FFL(Fertility-Friendly Lubricants) 의약품이다. 성인성 대표에 따르면 이들의 성능은 좋지만, 몇 가지 단점과 한계가 있다. 우선 FFL은 여성의 몸의 환경만, 그것도 알칼리성이 아닌 중성으로만 조절한다. 남성의 정자에 에너지를 공급하지도 않는다.
가장 큰 차이는, FFL은 주사 형태로 여성의 몸에 넣거나 뿌리는 식으로 쓴다. 반면, 그리니쉬 퍼티맥스는 러브젤처럼 손쉽게 쓰면 된다. 물론, 남성의 정자에 힘을 주는 역할은 기본이며 윤활제 역할도 한다. 이 제품을 쓰는 난임 부부는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부부 생활을 하면서 난임 치료를 기대 가능한 셈이다.
중국 바이어에게 퍼티맥스를 소개하는 그리니쉬 / 출처=그리니쉬
성인성 대표는 이미 퍼티맥스의 연구 개발과 검증, 상품화와 생산 체계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우선 그리니쉬는 퍼티맥스의 의료기기 허가를 받으려 노력한다. 의료기기 허가를 받는 절차는 아주 까다롭다. 성인성 대표는 자신의 신약 개발 경험을 토대로 팀원들과 연구와 실험을 거듭, 의료기기 허가를 차근차근 준비한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주요 화장품 기업과 대량 생산 체계를 만들고 일단 퍼티맥스를 공산품으로 판매한다.
퍼티맥스의 경쟁 제품을 견제할 계획도 세웠다. 먼저 우리나라에 남성의 정자를 활성화하는 약품 조성비를 특허 등록했다. 기술을 보호한 후 2024년 상품 판매에 돌입, 홍보 마케팅을 강화해 이 부문 시장을 선점한다.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을 고려해서 정자 보호, 운동성 증가 기술의 PCT(Patent Cooperation Treaty, 특허협력조약) 출원도 곧 마칠 예정이다.
이후 그리니쉬가 집중할 것은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 퍼티맥스를 더 좋게 만드는 것이다. 성인성 대표는 난임 부부가 퍼티맥스를 손쉽게 쓰면서 효과를 체험하도록, 소비자들이 난임 치료에 가진 거부감과 공포를 줄이도록, 나아가 난임 치료가 어렵다는 인식을 바꾸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리니쉬의 연구를 홍릉강소특구와 서울바이오허브가 돕는다. 2021년 창업 직후부터 그리니쉬는 서울바이오허브에 입주, 연구 개발 지원을 받았다. 경희대학교 캠퍼스타운도 이들을 돕는다. 홍릉강소특구는 그리니쉬가 스타트업의 기본기를 다지고 더 크게 성장하도록 지원했다. 최근에는 KIST와 한국기술벤처재단도 그리니쉬의 손을 잡았다.
지원을 딛고 그리니쉬는 2023년 TIPS에 선정, 난임 연구에 힘을 실었다. 청년창업사관학교와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 전시회에 참가해 IR도 펼쳤다. 이어 한국기술벤처재단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공산당 관계자를 만나 퍼티맥스를 소개했다. 성인성 대표는 덕분에 퍼티맥스가 세계 시장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제품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미국 바이어에게 퍼티맥스를 소개하는 그리니쉬 / 출처=그리니쉬
그리니쉬는 2024년을 도약하는 해로 삼는다. 먼저 퍼티맥스를 양산, 우리나라 난임 부부에게 소개한다. 소비자들이 약국이나 잡화점 등에서 손쉽게 그리니쉬 퍼티맥스를 사서 쓰도록 유도, 난임 치료가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린다. 이후 의료진과 논문 집필, 학회 발표를 활발히 해서 의료기기 허가를 빨리 얻는다. 퍼티맥스의 성능과 장점을 알릴 마케터, 보급에 힘을 실을 영업 직원도 섭외한다.
그리니쉬의 생식의학 기술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실제로 이들은 퍼티맥스 연구 개발에 소의 정자를 썼다. 그리니쉬는 나아가 사람뿐만 아니라 소와 돼지 등 주요 가축의 난임, 그리고 낮은 수태율을 해결할 계획도 가졌다. 생식의학 기술을 활용, 30% 남짓인 소의 수태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IR 대회에서 기술을 소개하는 그리니쉬 / 출처=그리니쉬
성인성 대표는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신생아의 수는 약 24만 9000명이었다. 그런데, 난임 환자의 수도 그와 비슷한 24만 3000명이었다. 난임 문제 해결이 곧 인구 감소 문제의 완화를 도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난임 환자, 특히 여성은 많은 고통을 받았다. 이들이 손쉽게 난임을 해결하도록, 임신이라는 행복한 결과를 받아 웃도록 연구 개발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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