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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3 서울3호선 도보정복 기록
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3호선을 대화역부터 오금역까지 걸어서 가보자는 무모한 도전을 했다그 때는 지금보다 체력이 안 좋았고 전날 낮 2시부터 깨 있었으니 유체이탈 테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전날 낮부터 안 잤으니 대화에서 출발할 때부터 시작이 별로 안 좋았고 백석-대곡-화정 사이에서 길 잃어서 엄청 애먹기도 했음구파발~연신내 사이에서 점심도 먹고 벤치에 앉아서 졸았는데 잠깐이나마 눈 붙이니 낫더라고그러다가 한강 건넌 뒤로는 말 그대로 '악으로 깡으로' 걸었던 거고 남부터미널까지 오르막 내리막길 반복되느라 영혼 출타하는 줄 알았음양재역 주변 편의점에서 오뎅이랑 에너지 드링크 빨고 없는 체력 끌어와서 다음 날 12시 19분이 되어서야 오금역 도착 ㅋㅋㅋㅋ(33분 왕십리행 막차 탑승)시작할 때부터 막차 끝나기 전에 오금역 도착할 수 있을까 초조했는데 간발의 차로 이게 되더라막차타고 집 도착해서 밥먹고 씻고 2시에 침대 누웠고 저녁 8시에 깼는데 머리 엄청 아팠음왜 저런 걸 하냐, 시간 남아도냐...는 말에는 백수라서 딱히 할 말은 없는데 다 이유가 있었음캠퍼스 생활 부적응(대인기피증) 사유로 대학 입학 2달도 못 채워서 자퇴+재수하려고 다시 미술학원 들어갔는데 수업 도중 발작 일으키고 병원 입원한 뒤로 재수도 한달 만에 포기했고, 그림으로 힛갤에 도전해 보겠다는 야욕마저 10월에 힛갤이 사라지면서 막혀 버리고... 23년 한 해 동안 성인이 되자마자 억까의 연속이었음즉, 그림에만 몰두하느라 교과목 성적은 다 평균 이하인데 유일한 자랑거리인 그림(미대)마저 안 남아버리니 상식적으로 안 미치는 게 더 이상했지그런 와중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은 대학 잘만 다니고, 같이 미술학원 다녔던 친구들도 전부 재수 안하고 미대 바로 붙어서 지금까지 다니고, 형도 2호선 대학 다니면서 가족들도 형만 편애해서 형 엄마 아빠 이렇게 셋만 가족이 된 지 오래고, 커뮤에서 소통하는 사람들도 다 직장이나 학교 등 오프라인에서 각자의 위치가 있는데 나만 없으니 내가 끝도 없이 징그러워 보이고 초라해 보이더라고그래서 무언가를 성취한 경험으로 재도약할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집념으로? 노선 시작점부터 종점까지 걸어가면 언젠가는 끝이 나오니까, 현재로서 성공 확률이 제일 확실한 걸로 지하철 노선 도보정복을 도전한 거임특정 업계 프로들이 늘 말하는 '난 누구보다 피나는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올랐다'처럼 나도 남들이 아무나 이룰 수 없는 거대한 걸 이룬 걸 내세우고 싶었던 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저날 이후로 조금이나마 용기가 생겨서 지금은 고졸 채용 일자리도 계속 찾아보고 있고, 3/8/9호선도 올해 도전했는데 제일 길었던 3호선을 성공한 경험이 생기니까 그보다 짧은 노선들은 '안 될 거 뭐 있냐'라는 마인드로 쉽게 도전하게 되더라고암흑기가 와도 언젠가는 인생을 바꿀 기회가 찾아오긴 한다는데 노선을 걷다 보면 끝이 나오듯 나도 언젠가는 방황을 끝낼 종점이 나올 것이라고 믿으면서 지금도 걷는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나폴레옹이 좋아했던 창기병들
[시리즈] 울란 시리즈 · 좌충우돌 폴란드 기병들을 만난 나폴레옹 프랑스 제국 근위대의 한축을 담당했던 제1 폴란드 창기병연대(1er Régiment de Chevau-Légers Lanciers Polonais)는 1807년에 탄생했다. 창기병은 대방진-대기병 돌격에 특화되어 있는 병과였지만 기병창이 높은 숙력도를 요구할 정도로 다루기 어려운 무기였다. 폴란드 기병들은 그런 기병창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유럽 최강의 창기병 전력으로 평가받았다. 1809년 스페인 전역의 소모시에라(somosierra)에서 그들이 보여준 기병돌격은 황제에게 폴란드인들이 얼마나 용맹한지 각인 시켜줬다. 본래 제국 근위대 말단인 청년근위대 소속이었던 폴란드 기병들은 이 활약 덕분에 중견근위대를 건너 뛰고 단번에 고참 근위대로 승격했다. (주: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라서 패스함.)본래 나폴레옹은 창기병의 효용성을 의심했었다. 그가 보기에 기병의 근접무장은 기병도 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폴란드 창기병대 지휘관이었던 크라신스키 대령(Col. Wincenty Krasiński)은 창설 초기부터 줄곧 기병창을 정식지급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보고서를 올렸다. 바그람 전투가 끝난 1809년, 빈에 입성해있던 나폴레옹은 마침내 질렸는지 기병창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 증명 해보라며 크라신스키 대령을 당시 사령부로 쓰고 있던 쇤부른 궁전(Schloss Schönbrunn)으로 호출했다. 나폴레옹은 궁전 연병장에서 창기병이 검기병에 비해 근접전에서 얼마나 버티는지 보겠다며 대련을 명령했다. 상대편은 같은 근위대 소속인 황후의 용기병대(Regiment de Dragons de l’Imperatice) 3명이었다. 크라신스키 대령은 자신과 같이 온 빅토르 로만 중사(Sgt Victor Roman)를 내보냈다.용기병들은 기병도를 들었고 로만 중사는 창을 들었다. 리치가 긴 창이 불리한 대결이었지만 로만 중사는 황제가 보는 앞에서 단 몇합만에 용기병 2명을 낙마 시켰고 마지막 1명은 기병도를 빼앗아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화려한 마상창술을 직관한 황제는 단번에 설득되어 버렸고 기병창을 정식 보급품으로 지정하였다.1809년, 황제가 바그람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하고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 루이즈(Marie-Louise von Österreich)와 정략결혼을 맺었다. 나폴레옹은 콩피에뉴(Compiègne)에서 마리 루이즈와 처음 만났고 1810년 4월에 공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축하연은 5월까지 3주간 계속됐다. 황제는 합스부르크 출신의 어린 신부를 배려(?)하여 신혼여행지로 플랑드르 지방을 골랐다. 합스부르크의 오래된 영지이기도 했고, 마침 그 해 네덜란드 왕국이 프랑스 제국에 합병되기도 했기에 친정을 할 겸 고른 것이었다. 황제 부부는 약 1년동안 벨기에와 네덜란드 일대를 돌아다니며 신혼을 만끽했다. 나폴레옹은 이 신혼여행의 경호병력으로 직접 폴란드 창기병 연대를 지명했다. 길쭉하고 네모난 모자(Rogatywka)를 300명의 창기병들이 호위하는 황제의 행렬은 가는 곳마다 구경거리가 됐다. .황제는 어린 마리 루이즈가 여행 중간중간 지루해할 것을 염려하여 여러가지 볼거리를 제공하라고 명령했다. 폴란드 기병들은 이 엔터테인먼트 제공에 동원됐다. 그들은 황후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거나, 마상 무술 시범을 보이는 등 그야말로 광대노릇을 해야했다. 하지만 수년간의 전역으로 지쳐있던 폴란드 기병들에게 이 여행은 꿀맛 같은 휴가나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모든 폴란드 기병들이 휴가를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프랑스군 40만명이 투입된 스페인 전역은 병력 빨아먹는 블랙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소모가 심했다. 나폴레옹도 남는 병력은 전부 이베리아로 보내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제1 창기병 연대 병력의 절반도 스페인으로 가서 현지 게릴라들과 영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야 했다. 스페인인들은 긴창을 꼬나들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달리며 자신들을 사냥하는 폴란드인들을 보고선 지옥에서 올라온 피카도르(Picadores del Infierno)라고 불렀다. 영국군도 폴란드 창기병들에게 여러번 털리자 이에 깊은 인상을 받아 훗날 창기병을 정식 편성했을 정도였다.여행기간 동안 황제는 폴란드 창기병들을 보고 무언가 느낀게 있었는지, 1810년 구 네덜란드 왕실 근위대 소속 기병들을 제국 근위대로 합병하는 행사에서 이들에게 앞으로 창으로 무장할 것을 지시하고 제2 창기병 연대(2e régiment de chevau-légers lanciers de la Garde impériale)라는 부대명을 하사했다. 이들은 상하의 빨간색 깔맞춤의 제복을 입어서 붉은 창기병대(Lanciers rouge)라고 불렸다. 다만 이들은 본래 후사르 병과였던 탓에 창을 다루는데 매우 어설펐고 참전 경험도 없어서 근위대 치고는 전투력이 떨어졌다. 폴란드 기병들도 이들이 진짜배기 창기병이 아니라며 은근히 무시하고 다녔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들은 폴란드 창기병들처럼 실전에 투입되진 않고 베르사유 궁전 경비 서는게 전부였다는 점이다. 붉은 창기병대는 눈에 확 띄는 시뻘건 제복 덕분에 수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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