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먼트뉴스 김민서 인턴기자] 타이틀 'CODA(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칭)'은 주인공 루비의 생애적 환경을 집약해 짐작케 한다. 농인 부모와 오빠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청인 '루비'는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족의 잔일을 도울 뿐 아니라 가족의 귀와 입을 대신해 말을 옮기는 일에 늘 동원된다. 그렇게 통역과 매개만 해오며 구체적인 꿈도, 목표도 없이 살아오던 루비는 흠모하던 남학생을 따라 가입하게 된 합창단에서 재능을 증명 받으며 노래에 대한 꿈을 키워나간다. 그렇게 합창단 선생님의 조력을 통해 버클리 음대 오디션까지 준비하게 된 루비는 자신의 지향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가족의 요구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고뇌한다. 루비의 재능을 알 길이 없는 가족들은 이에 반대하지만, 더 이상 가정사에 휘말려 정체되고 싶지 않은 루비는 청인들과 공존하는 법에 이제는 익숙해져야 한다며 일갈한다. 그렇게 부풀어가던 갈등은 합창 발표회를 계기로 슬슬 점화되기 시작하고 화해의 국면을 맞이한다. 루비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순 없지만 딸의 환희, 관객의 찬사를 목도한 아빠는 결국 합의 하에 딸의 꿈을 지지하게 되고, 끝으로는 오디션에 합격해 보스턴으로 떠나는 루비와 가족의 작별을 비추며 영화는 맺어진다.
'코다'는 특정 프레임을 내건 영화에 우리가 기대하는 것들을 부러 극화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장애인으로서 당면하는 소외나 부당함을 극단적으로 배가해 묘사한다거나 가족이라는 집단을 에둘러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런 상투성이 아예 배제된 건 아니나, 필요한 수준, 납득 가능한 범주 내에서 운용하고 있으며, 때로는 그러한 기대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현실 가정의 인상을 포착해낸다. 예컨대 농인 가족들을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에 국한해 평면적으로 다루기보다, 각각의 개성을 담아 고유한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거나, 장애와 무관한 부모로의 당위 그리고 역할에 대해 충실히 역설하는 태도가 그렇다. 한편, 농인 가족과 살아가며 빚어지는 갈등들을 지우지 않고 도리어 이를 딜레마의 한 축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온정으로만 유지될 수 없는 것이 가족이듯, 영화에는 생계라는 명분으로 제 이익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독촉하는 폭력적 양상도 반영되어 있으며, 허울 없는 형제임에도 외면할 수 없는 상호적인 질시와 열등감 같은 것도 낱낱이 담겨있다. 즉, 가족의 모난 초상과 지질한 충돌 같은 것들을 애써 덮지 않는 것이다.
결국 단편적인 서사가 제시하는 것은 루비의 성장담이지만, 그것은 한편 가족 전체의 성장을 담보하기도 한다. 그것은 비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에서 탈피해 자립하고자 하는 도전인 동시에, 자녀의 자립을 신뢰하는 부모로의 성숙이기도 하다. 극 중 루비의 간절한 꿈이자 그가 선택한 최초의 지향이기도 한 '노래'는 농인 부모와 청인 자녀 사이의 장벽인 동시에, 성장의 계기로 기능한다. 늘 가족들을 대리해 그들의 의견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급급했던 루비는, 이제는 노래라는 제 3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것에 순응해야 했던 소녀가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단행한 첫 결정이라는 점에서 그의 성장을 예비한다. 한편, 노래는 가족들에게는 결코 닿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언어라는 점에서 단절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이때 농인이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물리적 불가해는 가족임에도 겪을 수밖에 없는 심리적 불가해와 긴밀히 조응한다.
가족은 가장 친밀한 타인이다. 피를 나누고, 살을 맞대고, 온기를 공유하며 살더라도 끝내 닿을 수 없는 독자적인 세계와 개인적인 입장이란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는 숱한 노력과 시간을 동원하더라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코다'는 그런 불가해성으로부터 비롯된 마찰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 꿈을 존중해주지 않는 부모가 원망스러운 순간, 소외와 불안에 점철된 삶이 가장 가까운 존재로부터 쉬이 폄하되는 순간, 소외감을 토로했지만 위안받지 못했던 순간들이 그러하다. 영화는 이러한 불가해의 본질을 그대로 전제한 채, 서정적인 결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딸의 음성은 들을 수 없지만, 성대에 손을 댄 채 그 울림을 간파하고, 무얼 이야기하는지 끊임없이 되묻는 것처럼, 영영 닿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가늠해보려는 시도들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와 상응하는 마지막 사운드 트랙 'Both sides now'는 스크린 밖으로까지 확장되는 당부이자 제의다. 결국 가족을 떠나 꿈을 성취하는 서사를 결과론적으로만 치환하면 한낱 통속극으로 전락할지 모르겠으나, 이 영화의 미덕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 영영 헤아릴 수 없다 하더라도 부단히 가늠해가야 하는 존재로 가족을 그리는 이 영화는 여러모로 모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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