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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가 좋습니다.

손꾸락발꾸락(121.139) 2009.11.05 13:37:08
조회 143 추천 0 댓글 3


피아노 참 좋지 않아요?

나는 취미로 간간히 피아노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국딩 시절에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조금 배운게 전부입니다. 아마 체르니 30언저리 까지 하고 그만 뒀던걸로 기억해요.
나이 어린 외동아들이 이리저리 뚱땅거리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 중고 영창 업라이트 피아노 하나를 사주셨습니다. 
그 당시 돈 백만원이면 살림이 휘청거릴텐데 못난 아들내미 뭐가 이쁘다고 이런 귀한 선물까지 사주셨는지...

여하튼 피아노 학원도 끊고 한창 마음에 일었던 피아노에 대한 열정도 점점 수그러들어
큰 돈 들여 마련해 둔 피아노도 집안 구석에서 먼지를 쌓아가며 장식품이 되고 있었습니다.
단독 주택에 사는 것도 아니니 맘 놓고 피아노를 칠 수 있을만한 환경도 아니다 보니 더더욱 그런 상황이 지속 됐죠.

군대 있을 때 이야기이긴 한데,

동기 한 명이 피아노 쳐보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뭐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재미삼아서 악기 좀 다뤄보자는 이야기였습니다.
내가 그냥저냥 악보에 그려진 콩나물 대가리가 어느정도의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지식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 친구는 알고 있었거든요.

일과 중 남는 시간을 이용해 부대 내 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맘 놓고 피아노 칠 수 있는 곳이 거기밖에 없더군요. 
거기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원래 피아노를 잘 쳤던 것도 아닌데다, 손을 놓고 있던 시간도 매우 길었기 때문에
학교종이 땡땡땡이라도 안 틀리고 칠 수 있으면 다행이겠다 싶은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한 번 쳐 보라는 친구의 말은 사양하고, 대신 그 친구가 연주하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분명 말하지만 그 친구는 전공자도 아니고 그냥 취미로 피아노 좀 치는 친구입니다.
실제로 피아노에 대해 완전히 문외한인 사람이라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피아노를 쳐 봤던 사람이 보기엔 
기초도 좀 부족하고 그리 잘한다고 봐주기는 어려운 정도의 실력을 가진 그런 친구죠.(물론 전 훨씬 더 못칩니다만)

그래도 제 눈엔, 제 귀에는 참 멋지게 보였고, 들렸습니다.
당시 친구가 쳤던 곡은 뉴에이지 곡으로 Jon Schmidt의 All of Me 라는 곡이었지요.
본인은 뉴에이지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하더군요. 지금은 저도 매우 좋아하는 곡입니다.
치면서 중간정간 틀리기도 하고 잠시 멈추기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전부 연주 했습니다.

듣고 있으면서 들뜬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습니다.
이웃집에 피해 줄까봐 집에서 작게 뚱땅거리며 쳤던 음색과도 너무 다르거니와
활기차고 부드럽게 울려퍼지는 피아노 소리 그 자체가 너무 멋있었거든요. 물론 음악도 좋았고요.
비록 웅장한 그랜드 피아노도 아닌 집에 있는 영창피아노 만한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였지만...

그 이후로 조금씩 피아노에 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별로 없는 자유시간 쪼개 가면서 천천히, 조금씩 쳐 나갔습니다.
실력도 없는 주제에 하농 같은 기초연습은 귀찮다고 
그냥 마음에 드는 악보나 보면서 떠듬떠듬.
문자 그대로 취미 이상이 되지 못하는(특기라고 말해주기 상당히 민망한)
그런 연주를 했습니다.

몇 년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도 비슷합니다.
여전히 수준은 바이엘에 머물러 있고,
악보가 없으면 칠 줄 아는 곡도 없고,
있어도 음악에 감정을 싣기는 커녕 악보대로 틀리지 않고 칠 줄 아는 곡도 거의 없고
역시나 기초는 부족해서 손가락이 발가락처럼 움직이고
매일매일 꾸준한 연습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제멋대로 손가락을 놀리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피아노가 좋습니다.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음색이 참 좋습니다.
건반들이 어우러져 탄생하는 갖은 음악들이 정말 좋습니다.
피아노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분위기들이 말할 수 없이 좋습니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낡은 뚜껑을 열어 희고 검은 건반들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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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가 쳤던 곡 
존 슈미트 - All of me 입니다.

이 음악은 무엇보다도
연주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즐거운 기분이 넘쳐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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