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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지옥에서 온 외교도 잘하고 경제도 잘하는 히틀러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집권한 히틀러는 채권(메포 어음)을 무지막지하게 발행하여 군비를 늘렸고 이로 인해 독일 정부의 재정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하지만 실업률은 28.1%에서 0.2%로 줄었고 재임 중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무려 9.5%였다. 1930년대 후반 채권을 천문학적인 규모로 발행할 즈음에는 독일 정부가 가지고 있는 금을 전부 써도 채권을 다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가재정 또한 파탄나기 직전까지 몰렸다. 이렇게 되자 메포 어음을 고안한 얄마르 샤흐트는 전쟁을 반대하고 군비를 축소해서 빚을 갚자고 건의했지만 해임당했다. 히틀러는 전쟁을 벌이면서 점령한 국가들의 중앙은행과 국영기업, 유대인, 반독일 인사들의 자산을 몰수하고 포로와 점령지 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약탈 방식으로 채권을 갚아냈으며, 그 와중에도 계속 늘어나는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 채권의 발행량을 계속 늘렸다. 1938년, 히틀러는 자신의 고향이자 독일 민족의 국가인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나는 이제 나의 고국이 독일에 들어왔음을 선언한다. 독일 민족의 가장 오래된 동쪽 지방이 이 시점으로부터 독일의 것이 되었다.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독일과의 합병이 당연했다는 것을 말했을 것이다. 나의 정치적인 투쟁은 국민들의 사랑으로 쟁취한 것이다. 내가 그러한 국민들의 사랑을 직접 경험한 것은 국경을 넘어 들어왔을 때였다." 이후 민족자결주의를 근거로 영국, 프랑스와 협상해 더 이상 영토 확장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독일인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독일 이름)를 합병했다. 하지만 결국 체코의 남은 영토까지 합병하고 슬로바키아에 괴뢰국을 세웠다. 리투아니아의 옛 프로이센 영토인 메멜도 합병했다. 또한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폴란드를 양국이 분할, 합병하고 소련이 핀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루마니아의 부코비나, 베사바리아를 합병하는 비밀 의정서도 만들었다. 그러나 1941년, 독일이 이를 위반하고 소련을 침공해 파기되었다. 1939년, 나치는 폴란드가 독일인 다수가 거주하는 단치히(독일 이름)를 넘겨주지 않자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했다. 히틀러는 폴란드를 점령한 뒤 평화 협상을 하려 했는데 연합국(영국, 프랑스)이 거부하자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프랑스까지 점령했다. (독일 해군이 약해서 영국을 점령할 수는 없었다.) 이후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에게 전쟁을 끝내자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나치가 폴란드를 침공하지 않았다면 미국, 소련, 독일 세 나라가 냉전을 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소련, 공산주의와 유대인을 이 세상에서 없애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vsl고정닉
명성에 비해 잘 모르는 노량해전을 알아보자
노량해전은 명량해전, 한산도대첩과 함께 이순신의 가장 유명한 전투중 하나이다.그러나 사람들은 노량해전에 대해서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전투', '가장 대규모였고 치열했던 전투', '임진왜란의 마지막 해전'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 전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이순신 인생 최대 해전이자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은 어떻게 진행됐을까?노량해전은 조선군 판옥선 5, 60척, 명군 판옥선 2척(선물받아서 각각 진린과 등자룡이 탑승.) 사선과 호선 합쳐서 300척과 일본군의 안택선과 세키부네 합쳐서 350척가량이 전투한 대규모 국제 해상전이었다. 영화 《노량》을 봤다면 이해가 좀더 쉬울텐데, 노량해전은 크게1. 노량해협 밖으로 유인2. 매복 공격3. 관음포로 유인4. 포위5. 영혼의 맞다이로 진행된다.1. 전투 이전조명연합군에 의해 순천 왜성에 고립되어 자력 탈출이 절망적인 고니시 유키나가는 시마즈에게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 진린에게 연락선 하나만 보내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진린이 이를 수락한다. 이순신은 그 연락선을 추격했으나 놓치고 만다.연락을 받은 시마즈 요시히로는 창선도에 자신의 세력들을 소집했고, 이로인해 조명연합군이 순천왜성을 포위하던 상황에서 역으로 조명연합군이 순천왜성과 창선도의 일본군에게 포위당하는 형국이 돼버렸다.연락선이 떠나고 며칠뒤 이순신은 고니시가 구원을 요청했으니 수많은 군사가 조명연합군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노량해협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린에게 함께 싸울 것을 청한뒤에 적을 유인, 포위, 섬멸할 계획을 세운다.그리고 1598년 12월 15일 밤, 이순신의 위장함대가 순천왜성을 완전 함락시킬 기세로 포격을 가한다.고니시는 이걸 보고"시발 이순신이 시마즈 오기전에 우리를 먼저 족치려나보다!" 하고 시마즈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산까지 불태우며 생쇼를 하기 시작한다.창선도에 있던 시마즈는 그걸 보고 역시나 이순신이 우리를 막으러 노량에 온 것이 아니라 고니시를 공략하러 갔다고 판단, 마침 노량해협에서 순천왜성쪽으로 나가는 물살이 생겨서 노량해협을 신속히 통과한 후, 조명연합군을 고니시와 함께 포위섬멸할 생각을 하고, 이순신의 의도대로 노량해협으로 진격한다.2. 전투 전개대략 0시쯤, 시마즈의 일본군이 노량해협을 빠져나오기 시작한다.일본군은 노량해협을 나오자마자 조선의 매복함대(조선2군)에게 포격을 받기 시작했다.시마즈는 매복함대의 수가 적은 것을 보고 여전히 이순신의 본대는 순천왜성에 있을 것이며, 수적 우세와 일본 수군의 기동성을 바탕으로 매복함대를 포위하여 섬멸한 후, 빠르게 고니시에게 붙는다는 판단으로 대도 위쪽으로 진격했으나매복해 있던 진린의 판옥선과 명나라 함대가 교전을 시작한다.영화에서는 진린은 판옥선도 선물 못받고 전투 중반까지 밍기적대지만 실제로는 이순신에게 선물받은 판옥선을 타고 처음부터 전투에 참여했다.시마즈는 매복에 두 번 당했으나, 역시 이순신의 본대가 순천왜성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며, 노량해협을 타고 다시 돌아가기엔 바닷물도 역류로 흐르고 있고, 선회력이 좋지 않은 일본 배로 포격을 받으며 350척 이상의 대규모 함대를 뒤로 돌려 후퇴하면 피해가 너무 커지기 때문에 오히려 대도 아래쪽으로 진격하여 조명 매복함대를 따돌리고 순천왜성으로 돌진할 생각을 한다.일본 함대는 속도가 최대 강점이었기 때문에 죽을 힘으로 달리면 조명연합함대를 따돌리는것이 충분히 가능했기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나,여기까지도 이순신의 계획이었다.일본군이 관음포 앞까지 돌격하자, 매복해 있던 이순신 본함대(조선 1군)이 시마즈 함대의 측면에서 등장하여 함대의 허리를 끊어내며 돌격한다.상대적으로 우세한 체급으로 허리에 침투하기만 하면, 전후좌우 사방에 포를 장착한 판옥선의 특성상 적의 중간에서 사방으로 화력을 투사하며 일본군의 허리를 꿰뚫을 수 있었고, 지휘부가 위협받는 일본군은 혼란에 빠진다.이때쯤 고니시 유키나가는 자신이 이순신에게 속은 것을 알고 시마즈를 버리고 도망가버렸다.어마무시한 피해를 입고 관음포에 갇혀버린 시마즈는 관음포 포위망을 죽기 살기로 뚫느냐, 아니면 그냥 죽느냐 둘중 하나뿐이었다.시마즈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명 함대쪽을 공략하여 나갈 생각으로 명함대쪽에 돌격을 명령했다.특히 야간전이라 서로 식별하고 사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기에 초근접전으로 진행됐으며, 백병전도 여러번 있었고이 과정에서 등자룡은 명나라 함선이 쏜 포에 맞아 팀킬 당했고 진린은 포위당했으나 이순신에 의해 구출된다.오전 6시쯤, 명군쪽으로의 돌파가 실패하고 절망에 빠진 시마즈는 관음포에서 꼼짝없이 포위섬멸당할 위기에 놓인다.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던 시마즈는 결국 최후의 발악을 준비하는데, 한창 전쟁중도 아니고 철수한다고 육지의 군영도 전부 정리하고 온 터라 더이상 물러날곳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건 영혼의 한타를 시작한다.이때 시마즈군은 오히려 대장선인 조선 1군 쪽으로 돌파를 시도했고, 의외로 이게 먹혀서 포위망이 일부 뚫리게 된다.이때의 발악으로 시마즈를 포함한 약 50척의 배가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이순신이 전사하고 노량해전은 조명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난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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