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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마도사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칼질

강미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3.05.13 15:52:59
조회 230 추천 1 댓글 0


"나는 적마도사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칼질과 저렴한 흑백마법, 도트로 수놓아진 잘생긴 외모, 고겜갤에서의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

적마도사가 파티에 참가하며 한 말이다.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 능력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캐릭터를 만들 때 나는 뉴비였다. 그런데 하다 보니 이것저것 능력을 키우게 되었다. 물론 자기 만족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일까?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 캐릭터를 키우게 되지만, 때로는 그 캐릭터의 성능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캐릭터를 키운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내가 키우는 캐릭터가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노가다하는 기계가 된다. 그러므로 강캐릭터를 쓴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나는 지난해 여름까지 모 게임의 내 캐릭터를 정성스레, 정말 정성을 다해 키웠었다. 그 애를 위해 항상 최신 정보를 수집했고 그 애를 위해 경험치며 돈을 모았다. 게임을 하지 않을 때는 항상 커뮤니티를 새로 고침 했고, 그 애를 위해 현실에서 로그아웃 해주어야 했다.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에게 바쳤더라면 아마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렇듯 애지중지 가꾼 보람으로 내 캐릭터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지난해 여름, 고겜갤질을 시작하였다. 수다 떠는 시간이 늘어가며 게임 할 시간은 없어졌다. 항상 나를 반겨주는 갤러리에 취해 댓글다는 봇을 자처하고 꾸준글 또한 쓰니 세상만사가 잊혀질 듯 하였다.

아차! 이때서야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게임을 실행해 본 게 언제인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허둥지둥 게임을 잡았지만 대세에 뒤처진 후였다. 안타까워하며 레벨을 올려보려고 했으나 남들과의 격차는 까마득하였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강캐릭터에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캐릭터를 키우면서는 PC 앞에서 꼼짝을 못했다. 밥을 먹을 때면 보아뱀이 되어 흡입했고, 잠을 자려다가 다시 일어나 게임을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말 지독한 집착이었다.

며칠 후, 나는 캐릭터를 삭제했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날아갈 듯 홀가분한 해방감. 3년 가까이 함께 지낸 유정(有精)을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강캐릭터를 키우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집착의 경험을 통해 적마도사의 도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게임의 공략은 어떻게 보면 강캐릭터를 키우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보다 강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가다한다. 노가다에는 한정도 없고 휴일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채워넣고자 하는 일념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그 속에서 사람은 캐릭터의 노예가 된다. 자기 자신이 노가다하는 기계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 한 채 캐릭터를 노가다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적마도사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만능 캐릭터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능력을 갖는다면 다른 캐릭터들의 위치를 위협하지 않을 때 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만능 캐릭터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강캐릭터를 키우는 욕심은 게임을 즐기는 감각을 멀게 한다. 적마도사 같은 캐릭터는 까이는가 하면 남들과 같은 캐릭터를 하면 상급 유저가 되는 사례를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다. 그것은 강캐릭터에 바탕을 둔 게임풀이 때문이다. 만약 욕심을 버리고 게임을 처음할 때로 돌아간다면 게임의 생생한 맛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의 그 두근거림을
 떠올려 보자.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적마도사의 또다른 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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