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 조훈현 國手님과 이창호 國手의 이른바 國手대국!!!
추억의 필름 한 컷^^
이창호 9단이 바둑을 두다가 많은 생각을 필요할 때의 버릇을 포인트로!^^
어깨동무 바둑대회를 우승한 그해 봄.
창호가 서서히 승부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던 그 시점에...
이창호의 바둑인생에서 가장 획기적인 분기점이 되는 '대사건'이 생기게 된다.
그것은 어떠한 '바둑인'과의 만남이었는데.
그 '바둑인'은 당대 최강의 천재기사였다.
그는...
후에
戰神이라 불리게 되는 당시 32살의
조훈현 9단이었다....
창호가 어깨동무 바둑대회를 우승하고 난 얼마 후...
언제부터인가 전영선 7단은 "창호는 내가 가르칠 재목이 아니다. 최고수인 조훈현 9단에게 보내야 한다." 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이윽고 전 7단은 10년간이나 한국바둑의 정점에서 독야청청했으면서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최강 조훈현 9단에게 창호를 소개시킨다.
국제기전 11회, 국내외 타이틀 통산 157회 우승으로 영원한 바둑황제로 각인된 戰神 조훈현 9단...
국제기전 22회, 국내외 타이틀 통산 124회 우승으로 '역사상 최강'의 칭호를 받은 石佛 이창호 9단...
(타이틀 획득 100회를 넘긴 기사는 세계적으로 이 두기사뿐...3위는 68회(?)의 조치훈 9단)
한국바둑의 양대 棋聖이자...곧 세계 바둑계의 양대 棋聖으로 군림한 이 유래없는 강함을 선보인 두 사제...
그 운명적인 첫만남을 특이하게도 이창호는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조훈현 9단도 특별한 기억은 없는 듯 하다.
세기의 만남이 이리도 무던한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당시 조 9단은 수많은 도전자들과 싸우며 홀로 독고구패(무협지 소오강호에 나오는 최강의 고수. 당대에 적수가 없어 '홀로 고독하게 패배를 찾으러 다닌다'는 뜻. 이후 이창호 9단도 이에 비유된다)의 마음을 헤아리던 때였고 도전 5강과의 위험대결-치수고치기 대국 15전을 모조리 승리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때였다.
지독한 조훈현. 위대한 조훈현.
이 말 한마디면 당시 한국기계에서 조훈현 9단이 가지는 의미를 어느정도 알 수 있을 것이리라.
하늘에 가장 가까운 영산의 꼭대기에 고이 앉아 올라오는 도전자들을 모조리 떨어뜨리며 절륜의 무공을 쌓아가던 조훈현 9단.
그런 절대적인 전성기를 맞은 조 9단에게 제자를 받아들인다는 생각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자신이 보기에도, 또 다른이가 보기에도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기상조.
또한 창호를 가르치려면 내제자(스승의 집에서 머물며 아무런 대가 없이 스승의 기예를 배우는 것. 조훈현 9단은 어린시절 도일하여 세고에 선생의 내제자로 있었다.)의 방식밖에 택할 수 없는 것이 창호의 집은 자신이 사는 곳과 멀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훈현 9단은 그리 크지 않은 사택에 노부모를 모시고 살던 형편이었기에 그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조 9단의 난처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 7단의 권유는 날이 갈 수록 간곡해졌다.
"내가 가르친 제자인데...기재가 아주 특출해요. 조국수가 거두어 주시오. 만나보면 틀림없이 인정할 겁니다."
조 9단도 예전에 전주에 '바둑신동'이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저 그러려니 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너무나도 지겹게(^^) 듣던 신동 소리인지라 얼핏 관심의 눈길이 보내기도 했지만 그리 주목하진 않았다.
조국수는 '신동'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해 그리 큰 감흥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신동'소리를 듣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내적인 요소이든 외적인 요소이든간에 시간이 가고 세상을 만날 수록 그 빛이 바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신동에서 영재로, 영재에서 수재로, 수재에서 범재로...비일비재한 경우였다.
어쨌건 기인으로 불리고 풍류객으로 불리던 전 7단이 어인 일로 눈빛까지 빛내며 간곡한 부탁을 하니...
그렇게 조우하게 되어 조훈현 9단과 창호는 시험기를 두게 된다.
지도대국으로 칫수는 3점.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두 사람은 첫 대면을 하게 된다.
조훈현 9단은 처음 만난 창호에게서 그리 특별한 "낌새"를 채지 못했다.
낌새...그것은 천재의 눈으로 보는 상대의 "비밀"이었다.
그러나 조 9단의 눈으로서도 창호의 속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불투명하고...불확실한 아이였다. 창호는.
결국 바둑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건데...
그저 뭉특하고 선이 굵고 곧다는 것...
그뿐이었다.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캐낼 수는 없었다.
아니...캐낼 그 무언가가 있는 지 없는 지조차 감이 안섰다.
관심이 없다고는 했지만...
신동, 천재와 같은 凡人들과는 약간 다른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은 오히려 같은 천재들이 더 궁금해 할 수도 있다.
조 9단 또한 전주에 바둑신동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바도 있고, 막상 그 소문의 주인공이 찾아오자, 그리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사람이 눈을 빛내며 간곡히 권유를 하니 호기심이 동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데.
그렇게 내심 기대를 했던 판에 예상과는 판이하게 다른 아이의 모습과 바둑을 보자...조국수로서는 진이 빠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기재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파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게 문제다.
20년을 넘게 바둑에 몸담은 자신이 이런 어린아이의 바둑을 보며 의구심을 품는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었다.
조국수로서도 어린 바둑 영재들이 간간히 보이는 수읽기의 뛰어남과 그 빠르기에 놀라는 경우는 있어도 그 아이의 바둑 자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상황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예상과는 달랐다.
그러나 '실망'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오히려 이 바둑 한판보다는 자신의 건너편에 앉아 무표정으로 바둑판만 바라보는 알 수없는 아이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간을 보내다가...바둑이 끝났다.
결과는 조훈현 9단의 승.
그렇게 창호와 조훈현 9단의 첫 대면은 끝났다.
그리고 한 달 후.
조훈현 9단은 전영선 7단과 홍종현 8단(지금은 9단)등에 이끌려 다시 전주로 와서 창호와 대국을 하게 된다.
역시 지도대국 치수 3점.
이번에는 창호가 이겼다.
첫 대국이 있었던 후 한달 동안 창호는 '상대'였던 조훈현 9단에 대해 열심히 파고 들었고 결국 그 노력은 한 달 후에 승리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조훈현은 흠칫한다...그리고 창호라는 소년의 풀린 눈을 다시 보게 된다.
...조훈현 9단은 이윽고 창호를 내제자로 받아들일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자세히 파헤쳐 볼 수는 없으나...자신의 늑골을 둔중하게 치고 들어오는 그 까닭모를 섬뜩함에 어떤 인상적인 영감을 받았던 것이다.
─ 0.917
...빙산은 9할을 은닉하고 단지 1할만 드러내 보인다고 했던가...
대천재의 눈에 조차 희미하게 보일 듯 보이지 않는 그 어렴풋한 '무거움'.
조훈현 9단은 알 수 없는 운명적인 끌림에 창호라는 소년을 받아들이고야 만다.
그 순간...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조훈현 9단도, 창호도, 며느리도...
그 찰나의 결심이...훗날 세계 바둑계의 판도를 좌우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투 비 컨티뉴...
※ 이 글은 중앙일보 바둑 전문기자
박치문 위원님의
<이창호 이야기>를 토대로 수정, 각색하여 작성된 글임을 밝힙니다.
※ 조훈현 9단의 조카이신
김종서님의
<조훈현 스토리>를 참고하였습니다.
※ 사진 및 그림의 출처는
www.leechangho.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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