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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네집 이야기 시즌 2] 서울구치소 11 "영웅"

김유식 2010.03.28 23:21:41
조회 15844 추천 4 댓글 22


  10월 12일 월요일 오전에 구매용지에 필요한 물품들을 적어서 복도 쪽으로 나 있는 쇠창살 밖의 빨래집게에 매달아 놓았다. 그것을 소지가 보더니 다시 쓰라고 한다. 먹을 것과 그 밖의 것을 나누어서 적어야 한다고 하기에 시키는 대로 했다. 구매할 것을 적고 그 옆에 구매자의 이름과 수번을 적은 후에 사인을 하면 된다. 구매 신청한 물품들은 다음 날인 13일 화요일에 도착했으나 내가 신청한 3만 원짜리 고급운동화는 공급날짜가 아니라는 이유로 취소됐다. 그러면 일반운동화라도 사서 신어야 하는데 2년 6월의 선고형량 때문에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태라 그 다음 날인 고급운동화 공급 일을 잊어먹고 신청을 하지 못했다.

 

  헨리는 고급운동화를 사서 신었고, 6개월의 선고를 받은 신교와 박준영 씨는 11,500원짜리 일반운동화를 주문해서 받았는데 두 가지를 모두 신어보니 역시 고급운동화가 좀 더 발에 잘 맞는 느낌이 났다. 구치소, 교도소에서 파는 운동화는 두 가지로 모두 끈 대신에 벨크로라고 불리는 찍찍이가 달려있다. 고급운동화는 르까프고, 일반운동화는 월드컵이다. 다음번 운동화를 주문할 때 고급운동화로 해야겠다고 미뤄 두다가 결국 신입방을 떠나 본방으로 갈 때까지도 운동화를 사지 못했다.


  10월 13일 화요일에는 구속되었을 때 영치시켰던 슈트 상, 하의와 구두 등을 가족이 찾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보고전을 써서 담당 교도관에게 냈다. 얼마나 오랜 기간 있어야 할지 모르는데 마대자루에 옷가지와 구두 등을 넣어서 그냥 영치시켜 두자니 구겨지는 것도 그렇지만 좀이라도 슬지 모르기에 아내가 찾아가는 것으로 처리했다. 또 ‘인터넷정보공개동의서’라는 것도 작성했다. 이 것을 해 두면 인터넷으로 쓴 편지도 받아 볼 수 있고, 인터넷으로 접견 예약 또는 접견 가능 여부도 알 수 있으며 심지어 다른 사람이 나의 영치금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두 가지를 하는 동안 박준영 씨가 얼마나 많은 질문으로 나를 괴롭혔을지는 여러분이 상상해 보기 바란다.


  10월 14일 수요일에는 옆 사방인 13하 6방의 한 죄수와 같이 접견을 갔다 왔는데 그 죄수가 자기네는 방 죄수들이 모두 어제 들어왔다면서 아무것도 먹을 게 없고, 오늘 아침에 구매 신청한 것은 내일 들어오니까 좀 꿔 달라고 했다. 방으로 돌아가서 철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우리 방에서 구매한 구운 계란을 몇 개 가져다줬다. 다음 날인 15일에 영웅이가 검찰조사를 받으러 갔다가 오기에 내가 6방에서 어제 꿔간 먹을 것 좀 다시 받아오라고 했더니 아예 커피믹스 1통을 가져왔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6방 죄수들이 자기네가 받은 구운 계란 한 알 당 커피 두 봉지씩 쳐서 주겠다고 하기에 한 번 진하게 노려보니까 그냥 커피믹스를 통째 주더라고 했다.


  이날은 목욕도 있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나서 화장실에서 그냥 찬물로 목욕을 했는데 오후에 소지가 오더니 목욕을 하라고 했다. 영등포 구치소에서는 사방에서 목욕탕까지 좀 걸어갔는데 서울구치소는 각 사동마다 조그만 목욕탕이 있다. 방 별로 철문을 열어주면 방마다 6분 정도씩의 시간을 주고 뜨거운 물로 샤워할 수 있도록 해준다. 말이 목욕이지 탕도 없고 그냥 샤워일 뿐이다. 방 죄수들이 옷을 벗고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가 오면 우르르 뛰어가서 씻고 다시 우르르 뛰어온다. 나는 씻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10월 14일 수요일 저녁에 교도관이 오더니 다음 날 영웅의 검취가 있다고 알려줬다. 검취란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는 것으로 밖으로 호송버스를 타고 검찰청으로 나가야 한다. 이미 영웅이는 검찰의 기소가 끝났고 1심에서 법정구속이 되었기 때문에 검사가 다시 부를 일이 없다. 무슨 일 때문인지 의견이 분분했다. 아마 추가로 사건이 생겼을 것이라는 게 방 사람들의 중론이었고 영웅도 명동 건달들을 때린 것 때문일 것 같다고 했다.


  헨리는 영웅이에게 검사나 검찰 수사관 앞에서는 절대로 성질부리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다. 영웅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구속되어 있는 사건의 검찰조사 시에도 검사와 몇 번 말다툼을 하고 밉보인 일이 있던 것 같았다. 검사가 안 되겠다면서 영상녹화를 하는 진술실로 데려가서 조사를 벌였다고 했다.


  10월 15일 목요일 아침부터 검사실로 불려 갔다 오후에 돌아온 영웅은 썩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명동 건달들을 때린 사건 때문에 조사차 불려갔다 온 것인데 검찰 수사관과의 조사를 마치고 검사 앞에서 조서 꾸민 것을 확인하고 있을 때 검사와 싸움이 붙었다고 했다.


  영웅의 말로는, 검사가 “네가 주먹잽이냐? 아니면 깡패냐?”면서 약 올리는 것을 몇 번 참았는데 나중에는 너무 화가 나서 결국 검사의 책상을 발길로 걷어찼다고 했다. 그러자 검사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컴퓨터 본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단다. 검사도 화가 나서 “이거 안 되겠구만!” 하며 고성이 오고가는 중에 같은 조사실에서 조사 받던 삼십대 중반의 전라도 모 조직 행동대장이 영웅이에게, “영웅아 그만 하고 앉아라.” 하면서 싸움을 말렸고 영웅은 대기실로 가서 앉아 있다가 다시 서울구치소로 돌아왔다고 했다.


  전라도의 모 조직의 행동대장은 영웅과 함께 검취를 받으러 가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영웅이 행동대장에게 명동에서 건달을 때린 이야기를 하자 그 행동대장이 말하길,  “내가 명동 쪽으로부터 합의서를 받아 줄 테니 그 대신 나중에 우리 일을 하나 맡아 달라.”고 했단다. 보통 이렇게 말하는 일이란 건달들의 이권 개입이나 다툼이 생겼을 때 와서 자리를 지켜주거나 여차하면 행동으로 나서 달라는 뜻이다. 징역 8개월 선고받은 것도 앞이 깜깜한데 추가 사건이 뜨면 항소심에서 더 나가기 힘들어지는 영웅이는 흔쾌하게 동의를 할 수밖에 없다. 그 행동대장은 영웅이가 검사실에서 나가고 난 후 검사에게 이야기를 잘해서 영웅이 검사실에서 벌인 행동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막아주었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다.


- 계속 -



세 줄 요약.

1. 운동화를 못 샀다.
2. 목욕도 안 했다.
3. 영웅은 검사 책상을 발로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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