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가장 시선이 많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깥 상황을 제외하고 차량 내에서 자주 눈길을 주는 곳을 꼽자면 계기판을 빼놓을 수 없다. 예로부터 시인성을 높이면서도 세련된 계기판을 만들고자 많은 노력이 있었다. 요즘 신차의 디지털 클러스터는 디스플레이에 계기판 그래픽을 띄우는 방식이기에 자유도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현대차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ccNC 기반 디지털 계기판은 최근 한차례 업데이트를 거쳤음에도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이에 일각에서는 1980~1990년대에 잠시 유행했던 전자식 계기판이 더 나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당시 국산차에는 전자식 계기판이 옵션으로 제공되곤 했다. 어떤 디자인들이 있었는지 되짚어보았다.
1986년 대우차의 대담한 시도 당시엔 혁신과도 같았던 옵션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지냈던 대우자동차(현 한국GM)은 당시 현대차, 기아차와 차별화를 위해 도전적인 시도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전자식 계기판이었다. 비록 풀 스크린 기반이 아닌 만큼 표시할 수 있는 정보와 형태가 한정적이라는 단점이 있었지만 당시의 전자식 계기판은 대부분 이랬다.
대우차는 1986년 플래그십 준대형 세단인 로얄 살롱 슈퍼에 전자식 계기판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준중형 세단 르망, 후속 모델인 에스페로에도 사양에 따라 전자식 계기판을 적용했다. 해당 차량에 탑재되던 계기판은 기존 아날로그 계기판을 본뜬 원형부터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디자인, 엔진 출력 그래프처럼 회전수 한계 구간부터 아래로 꺾이는 형태 등 다양한 디자인이 존재했다.
현대차에 계기판 공급하기도 픽셀 그래픽의 시작은 이 차?
당시 대우차에 전자식 계기판을 공급하던 업체는 대우그룹 산하 대우정밀공업이었다. 놀랍게도 해당 업체는 대우차뿐만 아니라 현대차에서도 주문을 받아 전자식 계기판을 공급했다. 해당 부품은 쏘나타 2세대(Y2), 쏘나타 2에 옵션으로 적용됐다. Y2 쏘나타는 그래프형 타코미터를 중앙에 두고 아래 빈 공간에 숫자형 속도계를 배치한 형태였다.
타코미터를 살펴보면 3천 RPM까지는 간격이 넓고 그 뒤로 갈수록 촘촘해지는 배치가 눈에 띈다. 실용 영역대에서 미세한 회전수 조정이 가능하도록 배려한 설계다. 양쪽에는 냉각 수온과 연료 잔량, 배터리 잔량, 유온 게이지가 보인다. 최근 현대차가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픽셀형 그래픽이 적용돼 친근한 느낌이다.
호환 가능했던 기아 계기판 타 차종에 튜닝한 경우도
당시 현대차와 완전히 독립된 상태였던 기아도 유행을 적극적으로 따랐다. 1987년 자동차 공업 합리화 조치가 풀린 후 처음 출시한 승용차 콩코드는 전자식 계기판을 최초로 탑재한 기아차였다. 반달형 타코미터는 스티어링 휠 안에 쏙 들어와 주요 정보를 가리지 않는 이상적인 형태였다. 타코미터 안쪽으로는 속도계와 트립 컴퓨터가, 양쪽 끝에는 수온, 유온 게이지가 위치해 쏘나타와 유사한 배치를 보인다.
준중형차인 세피아에서도 전자식 계기판을 선택할 수 있었다. 아래에는 수평형 타코미터가, 그 위에는 속도계가 큼지막하게 표시되는 개성 있는 디자인이었다. 해당 부품은 프라이드에도 호환이 돼 당시 프라이드 차주가 계기판 튜닝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레트로 감성이 대세인 요즘 완성차 업계가 과거 전자식 계기판을 오마주 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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