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방부가 26일 영국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함과 호위 함정들로 구성된 ’2021 항모전단(CSG21)’이 올 하반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순방할 계획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 국방부도 이날 영 항모 전단 방한 계획을 공식 확인했다.
◇ 퀸 엘리자베스 항모, 핵추진 잠수함 등 호위받으며 아시아 순방
영국 항모의 한국 방문은 1997년 이후 처음이며,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의 아시아 순방도 처음이다. 이번 아시아 방문은 미국의 중국 견제에 동참하는 성격이 커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항모 전단은 동아시아에서 미·일 등과 연합훈련을 할 계획이다.
영국 퀸 엘리자베스 항모가 최신 구축함, 아스튜트급 원자력추진 공격용 잠수함, 보급함 등의 호위를 받으며 항해하고 있다. 다음달 아시아로 출발할 항모 전단도 이와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국방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영국 최신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함이 포함된 2021 항모전단(CSG21)의 첫 순방 일정에 한국이 포함된다”며 “CSG21의 인도·태평양 지역 순방은 영국과 각국 간의 안보협력을 더욱 깊고 지속적이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밝혔다. 영 국방부는 “이번 순방은 영국에게 인도·태평양 지역의 세계적 중요성을 상기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퀸 엘리자베스함은 2017년 취역한 6만5000t급 중형 항모로 길이는 280m, 폭은 73m다. F-35B 스텔스기와 ‘멀린’ 헬기 등 각종 함재기 40여대를 탑재한다. 영국 항모 전단은 퀸 엘리자베스함 외에 45형 구축함 ‘디펜더’와 ‘다이아몬드’, 23형 대잠(對潛)호위함 ‘켄트’와 ‘리치몬드’, 보급함 포트 빅토리아함과 타이드스프링함, 아스튜트급 공격용 핵추진 잠수함 등으로 구성된다. 영국 항모 전단의 해외 순항 훈련은 1978년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 영 항모 전단, 7개월간 4만8000km 달하는 대장정
영국 항모 전단은 다음달 영국을 출발해 지중해,홍해,아라비아해, 인도양을 거쳐 오는 9월쯤 한국과 일본 등을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뒤 싱가포르를 거쳐 오는 12월 영국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7개월에 걸쳐 4만8000여㎞에 달하는 대장정이다.
영 항모 전단의 이례적인 아시아행(行)은 영국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진행됨에 따라 유럽에서 한 발짝 발을 뺀 영국이 미국과의 특수관계를 지속적으로 강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는 9월쯤 한국과 일본을 방문할 영국 퀸 엘리자베스 항공모함
이를 위해 러시아·중국의 도전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적극 동참하게 됐다는 것이다. 영국 해군은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항행의 자유’ 작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18~2020년 함정 5척을 아시아로 보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폈다.
◇ 중국 견제 위해 일본, 인도 등과 연합훈련
영 항모 전단은 이번 아시아 순방 중 인도·일본·싱가포르 등과 연합훈련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중국 견제 성격이 크다. 영 국방부도 이날 “주요 무역 경로에서의 항행의 자유 지지와 모든 국가에 이익을 약속하는 국제 규범 및 행동 시스템에 대한 영국의 약속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대중 견제에 동참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967년 수에즈 운하 동쪽 지역에서 완전 철수했던 영국은 50여년만에 다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깊은 관심을 갖는 외교정책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퀸 엘리자베스 항모의 크기를 보여주는 사진. 런던 국회 의사당보다도 크다.
중국 견제 측면에서 영 항모 전단의 방한 추진은 한때 진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을 의식해 미국의 대중 견제 전선에 참여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국방부는 이날 “국방부는 한·영 양국간 국방협력 증진 및 친선교류를 위해 금년 하반기 영국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의 부산항 기항 요청을 수용했다”고 짤막한 보도자료만 냈다.
◇ 대비되는 영국.한국 국방부의 발표
영국 국방부가 보도자료에서 ‘영국은 유럽 국가중 한국과 가장 긴 시간 교류해온 나라’라며 우호적인 한·영 관계를 강조하고, 벤 월리스 국방장관이 “한국은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에 있어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며 이는 CSG21 순방을 통해 강조될 것”이라고 밝힌 것과 대비된다.
영국은 지난해부터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의 방한을 적극 추진해 왔는데 여기엔 우리 해군의 한국형 경항모 계획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항모 설계 기술, F-35B 스텔스기 운용기술 이전 등을 통해 우리 경항모 계획에 참여하려는 의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주최 세미나에서 이례적으로 주한 영국 대사관 무관(준장)이 직접 참가해 발표를 하고, 퀸 엘리자베스 항모 건조에 참여했던 영국 해군 대령이 건조과정을 설명하는 25분 분량의 영상 발표를 한 것도 이런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다.
◇ 영 항모 방한, 한국 경항모 계획 참여도 주요 이유
F-35B 스텔스기의 항모 운용 노하우는 영국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영국은 미국을 제외하곤 F-35B를 항모에서 운용하기 시작한 세계 최초의 국가다. 헬기 항모를 경항모로 개조해 F-35B를 운용하려는 일본과도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항에 기항할 영 항모 전단과 우리나라 해군과의 연합 훈련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저강도 형태의 연합 훈련이 실시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영국 퀸 엘리자베스 항모에서 F-35B 스텔스기가 이륙훈련을 하고 있다.
이번 아시아 순방을 통해 영국과 일본의 안보협력이 한층 강화되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국제정치 전문가인 이춘근 박사는 언론 기고문을 통해 “세계 정치의 변화는 영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제2의 영일동맹’을 요구하고 있다”며 “마치 118년 전인 1902년 영국이 러시아의 극동 진출을 제어하기 위해 일본과 동맹을 맺었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형국”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은 국제 정세 변화에 맞춰 이미 캐머런 내각 당시인 2015년 발표된 ‘국가안전보장전략’에서 해양국가와의 유대, 특히 일본과의 관계 강화를 강조하고 있었다고 이박사는 지적했다. 2015년11월 발표된 영국 ‘국가안전보장전략’ 보고서는 “영국은 (영국의) 가장 가까운 안보 파트너인 일본과의 방위·정치·외교적 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으며, 일본의 세계적 역할 확대를 적극 지지한다”고 천명했다.
지난 2017년8월엔 일본을 방문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해상자위대를 찾았다. 메이는 최신예 헬기 항모인 이즈모함에도 올랐다. 그녀를 영접한 오노데라 일본 방위상은 “지금의 이즈모함은 러일전쟁 때 일본제국 해군의 기함으로 러시아 함대를 격파했던 군함과 이름이 같다”고 했다. 방위상은 “러일전쟁 당시 영국이 제조해준 이즈모함 덕분에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 4년만에 현실화한 일본 방위상 ‘영일 항모 연합훈련' 제안
현재 이즈모함은 F-35B 스텔스 수직이착륙기를 탑재하기 위해 경항모로 개조중이다. 그러자 메이 총리는 “일본과 영국은 오랜 협력 관계에 있는 나라였으며, 방위 문제에 관해서도 두 나라는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오노데라 방위상이 영국 남부 포츠머스 해군 기지를 찾아 영국 신형 항모인 퀸 엘리자베스함에 올랐다. 당시 퀸 엘리자베스함은 1주일 전에 취역한 최신 함정이었다. 오노데라는 퀸 엘리자베스에 승선한 최초의 장관급 외국인이 됐다.
퀸 엘리자베스를 시찰한 뒤 오노데라는 “퀸 엘리자베스가 아·태 지역에 전개될 경우 이즈모함과 연합훈련을 하자”고 제안했다. 오노데라의 제안이 퀸 엘리자베스 항모 전단의 아시아 파견을 통해 4년만에 현실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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