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만 33세의 나이로 한국군 첫 대장이 됐던 백선엽 장군.
9일 6·25전쟁 영웅이자 창군(創軍) 원로인 고(故) 백선엽(1920~2020) 장군 1주기 추모행사를 앞두고 전직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7명이 영상 등 추모 메시지를 보내온 것으로 확인됐다. 전직 주한미군 최고 수뇌부가 7명이나 한국군 전쟁 영웅을 직접 추모한 것은 처음이다. 폴 라케머러 신임 한미연합사령관도 9일 백장군 1주기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백장군 추모에 나서는 전현직 한미연합사령관은 8명이 된다.
백선엽 장군 서거1주기 행사를 주최하는 한미동맹재단 관계자는 8일 “백선엽 장군 1주기 행사에 맞춰 모두 7명의 전직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추모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백 장군 1주기 행사는 한미동맹재단(회장 정승조 전 합참의장)과 주한미군전우회(회장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공동 주최로 9일 6·25전쟁 최대 격전 중 하나인 다부동 전투가 있었던 경북 칠곡에서 개최된다.
◇ 전현직 주한미군 최고 수뇌부 8명의 한국군 전쟁영웅 추모는 처음
백 장군 추모 메시지를 보내온 전직 한미연합사령관들은 주한미군전우회장인 빈센트 브룩스를 비롯, 존 틸럴리, 토머스 슈워츠, 버웰 벨, 제임스 서먼, 월터 샤프, 커티스 스캐패로티 예비역 대장 등이다. 전현직 한미연합사령관들의 유례 없는 추모 메시지는 백 장군이 생전에 미군들에게 다부동 전투 승리 등 ‘살아 있는 전설이자 신화’로 통했고 한미 안보동맹의 상징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2017년3월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오른쪽)이 헬기를 타고 비무장지대(DMZ) ‘캠프 보니파스'에 도착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을 안내하고 있다. /AP연합
빈센트 브룩스 전 사령관은 미리 배포된 환영사를 통해 “다부동 전투에서 가장 명성을 떨친 지휘관은 고 백선엽 대장님이셨다”며 “다부동에서 그의 용맹한 저항과 적과 기꺼이 맞서는 투지는 모든 미 8군 전원에게 결의를 불어넣었고 결국 이를 통해 전세를 바꿀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 다부동 전투에서 공적을 남기고 작년 별세하시기까지 한미동맹과 대한민국을 위해 일생 동안 수훈을 남겼던 백선엽 대장님을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지난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한미연합사령관을 지낸 토머스 슈워츠 예비역 대장은 “제가 군에서 복무했던 35년 동안 위대한 지도자들을 많이 만났는데 백 장군님은 제가 만난 가장 위대한 지도자중 한 명”이라며 “그는 국가적 영웅이었고 나라를 구했고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슈워츠 전 사령관은 “백 장군님과 포옹했을 때의 사진을 갖고 있는데 제 최고의 경험이며 절대 잊을 수 없는 포옹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 버웰 벨 “백장군을 항상 미국 조지워싱턴에 비유해와”
존 틸럴리 전 사령관은 “백 장군의 뜻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것은 ‘조국이 없이 나는 존재할 수 없다’고 쓴 그의 마지막 책이라고 생각한다”며 “백 장군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애국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백 장군은 이 위대한 나라와 위대한 사람들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절대적인 애국자였다”고 강조했다.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이 2008년3월 서울 용산 미군기지 사령관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갖고, 한국인 손녀딸 입양과 한·미 간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버웰 벨 전 사령관은 서한을 통해 “저는 항상 백선엽 대장을 미국의 조지 워싱턴 장군에 비유해왔다”며 “워싱턴 장군은 미국이 자유를 찾는 데 기여하신 존경받는 고위 군사 지도자이였고, 백 장군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켜낸 것과 같다”고 했다. 그는 “백 장군은 개인적 용기와 전략적 비전, 그리고 역동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국민들을 결속시켰다”고 밝혔다.
제임스 서먼 전 사령관은 “백 장군은 진정한 영웅이었고 한미동맹을 지난 70여년 동안 강력하게 흔들림 없도록 굳건히 지켜온 접착제”였다며 “그는 자유의 대가와 희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한국 국민들뿐 아니라 미국 군인들에게도 큰 유산을 남겼다”고 추모했다.
◇ 백선엽, ‘한국판 300′으로 불리는 다부동 전투 승리의 주역
고 백선엽 대장이 6·25전쟁 당시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다부동 전투는 스파르타의 300 용사가 마케도니아 해안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막다가 전원 옥쇄한 역사에 비견된다. 테르모빌레는 영화 ’300′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부동이 돌파되면 임시수도 대구가 적 포화의 사정거리에 들어가고 부산까지 밀려 남한 전역이 적화될 가능성이 컸다.
2018년 11월 서울 용산구 국방컨벤션에서 주한미군이 주관하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 생일파티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정경두 국방부장관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박한기 합참의장, 해리해리스 주한미국대사 등이 참석했다. 특히 해리스 미대사는 무릎을 꿇고 인사를 해 눈길을 끌었다. /남강호 기자
당시 30세 청년 장군으로 1사단장이었던 백선엽은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후퇴하는 한국군을 가로막았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다. 저 사람들(미군)은 싸우고 있는데 우리가 이럴 순 없다. 내가 앞장설 테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면 나를 쏴도 좋다”며 장병들을 독려, 결국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백 장군은 1952년 7월 최연소(32세)로 제7대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고, 이듬해 1월엔 만 33세의 나이에 한국군 최초의 4성 장군이 됐다. 정전회담 때는 한국군 대표로 참가했다. 백 장군은 1959년 합참의장을 지낸 뒤 이듬해 5월 예편했다. 한국군 최고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두 차례나 받았고 지난해 7월10일 별세했다.
◇ 다부동 전적지서 백장군 장녀 9일 특별강연 행사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는 9일 오전 11시부터 고 백선엽 대장 서거 1주기를 추모하는 헌화 행사 및 제10회 한미동맹포럼을 경북 칠곡군 다부동에서 개최한다. 헌화 행사는 서욱 국방장관,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과 국회의원, 이철우 경북도지사, 폴 라케머러 신임 한미연합사령관, 김승겸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다부동 구국용사충혼비에서 개최된다.
지난 6월25일 오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6.25전쟁 71주년 기념식과 백선엽 장군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참석 인사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한미동맹 포럼은 미국에 거주하는 백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를 초청, 칠곡 호국평화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과 한미동맹’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연다. 다부동 헌화행사 및 제10회 한미동맹포럼은 유튜브 채널인 ‘한미동맹재단tv’를 통해 실시간 방송될 예정이다.
한편 국방부와 육군, 국가보훈처 등 정부나 군(軍) 차원의 공식 추모행사는 열리지 않아 “백 장군에 대한 현 정권 일각의 불편한 시각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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