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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말 못 하는 ‘홍길동軍’

BEMI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0.08 10:53:34
조회 2167 추천 22 댓글 25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4월 15일 오후 청와대에서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 후 접견실로 이동하고 있다.앞줄 왼쪽이 원인철 공군참모총장, 오른쪽은 서욱 육군참모총장./연합뉴스


“나는 우리가 함께 미 육군의 주요 야전교범을 썼으면 합니다.”

미 육군 초대 교육사령관이었던 윌리엄 드푸이 장군(대장)은 1974년 10월 예하 8개 학교장(장군)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미 육군의 새로운 야전교범(FM·Field Manual) 100-5를 실무자들이 아니라 드푸이 사령관 자신을 비롯, 장군들이 직접 쓰자고 한 것이다. 드푸이 장군의 편지는 괜히 군기를 잡기 위해 형식적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다. 학교장별로 언제까지 교범 초안을 제출하라며 구체적인 과제를 줬다.

그의 서신을 받은 장군들은 전례 없는 조치에 황당해하며 불쾌해했다고 한다. 일부 장군은 드푸이가 소집한 회의에 골프채를 들고 오거나 부하가 만들어준 개략적인 초안을 갖고 나타났다. 드푸이는 이들에 대해 대놓고 “골프채를 사용할 일은 없을 것” “애들 수준”이라며 면박을 줬다. 드푸이는 장군들에게 “나는 여러분이 직접 (안을) 작성할 것을 권장한다”며 “내가 지시한 병과별 야전교범 작성은 여러분 개인의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미 육군 교육사 예하 학교장들은 1976년까지 자신에게 부여된 ‘숙제’를 했다. 그 숙제의 결과물이 현대 야전교범의 전형(典型)이자 군대 교리의 대표 혁신 사례로 꼽히는 1976년판 FM 100-5 ‘작전’(Operations)이다. 이 교범은 출간 후 상당한 비판과 논란을 초래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미군은 실전적 훈련과 싸우는 방법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그 전까지 미군은 베트남전 패배의 수렁에 빠져 하극상이 만연하고 국민으로부터 천덕꾸러기처럼 불신받는 존재였다. 하지만 드푸이의 노력으로 태어난 ‘공지전투’ 개념 등은 1991년 걸프전 승리로 미군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드푸이 장군보다 우리에게 훨씬 잘 알려져 있는 미군 장군 중에 싱글러브 전 주한미군 참모장이 있다. 싱글러브 장군은 1977년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유로 본국에 소환돼 강제 전역 당하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일화로 유명하다. 그는 그해 5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5년 이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며칠 뒤 백악관에 호출돼 발언 경위를 추궁당했지만 대통령과 면담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계획은 2~3년 전의 낡은 정보에 근거해 취해진 것”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싱글러브 장군은 그의 강제 전역을 아쉬워하는 한국 지인들에게 “내 별 몇 개를 수백만 명의 목숨과 바꿨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에 그 이상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런 드푸이와 싱글러브 장군의 모습은 최근 한국군 수뇌부 모습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재 한국군은 안팎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군은 인구 절벽 등으로 내년까지 총병력을 50만명으로 감축, 6·25전쟁 이후 가장 적은 규모의 군대를 보유하게 된다. 지난 2018년부터 5년간 육군 병력만 11만8000명, 즉 약 12개 사단의 병력이 줄고 있다. 반면 군 복무 기간은 21개월에서 18개월로 줄어 90% 넘는 병역자원이 현역으로 입대해야 하는 판이다. 90% 넘는 현역 입대율은 야전 지휘관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큰 치적 중 하나로 내세워온 군 병영 문화 개선도 잇단 부실 급식, 성추행 사건 등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군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 데엔 청와대와 정권 핵심부의 과도한 군 개입도 문제지만 상당수 군 수뇌부의 무소신 행태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방부가 한때 북한 미사일을 미사일이라 표현하지 않아 ‘홍길동군’으로 불렸던 것은 이 같은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 정부는 ‘한국군이 무너진 군대가 됐다’는 비판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서 과거 보수 정권보다 더 많은 국방비를 투자해 첨단 신무기를 더 많이 개발·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사일 사거리 및 탄두 중량 제한을 철폐한 미사일 지침 해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강력한 재래식 탄두(彈頭)를 가진 ‘현무-4’ 미사일 개발 등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아무리 우수한 무기를 갖고 있어도 이 무기가 향할 적(敵)이 없거나 무기가 엉뚱한 방향을 향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미 컬럼비아대 스티븐 비들 교수가 1952년부터 1992년까지 일어난 16차례의 전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보다 우수한 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승리한 경우는 절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50%의 승률은 동전 던지기와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올바른 대적관(對敵觀)과 강한 정신 전력을 가진 군대,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제대로 훈련이 된 군대, 자군(自軍) 이기주의 및 각자도생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 등 첨단 미래전에 대비한 군대가 필요한 이유다.

현 정부 들어 군 수뇌부로 발탁됐지만 최근 야당 대선 캠프에 들어간 일부 전직 군 수뇌부에 대해 여당 의원이 “별값이 똥값이 됐다”고 비난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이들은 “이렇게 군대의 속성과 군인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무시하고 명예를 짓밟는 정부는 결코 군인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며 “군인들을 통제할 수는 있어도 군인들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현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내년 3월 차기 군 통수권자로 선출될 여야 대선 후보들도 유념해야 대목이다. 아울러 한국군이 지금의 수렁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차기 군 통수권자가 ‘한국판 드푸이’ ‘한국판 싱글러브’를 새로운 군 수뇌부로 발탁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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