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전 세계 게임 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킨 687억 달러(한화 약 87조) 규모의 세기의 딜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건’이 드디어 마무리될 분위기다.
MS의 품에 안길 가능성이 높아진 액티비전 블리자드
아직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미국 FTC(연방거래위원회)가 이번 인수를 막기 위해 신청한 가처분 신청을 미국 법원에서 기각했으며, 이번 인수를 전면에 서서 반대해온 소니도 지난 16일 MS와 이번 인수건의 핵심인 ‘콜오브듀티’를 플레이스테이션에 지속 공급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소니의 항복 선언이다.
또한, 이번 인수에 가장 먼저 반대 의사를 밝힌 영국 CMA(경쟁시장청)도 항소심에서는 계약 내용 수정을 통해 합의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조만간 인수 과정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MS와 CMA의 항소심은 7월 18일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좀 더 충분한 검토 과정을 거치기 위해 6주를 연기해 오는 8월 29일 진행될 예정이다.
항소심을 8월 29일로 연기한 CMA
이번 인수건의 진행 과정을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파란만장했다.
지난 2022년 1월에 MS가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발표할 때만 하더라도, 게임업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인수합병 소식에 게임업계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북미, 유럽 지역에서 플레이스테이션 판매를 견인하던 인기 게임 ‘콜오브듀티’를 MS에 뺏기게 된 소니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87조에 달하는 거대 기업들의 인수 합병이 게임 하나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지만,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발표에 따르면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전체 매출이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 시리즈 전체보다 많고, 영화 ‘스타워즈’의 2배가 된다고 한다.
소니는 전 세계 클라우드 게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MS가 ‘콜오브듀티’ 등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을 독점할 경우 클라우드게임 시장의 경쟁을 해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으며, MS의 독과점을 경계하는 정부들까지 이에 동조하면서 인수 반대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영국 CMA가 인수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심층 조사를 들어가고, 미국 FTC가 반독점 소성을 제기할 때만 해도 이대로 무산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으며, 그 결과 MS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는 일까지 있었다. 전 세계 게이머들은 '콜오브듀티' 때문에 게임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소니와 MS 모두 서로가 약자라고 주장하는 우스운 장면도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극적으로 반전된 것은 미국 연방법원이 FTC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다. FTC는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가 게임업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인 만큼 조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나, 게임 시장 경쟁을 저해할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기 때문에 기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FTC가 미국 법원을 설득할만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인수 합병의 쟁점이 된 콜오브듀티 시리즈
게다가 더욱 결정적인 것은 이번 인수 반대에 사활을 걸었던 소니가 MS와 ‘콜오브듀티’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필 스펜서가 SNS에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이전에 제안했던 10년 계약을 소니가 합의했다.
MS가 독점할 수도 있었던 ‘콜오브듀티’를 최소 10년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할 수 있게 됐으니, 소니가 모든 것을 잃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상황의 불리함을 인지한 소니가 자존심을 꺾고 MS에 항복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10년 계약은 MS가 이전에도 제시한 제안이었고, 소니의 진정한 목적은 ‘콜오브듀티’를 플레이스테이션에 지속적으로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인수건을 완전히 무산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으로 ‘콜오브듀티’를 10년간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할 수 있게 된 것은 가장 최악의 상황을 면한 것일뿐, 게임기 시장의 주도권은 완전히 MS로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소니와 콜오브듀티 계약을 발표한 필스펜서 SNS
소니는 이전과 동일하게 플레이스테이션에서 ‘콜오브듀티’를 판매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MS는 ‘콜오브듀티’를 게임패스로 입점시킬 경우 엄청난 신규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콜오브듀티’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은 10만원에 가까운 금액을 지불해서 구입해야 즐길 수 있지만, ‘콜오브듀티’ 엑스박스 버전은 월 13500원을 내고 게임패스에 가입하면 되고, 100여종의 다른 게임까지 추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콜오브듀티’가 인수 과정이 마무리되자마자 게임패스에 합류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블리자드 대표가 최근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디아블로4’에 관해 게임패스 입점은 절대 없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MS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입장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CMA가 이번 인수를 허가하기 위해 MS에 어떤 조건을 내밀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완전히 무산될 뻔 했던 세기의 딜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MS가 드디어 품안에 들어온 전가의 보도 ‘콜오브듀티’를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소니는 MS의 품에 넘어간 ‘콜오브듀티’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를 발굴할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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