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메카=서형걸 기자] 어쌔신 크리드 1편의 무대는 어쌔신의 본고장 중동이었다. 이후 르네상스 유럽, 18세기 아메리카, 대혁명기 프랑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영국,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등 전세계 방방곡곡을 거쳤다. 어쌔신 크리드: 크로니클스 같은 외전까지 포함하면 암살단과 템플기사단의 암투가 벌어지지 않았던 곳을 찾기가 훨씬 수월할 지경이다.
10일 정식 발매된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는 9세기 영국이 배경이며, 주인공은 눈 주위를 검푸른 색으로 칠하고 쌍도끼를 든 바이킹 전사 ‘에이보르’다. 이 시기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에 거주하던 바이킹들은 영국으로 대규모 이주를 시도했다. 그 곳에는 선주민 켈트인을 변방으로 내쫓은 다음 안방을 차지한 앵글로색슨인이 7개 왕국을 세워 군림하고 있었다. 이처럼 굴러온 돌이 굴러온 돌을 빼는 상황은 왜 벌어진 것일까? 주인공 에이보르와 바이킹들이 거친 파도를 헤치고 영국으로 간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바이킹의 대규모 영국 침공은 효심 때문?
바이킹은 게르만족 일파인 노르드인을 말한다. 물론 바이킹 또는 노르드 모두 스스로 붙인 명칭이 아닌, 이들과 적대했던 세력 또는 후대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로마 제국이 건재하던 시기부터 훌륭한 무장에 뛰어난 항해술을 지닌 종족으로 묘사되긴 했지만, 8세기 이전까지는 ‘공포의 상징’이 아닌, 희귀한 산물을 남쪽으로 전달하는 훌륭한 교역 상대였다.
야만전사 바이킹은 8세기 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독실한 신자들의 기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던 영국의 수도원들이 무차별적으로 습격 당했다. 이 사건은 유럽 기독교 세계에 큰 충격을 선사했다. 다만, 이 사건은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의 시대적 배경보다 앞선 시점의 일이다. 이후 한동안 바이킹은 영국보다 프랑스에 더 군침을 흘렸다.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는 865년부터 시작된 ‘이교도 대군세’라는 사건을 소재로 한다. 이 사건은 라그나르 로드브로크라는 전설적인 바이킹 전사의 죽음이 원인이 됐다. 샤를마뉴 대제의 아들이자 서프랑크 왕국의 지배자 샤를 대머리왕의 골머리를 앓게 했던 라그나르는 영국 노섬브리아 왕에 의해 어처구니 없는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문제는 라그나르의 아들들이 하나 같이 호전적인 바이킹 전사였다는 점이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아들 중에는 게이머에게 익숙한 이들이 많다. ‘강용한 자’ 비요른과 ‘뱀눈’ 시구르드, ‘흰 옷’ 할프단, '약골' 이바르 등은 크루세이더 킹즈 3를 한 유저라면 귀에 익을 것이다. 이 중 할프단과 이바르는 또 다른 형제 우바와 함께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영국으로 향한다. 이 중에서 이바르와 우바는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에서 주인공 에이보르와 만나게 된다.
사실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의 최후에 대해선 여러 설이 많은데다가, 실존 여부까지 의견이 분분해 바이킹의 영국 침공이 온전히 ‘효심’에서 우러나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바이킹이 영국을 주요 침략 대상으로 삼은 것에 대해서는 바이킹의 계속된 침략에 방어 체계를 다듬어 내성을 쌓은 프랑스보다 방심하고 있는 영국이 ‘가성비 좋은’ 약탈 상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영국의 ‘세종대왕’ 알프레드가 악당?
바이킹의 대규모 영국 침공 ‘이교도 대군세’는 10년 넘게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영국 앵글로색슨 7왕국은 차례차례 무너졌고, 서남부에 위치한 웨식스 하나만 남은 채 바이킹에게 점령당했다.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에서는 주인공 에이보르가 영국인과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동앵글리아의 왕 오스왈드와 교류하지만, 이는 허구일 뿐이며 실제로는 바이킹이 세운 허수아비 왕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웨식스는 어떻게 유일한 생존자가 됐을까? 웨식스 왕국은 바이킹의 침략을 성공적으로 방어했고, 그 중심에는 ‘대왕(The Great)’이란 경칭이 붙은 알프레드가 있었다. 알프레드는 본래 왕위 계승권자가 아니었지만, 형인 애설레드가 전사하면서 23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처음에는 패배의 쓴맛을 보기도 했지만, 전황을 유리하게 가져간 알프레드는 바이킹과 평화조약 맺게 된다. 이후 문화, 경제, 종교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을 단행해 웨식스를 부강하게 만들었다.
대왕 알프레드는 영국사에서 가장 활약이 두드러지는 인물이다. 한국사와 비교하면 이순신(외적의 침입을 격퇴)과 세종대왕(부국강병과 문화중흥)을 더한 업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에서는 첫 인상이 영 좋지 못하다. 주인공이 속한 바이킹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문서에 서명을 하는데다가 외모 역시 음흉하다.
어쌔신 크리드에서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었던 실존 인물이 악역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한 어쌔신 크리드 3의 DLC ‘워싱턴 왕의 폭정’에 등장하는 절대군주 조지 워싱턴이다. 독립전쟁 영웅이자 딱 8년만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낙향했을 만큼 권력욕이 없는 인물이라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 받는 위인 중 하나지만, 어쌔신 크리드에서는 독재가가 된다. 알프레드 대왕 역시 워싱턴처럼 ‘흑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바이킹 버서커(광전사)의 괴력은 약물의 힘?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 등급 분류에서 ‘약물’이 들어갔다는 소식이 회자된 바 있다.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항상 받았던 것이지만, 약물 사용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포함된 것은 시리즈 최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의 주인공은 환각증세를 불러일으키는 약물을 마시고 아스가르드로 가기도 한다.
이는 앞뒤 가리지 않고 싸우는 바이킹 광전사, ‘버서커(Berserker)’에 얽힌 다양한 설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킹 광전사들은 전장에서 환각상태에 빠진 상태로 싸움을 하기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데, 이 같은 환각상태에 빠지기 위해 환각 효과를 주는 버섯 또는 이 버섯을 섭취한 순록의 오줌을 먹었다는 설이 있다.
물론 이 주장은 증거가 불충분하기에 통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대신 종교적 믿음 또는 의식에 의해 집단적이고 정신적인 환각에 빠져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석한다. 어쌔신 크리드: 발할라에서 약물을 먹고 신들의 세계로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약물과 종교적 믿음에 의한 환각 두 가지를 적절히 절충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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