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에는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누릴 수 없는 여러 장점이 있다. 구조가 단순하고 유지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할 뿐만 아니라 진동이 없고 조용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소리가 없어 조용하다는 장점은 상황에 따라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좁은 골목길에서 보행자들이 차량의 존재를 인지하기 어려워 안전에 취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전기차가 저속으로 주행 시 가상 엔진음을 내도록 의무화했다. 유럽은 시속 20km 이하에서 주행 시 56dB 이상의 가상 엔진음을 내야 하며 한국은 시속 30km 이하로 주행 시 75dB 이하의 경고음을 발생, 보행자가 알 수 있도록 소리에 변화를 줘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완성차 업계는 전기차 가상 엔진음을 브랜드의 정체성을 담을 기회로 활용하는 추세다. 각 자동차 제조사들이 어떤 가상 엔진음을 적용했는지 간단히 살펴보았다.
글 이정현 에디터
한스 짐머와 협업한 BMW
엔진음 닮은 벤츠 가상 사운드
BMW는 영화 음악 거장 ‘한스 짐머’와 협업해 ‘BMW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을 개발했다. 기존의 엔진음을 벗어나 마치 SF 영화의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제공하며 추가 비용을 내면 일부 내연기관 모델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최근 공개된 M 전용 전기차 XM의 경우 스포츠 혹은 스포츠 플러스 모드 선택 시 부스트 사운드가 추가되어 다이내믹한 운전 감성을 제공한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자체 개발한 ‘사운드 익스피리언스’를 전기 세단 EQS에 최초로 적용했다. 벤츠 사운드 익스피리언스는 ‘실버 웨이브 사운드’와 ‘비비드 플럭스 사운드’ 두 가지가 제공된다. 비비드 플럭스는 미래지향적인 감성을 가득 담았으며 실버 웨이브 사운드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엔진음에 전기차 사운드를 일부 섞은 느낌이다.
자연스러움 강조한 아우디
레이싱카 소리 변형한 포르쉐
아우디는 독특하게도 현실에 존재하는 소리를 이용해 가상 사운드 ‘E-사운드’를 제작했다. 바람과 타이어 소음, 기계음 등 실제 주행 시 들을 수 있는 소리에 악기음을 더해 인공적인 소리임에도 엔진 배기음과 유사한 느낌을 부여한 것이 특징이다. 아우디는 전용 전기차 E-트론 GT부터 E-사운드를 적용했다.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인 포르쉐에게 엔진음은 브랜드 정체성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포르쉐는 전기차에도 브랜드 헤리티지를 녹여내려 노력했다. 포르쉐 첫 전기차 타이칸에 적용된 ‘E 스포츠 사운드’는 포르쉐 하이브리드 레이싱카인 ‘919’의 트랙 주행 소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현대차그룹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
가상 사운드 공유 플랫폼도 생길까
현대차그룹은 본격적으로 전기차를 내놓기 전인 2015년부터 가상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사운드 디자인 리서치 랩’을 운영해왔다. 여기서 만든 가상 사운드는 하이브리드 모델부터 시작해 제네시스 GV60, 기아 EV6, 아이오닉 6 등 E-GMP 기반 전기차에도 ‘액티브 사운드 디자인(E-ASD)’라는 이름으로 적용됐다.
E-ASD는 음향 합성 기술로 만들어져 마치 우주선을 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며 속도와 토크, 드라이브 모드 변화에 맞춰 생동감 있는 사운드를 제공한다. 언젠가는 전기차 가상 사운드 공유 플랫폼이 생기고 이에 대한 국제 규격이 확립되어 누구든 가상 사운드를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상상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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