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현대전의 중추신경 ‘통신’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8일 X(옛 트위터) 계정에 “스타링크는 가자지구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구호 단체들의 (인터넷·통신) 연결을 도울 것”이라고 써 이스라엘이 강력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머스크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인터넷과 통신망이 끊긴 가자지구에 자사 위성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를 제공하겠다고 공언하자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개인(민간인)이 전쟁 판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슐로모 카르히 이스라엘 통신부 장관은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머스크의 행동에) 맞서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하마스가 스타링크를 테러에 쓸 것이 분명하고 머스크도 이를 알고 있다”고 반발했다.
스타링크는 저궤도에 2030년까지 4만2000여 개 소형위성을 띄워 전 세계에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4000여 개의 위성이 궤도에 올려져 가동 중이다. 지상 기지국이 없어도 수신 안테나만 있으면 세계 어디에서든 통신·인터넷을 가능하게 한다는 게 강점이다. 전쟁이 나 지상 기지국 등이 파괴됐을 때 유용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픽=박상훈
◇우크라전 ‘양날의 칼’이 된 스타링크
실제로 스타링크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전에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 개전 초기 러시아군의 공격에 의해 우크라이나 휴대전화 통신망과 인터넷 네트워크가 파괴되자 머스크는 스타링크 위성 단말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스타링크 덕에 우크라이나의 휴대전화 통신망 등은 살아났고 전투를 계속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군이 드론으로 러시아군 전차 등을 파괴할 수 있는 것도 상당 부분 스타링크 지원 덕이다.
하지만 지난해 스타링크가 끊겨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함정에 대한 공격이 실패한 적도 있다. 우크라이나 수중 자폭 드론이 러시아 함정에 접근했을 때 머스크가 스타링크 위성 통신망을 끄라고 지시했고,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군 드론은 갈 길을 잃고 타격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머스크와 스타링크가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각종 첨단 무기가 사용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전은 스타링크 등 지휘통신 분야에서도 최신 IT 기술이 실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전에서 통신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것은 전사(戰史)를 통해서도 확인되는데 우크라이나전도 예외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전에서는 SDR(Software Defined Radio, 소프트웨어 기반 무선 통신)이라 불리는 기술이 맹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무전기의 주파수를 채널 특성에 맞게 변형·복원하는 변·복조 방식을 소프트웨어로 처리, 여러 형태로 운용하던 무전기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세계 IT 업체들이 이 SDR 기술을 활용해 작은 USB 형태의 수신기, 휴대폰보다 약간 큰 무전기로 만들어 다양한 상품화에 성공했는데 우크라니아전에서 이런 상용 제품들이 널리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지휘관 잡은 67만원짜리 장비
SDR 기술은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전파를 수신해 지휘소, 부대 위치를 파악해 타격하고, 드론을 운용하는 러시아군 위치를 확인해 공격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러시아군 휴대폰 전파를 탐지해 공격한 장비도 인터넷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장비라고 한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지휘소를 파악하는 데 사용한 위치식별 SDR 수신기는 인터넷에서 499달러(약 67만원)면 구매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난 10월 서울 ADEX 2023 전시회에서 공개된 첨단 이동통신 장비 ‘마넷(MANET)’. 외부 기지국 등의 도움 없이 무선 단말기 간 통신이 가능하다. /휴니드테크놀로지스
미군은 수많은 실전 경험을 토대로 이런 SDR 기술 등을 활용해 마넷(MANET·Mobile Ad-hoc Network)이라 불리는 전투원 네트워크 체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마넷은 외부 기지국 등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무선 단말기끼리 서로 교신하는 이동 통신망이다. 전쟁 상황이나 항공기, 선박, 재해·재난 지구 등 외부 인터넷과 고립된 환경에서 효과적이다.
전문가들은 미군 등 선진국 군대들의 추세와 우크라이나전의 교훈 등을 감안할 때 한국군 전술 통신 네트워크 체계는 상당히 뒤떨어져 있으며 획기적인 변화와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현재 한국군 전술 네트워크의 핵심은 TICN(Tactical Information Communication Network, 전술정보통신체계)과 TMMR(Tactical Multiband Multirole Radio, 전술 다대역 다기능 무전기)이다. TICN은 신형 무전기 등 첨단 네트워크를 활용한 것으로, 총 5조6000억원이 투입되는 육군 최대 규모의 무기 사업이다. TMMR은 여러 종류의 무전기를 하나로 통합한 TICN의 핵심 장비인데, 기술적인 문제로 한동안 도입이 지연됐다.
그래픽=박상훈
◇우여곡절 많았던 TMMR사업
1996년 착수된 TICN 사업은 20년간 개념 정립 및 개발 기간을 거쳐 2015년부터 전력화(戰力化)가 시작됐다. TICN은 초기에 논란 끝에 와이브로(무선 광대역 인터넷)를 적용했는데 결과적으로 한국군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기술을 적용한 군대가 됐다. 핵심 장비인 TMMR도 국회 국방위에서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되는 등 속을 썩였다. 지난 2019년 군 시험평가 때 TMMR은 음성과 데이터(영상 등)가 동시에 전송돼야 하지만 선택적으로 한 가지만 전송할 수 있었고, 통신 도달 거리가 군 요구 성능에 못 미치는 등 여러 문제점이 발견돼 성능 개량 사업이 추진됐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음성과 데이터의 동시 통신지원이 가능해지는 등 군 운용시험평가를 통해 문제점 개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군 무기도입 체계의 경직성, 기술력 부족, 기술정책 결정 오류 등으로 한국군 전술 네트워크는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휘소 중심, 무전기 중심의 전술 네트워크 체계 구축은 한계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일선 군 간부들이 북한 도발 등 비상 상황 시 그동안 수조원을 들인 전술 네트워크 체계 대신 상용 휴대폰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전술 네트워크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트워크 중심전의 核, 통신]
통신 망가지면 3축 체계도 무용지물
네트워크 중심전(NCW·Network-centric Warfare)은 1990년대부터 미군이 발전시켜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실전에도 적용해온 현대전의 핵심 작전 개념 중 하나다.
지리적으로 흩어져 있는 부대와 각종 장비, 부대원 간에 유·무선으로 거미줄처럼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성해 전투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미군은 네트워크전에 대해 “전장 내에서 우군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상황에 대한 정보 공유를 향상시키며, 군사작전의 모든 수준에서 신속하고 효과적인 결심을 가능하게 하고 작전 수행의 속도를 증대시킴으로써 정보의 우위를 전투력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네트워크전은 링크16 등 데이터 링크에 의해 정찰위성 등 인공위성, 조기경보기·전투기 등 공중 무기, 이지스함 등 함정, 전차·장갑차 등 지상 무기, 전투원(병사)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이뤄진다. 데이터 링크는 통신망을 의미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중심전의 핵심은 통신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한 북한 핵·미사일 고도화에 대응하는 한국형 3축 체계에도 네트워크전 개념이 적용된다. 3축 체계의 하나인 킬 체인은 정찰위성 등을 통해 탐지한 지 30분 내에 북한 미사일 이동식 발사대 등을 파괴하겠다는 것이다. 탐지된 영상이나 사진이 즉각 한미 양국군 지휘부에 전달돼 타격을 결심한 뒤 곧바로 미사일이 발사되거나 공습해야 가능한 일이다. 현실적으로 30분 내 타격은 어렵지만 데이터 링크 등 통신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킬 체인 등 한국형 3축 체계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네트워크 중심전(NCW)
흩어져 있는 부대와 각종 장비, 부대원끼리 유·무선으로 거미줄처럼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성해 전투 역량을 극대화하는 것. 통신이 핵심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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