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7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아덱스(ADEX) 2023' 개막식에서 첫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가 상공을 축하 비행하고 있다./뉴시스
최근 첫 국산 초음속 전투기인 KF-21 개발·양산과 관련해 국방부 산하 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40대였던 초도 양산 물량을 절반인 20대로 줄여야 한다는 사업타당성 조사결과가 나와 업계와 정치권 등 군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국책연구기관이 현재까지 큰 탈 없이 비교적 잘 진행되고 있는 KF-21 사업을 사실상 ‘저격’해 황당하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국방연구원, 기술적 미비 등 이유로 KF-21 양산물량 절반 축소 건의
KIDA 는 국방부 산하에 있는 대표적인 씽크탱크인데요, 각종 무기도입 사업에 대한 소요검증 및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국내 연구개발 무기인 KF-21이 국방부로부터 ‘잠정 전투용적합’ 판정을 받음에 따라 양산 사업타당성을 조사한 결과입니다. 여러 언론에 보도된대로 KIDA는 공대지 무장능력을 비롯한 ‘기술적 완성도의 미성숙’ 등을 이유로 ‘KF-21의 초도 물량을 40대에서 20대로 줄여야 한다’는 사업타당성조사 결론을 냈다고 합니다.
KF-21 사업은 오는 2026~2028년 초도 물량 40대를 생산한 뒤 2032년까지 80대를 추가 양산해 총 120대를 공군에 인도한다는 계획 아래 개발이 진행 중인데요, KIDA는 이 초도물량 40대를 절반인 20대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월17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아덱스(ADEX) 2023' 개막식에서 첫 국산 초음속 전투기 KF-21을 관람하고 있다./연합뉴스
초도물량을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결국 총 120대를 생산하면 별 문제가 없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일반적인 예상보다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초도생산 물량이 줄어들면 우선 군 전력(戰力)운용 측면에서 공군의 노후 전투기 F-4 및 F-5 100여대 교체가 2~3년 지연되고, 이는 운영 연장에 따른 비용 증가, 조종사 위험 가중 등의 문제도 초래할 것입니다.
◇ 군 노후 전투기 운영 연장, KF-21 가격 상승, 업체 경영난 등 우려
KF-21 가격(단가) 상승도 불가피한데요, 양산 대수가 줄어들면 대당 가격이 상승한다는 ‘상식’을 모르시는 분은 없겠지요. 소량발주에 따른 원가 및 재료비 상승, 정부 시설 투자 등 정부지출비용 증가로 총 사업비용이 상당히 늘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 측면에서도 생산물량 감소와 지연이 600여 개에 달하는 협력업체 등 항공산업계의 경영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데요, KF-21 개발을 이끌고 있는 KAI를 포함한 협력업체들은 이미 초도 양산 40대 기준으로 1년에 수십 대 양산에 필요한 시설, 장비, 인력을 구축한 상황입니다. 양산물량이 감소하고 추가적인 사업타당성조사에 따른 몇 년간의 양산 공백이 발생할 경우, 수조 원에 달하는 투자 비용과 기회비용 손실 발생으로 경영에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폴란드 키엘체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전시회(MSPO)에서 KAI 부스를 방문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마리우스 브와슈차크 폴란드 국방장관에게 강구영 KAI 사장이 KF-21 등을 소개하고 있다. /KAI 제공
군 안팎에선 KF-21 개발계획이 예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표적 군 국책연구기관이 ‘제동’을 건 배경에 대해 의아해하는 분위기입니다. 지난해 첫 비행을 한 KF-21은 지난달 ‘서울 ADEX 2023′ 에어쇼에도 등장해 군사 마니아들까지 놀라게 한 고기동을 선보였습니다.
◇선진국도 전투기 개발과정서 추락사고, 결함 논란 잇따라
개발 초기 단계의 전투기가 전세계가 지켜보는 에어쇼에 등장해 고기동을 선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KIDA가 문제를 제기한 ‘공대지 무장능력 미비’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게 아니라 원래 2026~2028년 개발키로 돼있기 때문에 현재 없는 게 당연한 것입니다.
전투기는 첨단기술의 복합체이기 때문에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들도 신형 전투기들을 개발할 때 많은 문제들이 발생해 개발 일정이 계획보다 지연되기 일쑤인데요, 스웨덴의 대표적 전투기 JAS 39 그리핀의 경우 개발과정에서 시제1·2호기가 조종계통 결함 및 기체 이상으로 추락했습니다.
프랑스 라팔과 유럽 4개국이 공동 개발한 유로파이터도 안보 상황 변화와 개발지연으로 개발비가 대폭 상승했고요, 현재 서방세계 스텔스 전투기의 ‘대표선수’가 된 F-35도 2006년 첫비행이 이뤄진 뒤 지금까지 무려 1000대가 생산됐지만 아직도 문제점들이 남아 있습니다. KF-21에 들이댄 KIDA의 잣대를 이들 선진국 전투기들에 적용했다면 모두 낙제점을 받았을 것입니다.
◇폴란드, UAE 등 KF-21 수출 논의에도 찬물?
더구나 KF-21에 대해 폴란드,UAE 등에서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어 윤석열 정부의 역점사업인 K-방산 수출 관련해서도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는 시점에 야당도 아닌 국책연구기관이 찬물을 끼얹는 행위를 한 데 대해 “어이 없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KIDA는 과거 여러 차례 KF-21(옛 KF-X) 사업타당성 조사 때 부정적인 평가로 일관했었기 때문에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온라인 일각에선 KF-21에 계속 부정적이었던 특정 연구원 성향과 맞물려 KF-21 관련해선 KIDA와 이 연구원이 ‘공공의 적’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차제에 이번에 문제가 된 양산 사업타당성 조사 제도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방사업 총사업비 관리지침’에 따라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의 연구개발 사업은 연구개발 사업타당성 조사를 이미 거쳤지만 양산 전에 다시 양산 사업타당성 조사를 다시 받아야 합니다.
◇ " ‘이중과세’ 인 양산 사업타당성 조사 재검토 필요”
일종의 ‘이중과세’인 셈인데요, 양산 사업타당성 조사는 8개월 수행이 원칙이지만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전력화 시기가 지연되고 업체 설비·인력 유휴화로 국방예산의 낭비를 초래하는 상황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조사 기준금액을 5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물론 대형 무기개발 및 도입사업은 언제든지 예산낭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철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감기를 불치병으로 판단해 극약 처방을 한다면 환자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신원식 국방장관도 그저께(19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하셔서 이번 논란에 대해 “기본 계획(초도양산 40대)대로 할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고 있고, 진전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국산 신형 전투기 개발로 공군 전력 증강과 국내 항공산업 발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 시작했던 KF-21 본래의 취지와 목표를 되돌아보며 합리적인 솔루션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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