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차주경 기자] 전기차 시대가 온다. 기술이 발전하고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며 전기차의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난 덕분이다. 그런데, 전기차 시대를 맞기 전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충전 문제도 그렇지만, 수명을 다한 ‘폐배터리’를 처리할 방법은 더 중요하다.
전기차의 폐배터리에는 리튬과 코발트, 망간과 니켈 등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중금속이 여러 종류 들었다. 태워 없애면 공기가, 묻으면 땅이 오염되는 만큼 폐배터리에서 중금속만 빼내 재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중금속을 재활용하면 희소 금속을 두고 다투는 나라간의 자원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선다. 전기차 판매량이 늘면 폐배터리도 늘어난다. 세계 각국이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의 연구 개발에 매진하는 이유다.
폐배터리를 가루로 만들고 화학 용매로 녹인 다음에 중금속을 추출하는 방법이 널리 쓰인다. 하지만, 이 때 만들어지는 폐수의 처리 방안이 마땅찮다. 폐수 속에도 여전히 중금속이 많이 든 까닭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폐배터리의 폐수를 골칫거리로만 본다.
정광환 그린미네랄(주) 대표 (가운데). 출처 = 그린미네랄(주)
하지만, 미세조류를 활용한 폐배터리 희소 금속 재활용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그린미네랄(주)’의 정광환 대표는 이 폐수가 자원의 보고라고 말한다.
정광환 대표는 서강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10여 년 전 그는 미세조류를 활용해 방사선을 내뿜는 물질 세슘과 스트론튬을 제거하는 기술을 연구하다가, 이 기술이 폐배터리 속 리튬의 추출과 재활용에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미세조류로 리튬을 포함한 금속 이온을 추출하는 기술은 이전에도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이 기술을 리튬 추출에 응용할 생각을 안 했어요. 리튬은 물에 아주 잘 녹는데, 물 속의 리튬 농도가 아주 높아야만 이 기술을 적용 가능했으니까요.
그린미네랄(주)이 폐배터리 리튬 추출에 쓰는 클로렐라. 출처 = 그린미네랄(주)
예를 들어 바닷물에는 리튬이 0.17 ppm 녹아 있는데, 이 정도 농도는 추출이 안 돼요. 그런데, 전기차 폐배터리나 광석을 기존 방식으로 처리한 다음 남는 폐액에는 2,000 ppm~3,000 ppm의 리튬이 들었습니다. 이 정도 고농도면 미세조류로 추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구해 보니 사실이었어요.
금속 이온을 잘 먹고 배출하는 미세조류를 찾아 세계 곳곳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것이 ‘클로렐라’에요. 클로렐라의 종류는 무려 5,000종 이상이에요. 세계 각국에 있는 클로렐라 보관 은행을 찾아 가장 효능이 좋은 것을 찾아내고, 그린미네랄(주)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로 유전자를 조작해 금속 추출을 더 잘 하는 새로운 클로렐라를 만들었습니다.”
클로렐라는 건강 식품의 원료로도 알려진 미세조류다. 그런 클로렐라가 어떻게 폐배터리에서 리튬을 추출할까? 비결은 ‘생광물화(Biomineralization)’다.
클로렐라의 생광물화 원리. 출처 = 그린미네랄(주)
해로운 금속 물질이 세포 안으로 들어오면, 미세조류가 제거하려고 밖으로 배출한다. 이것을 이산화탄소와 결합시켜 탄산염으로 만드는 현상이 생광물화다. 클로렐라가 생광물화하는 것은 금속 물질 전반이다. 즉, 그린미네랄의 기술로 폐배터리의 폐수 속 리튬 뿐만 아니라 다른 중금속도 추출 가능하다.
“생광물화로 리튬뿐만 아니라 니켈, 코발트도 추출 가능해요. 리튬을 가장 먼저 소개한 이유는 폐수에서 가장 추출하기 어려운 금속이라서 그렇습니다. 전기차 한 대분의 폐배터리를 처리하면 폐수가 약 10톤 나옵니다. 이 가운데 리튬이 28kg 이상 들었는데, 여기에 그린미네랄의 클로렐라를 2kg만 넣으면 리튬을 70% 회수 가능해요. 세계 유일한 친환경이자 경제적인 기술입니다.
저희 기술의 또 하나의 장점은, 기존 폐배터리 재활용 업계와 경쟁이 아닌 상생하는 점이에요. 지금까지 폐배터리의 폐수는 도저히 재활용할 방법이 없어서 그냥 버렸습니다. 처리 비용도 들고 환경 오염도 일으키는 아주 골치 아픈 문제였는데, 그린미네랄(주)의 기술을 활용하면 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 가능해요.”
클로렐라가 폐수 속 리튬을 추출하는 원리. 출처 = 그린미네랄(주)
그린미네랄(주)의 미세조류를 활용한 폐배터리 희소 금속 재활용 기술은 전기차 시대 뿐만 아니라 ESG 시대에도 필수 기술로 꼽힌다. 폐수에서 중금속을 추출하기에 환경 오염을 줄인다. 버려지던 자원을 재활용해 새 가치를 만들고, 리튬을 포함해 수입에 의존하던 희소 금속의 수입량도 줄인다. 무엇보다, 클로렐라는 생광물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신다. 이를 응용하면 탄소 배출량도 줄인다.
“중금속을 다루는 철강, 중공업 기업이 그린미네랄(주)의 재활용 기술에 많은 관심을 나타냅니다. 폐수 속 희소 금속을 친환경 기술로 추출해서 재활용하니까요. 게다가 이산화탄소를 마시는 클로렐라의 특성을 활용하면 탄소 배출 저감 효과까지 얻어요. ESG의 환경과 사회, 기업 운영 모두를 만족하는 기술이라 할 만합니다.”
그린미네랄(주) 연구실. 출처 = IT동아
그린미네랄(주)은 2021년 6월 문을 열었다. 법인 설립 직후 포스텍 기술지주회사의 투자를 받았고 원천 특허 세 건의 기술 이전도 마쳤다. 2022년 4월에는 TIPS(창업성장기술개발사업)에도 선정되는 등 1년 여만에 화려한 성과를 냈다. 정광환 대표는 그린미네랄(주)의 미세조류 기술력을 인정 받은 결과를 소개하면서도 파트너 기업과 기관으로 공을 돌렸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창업 경진대회에 참가하다 포스코 IMP와 만났습니다. 알고 보니 정말 좋은 지원 프로그램이더군요. 자금 지원은 기본이고 창업자가 알아야 할 회계와 세무, 법무 지식 등을 상세히 알려줬습니다. 다른 기업과의 연결, 특히 포스코 IMP 졸업 기업과의 자리를 마련해 준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최근까지도 포스코는 계열사와 만남을 주선하는 비즈 미팅을 추천했어요.
그린미네랄(주) 연구실. 출처 = IT동아
SBA도 많은 지원을 줬습니다. 초기 창업 기업을 살찌울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사무실을 제공하고, 투자 연계에 기업 홍보까지 맡아줬어요. 대기업과 창업 보육 기관이 함께 유망한 스타트업을 가꾸는 협업 사례를 꾸준히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린미네랄(주)의 올해 목표는 미세조류를 활용한 폐배터리 희소 금속 재활용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이다. 투자금을 유치하고 시설과 응용 과학 연구 인력을 확보, 희소 금속 재활용 공정의 규모를 10톤,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이 가능한 수준으로 키운다. 나아가 중공업 공장에 적용 가능한 500톤 규모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클로렐라 유전자 조작 기술과 양산 기술 연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
세계 각국 정부는 환경 오염과 자원 고갈을 막으려 폐배터리 재활용을 적극 권장한다. 실제로 유럽 연합은 배터리를 만들 때 2030년부터 4%, 2035년부터는 10%의 재활용 리튬을 사용하도록 지정한다. 정광환 대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을 겨냥한다.
폐수에서 희소 금속을 추출하는 클로렐라. 출처 = 그린미네랄(주)
“클로렐라가 리튬을 포함한 희소 금속을 잘 추출하도록 유전자 조작 기술을 개발해 특허까지 출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클로렐라를 해외의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에 공급하는 비즈니스모델도 고려 중이에요. 호주와 중국, 칠레 등 리튬 생산국과 배터리 재활용 강국인 미국 등에 진출해 저희 기술을 알리려 합니다.”
리튬에 이어 최근 가격이 급격히 비싸진 니켈을 추출할 기술도 연구 개발할 것입니다. 연구해 보니 미세조류는 리튬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니켈을 더 잘 추출하더군요. 단, 리튬과 달리 미세조류는 니켈을 흡수하면 죽어버립니다. 이 문제도 유전자 기술로 해결할 거에요. 코발트 추출 기술도 연구 중입니다. 기술로 환경 오염을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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