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인터넷이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많은 부분이 급속도로 디지털화됐다. 기기/장치 분야에서 시작된 디지털 전환은 이제 소프트웨어 분야로 확산됐고, 디지털의 편의성과 확장성은 순식간에 인류의 일상을 장악해버렸다.
너무나 잘 아는 것처럼, 디지털화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무한한 '복사 및 붙여넣기(Copy & Paste, '복붙')'다. 큰 수고 없이 사진과 문서와 같은 파일들을 무한대로 간편하게 복사할 수 있다. 게다가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이로 인해 여러 부작용도 발생했지만, '디지털=무료'라는 공식은 우리의 사고에 깊게 자리 잡았다.
당연히, 이 복붙이 허용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계약서나 주식, 채권, 적립 포인트, 그리고 돈/화폐가 그러하다. 마음대로 복사해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유가증권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후로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이 금기의 영역도 디지털화가 될 것이 자명하다. 향후 20년 안에는 대부분의 유가증권도 디지털 영역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 근거는 블록체인의 주요 혁신이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속 '이중지불(Double-spending) 문제 해결'이다.
출처=셔터스톡
오프라인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디지털 거래는 하나의 자금을 다수의 거래처에 동시에 지불을 하는 시간차 공격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데이터를 쉽게 복제하고 공유할 수 있어 데이터 원본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 금융거래에서는 이중지불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금융기관과 같은 제3자가 꼭 필요했다면, 블록체인 기술로는 중앙 운영자가 없는 디지털 분산 거래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다. 공개된 거래장부의 집합을 통해 노드(Node, 컴퓨터 참여자)가 모든 금융 정보의 원본을 확인, 관리할 수 있고, 하나의 거래가 이루어지면 그 거래 내역이 모두에게 동기화되어 검증되기 때문에 이중지불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을 이야기할 때 동시에 연상되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화폐'와 '코인', '불투명함', 그리고 '아나키즘(무정부주의)'까지...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블록체인을, 탈중앙화를 꿈꾸는 아나키즘적인 암호화폐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했다.
하지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암호화폐는 철저하게 가리는 기술이고, 블록체인은 그와 반대로 드러내는 기술이다. 블록체인의 특징은 투명성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모든 거래 기록은 투명하게 공개되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제3자에 의해 검증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 투명성에서 탈중앙화와 보안성, 확장성 확보도 가능해진다. 투명하고 명료함을 추구하는 자는 애써 가리려 하지 않는다. 화폐의 거래 정보를 가리려고 하는 걸 암호화폐라 하는데, 불투명한 특성의 이 암호화폐는 탈중앙화도, 보안성도, 확장성도 보장할 수 없다. 블록체인의 탄생 목적에 아예 맞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아주 의미 있는 이슈가 있었다. 업비트 등 국내 대다수 거래소가 라이트코인을 동시에 상장 폐지한 것이다. 라이트코인은 비트코인의 기본에서 몇 가지 수정을 거쳐 배포한 오픈 소스 블록체인 프로젝트로, 비트코인과 함께 블록체인을 대표하는 가상자산이다.
출처=해시넷
그런 비중 있는 가상자산인 라이트코인이 폐지된 이유는, 대대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사용자가 자신의 거래 내역을 공개 또는 비공개 중에서 선택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사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익명거래를 금지하는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에 관한 법률(특정금융거래정보법)'을 위반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암호화폐를 허용한 것인데, 이는 블록체인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투명성을 훼손시킨 것이다.
그동안 암호화폐 등에 대한 규제가 전무했던 우리나라는 가상자산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가상자산을 이용한 금융거래의 불투명성, 가상자산을 이용한 불법거래나 자금세탁 행위에 대한 감시와 추적을 본격화하려, 특정금융거래정보법을 만들어 2021년 12월 28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해당 규정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는 엄격한 고객알기 및 자금세탁방지 정책을 시행해야 하며 익명거래 역시 금지된다. 자칫 규제가 블록체인 산업을 저해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블록체인이 규제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사회 전반에서 블록체인을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된다. 규제가 가진 순기능이 블록체인의 정착을 돕고 있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그동안 디지털화되지 못했던 것들이 디지털화될 수 있다. 2022년의 대한민국은 블록체인의 아주 기본적인 기능을 잘 정의하고 정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웹 3.0 시대가 도래했다. 웹 3.0은 그 동안 개인 일상이나 사진 등을 공유하는 공간 정도에 불과했던 인터넷을 가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진화시켰고, 가치 있는 정보를 생산한 자들에게 그 가치를 지불하는 이른 바 '가치 인터넷 시대'를 열었다.
출처=셔터스톡
웹 3.0 시대의 핵심은 오너십(Ownership, 소유)이다. 나의 정보가 가치가 되고 그 가치를 소유한 다수의 '나'가 만나 토큰도, NFT도, 메타버스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 디지털이 아닌 진짜 '디지털경제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특별교수인 레베카 헨더슨은 자신의 저서 '자본주의의 대전환'에서, 주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주주 자본주의 시대가 끝나가고, 파이를 잘 키우고 잘 분배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임박했다고 언급했다.
파이를 키우고 잘 분배하려면, 반드시 투명성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그 역할을 블록체인이 담당할 것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블록체인은 암호화폐이고, 암호화폐는 오직 탈중앙화를 외치는 아나키즘의 상징이라는 왜곡된 정보를 강요받는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몇 개의 잘 설계된 이해관계가 모이면 눈에 보이는 건 얼마든지 왜곡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왜곡된 현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열린 마음, 열린 시선을 가진 젊은 세대들이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그 가치가 디지털 경제시대의 핵심 소스가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소스를 블록체인을 통해 투명하게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젊은 세대 말이다.
정부와 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하고, 기성세대의 역할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바른 정보에 대한 획득 의지가 서지 않는다면, 블록체인은 아나키즘이라는 왜곡된 껍데기를 뒤집어쓴 최신 유행 기술에 불과할 것이다.
파란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 온통 파란색, 빨간 선글라스라면 온통 빨간색이 된다. 하지만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기회를 투명하게 드러내놓고 있다. 잡는 사람이 임자다.
글 / 직톡 심범석 대표
미국 뉴욕에서 잉글리시 라운지와 코리아컬쳐센터를 설립해 운영했고, 현재는 약 100만 사용자를 확보한 블록체인 기반의 숏폼 비디오 플랫폼인 '직톡'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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