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이나 트레킹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아마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듯합니다. 199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총연장 800km에 이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완주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리는 긴 코스이기도 합니다.
동서트레일 47구간 개통행사
세계인이 걷고 싶어 하는 산티아고 둘레길처럼, 우리나라에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숲길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해 뜨는 동해 울진에서, 해지는 서해 태안 안면도까지 이어지는 무려 849Km의 엄청난 숲길, 바로 동서트레일입니다.
동서트레일은 단지 길이만 긴 것이 아닙니다. 국내 최초의 장거리 트레일 코스로 백패킹이 가능하고, 코스의 종점이자 시점마다 농촌과 산촌 마을이 있어 숲길 이용자들이 쉬고, 먹고, 지역의 풍부한 자연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산림청과 전국 5개 시도가 함께 힘을 모아 2026년 전체 55개 구간 개통을 목표로 열심히 길을 다지고 있습니다.
작년 55구간 개통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 구간인 47구간, 경북 봉화 호랑이길이 만들어졌습니다. 본격적인 개통을 앞두고 처음으로 동서트레일 47구간 걷기 행사가 있어 참가했습니다. 코레일 관광개발을 통해 70분이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참가했고, 따로 300분도 현지에서 개별 참가했습니다. 인기가 좋아서 바로 마감되었다고 하더군요.
지역 주민과 내외빈 등을 포함해 약 500여 명이 함께 새로 만들어진 숲길의 문을 열었습니다. 모든 구간이 개통되면 꼭 한 번 다른 구간도 걸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코스였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비가 왔지만 크게 위험하지 않게 행사에 준비된 구간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백두대간 수목원, 춘양목군락지, 주실령, 박달령을 거쳐 오전 약수터까지. 모든 길이 다 이어지는 그 날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백두대간 수목원
접수처
코스안내
코스안내
행사는 아침 9시 40분부터 시작했는데 저는 한 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습니다. 행사장은 봉화에 있는 백두대간 수목원이었는데 아시아 최대, 세계에서는 두 번째로 크다는 규모에 놀랐고, 그렇게 넓은 부지가 정말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그런 수목원이었습니다. 나중에 꼭 한 번 다시 오자고 아내와 약속했을 정도입니다. 너무 외지다는 것 하나 빼고는 정말 좋은 곳에 잘 관리된 시설이었습니다.
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모티브
트램
호랑이모티브
행사장은 백두대간 수목원에서도 제법 걸어야 합니다. 걸어서는 약 40분, 트램으로는 약 15분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저는 트램을 탔는데 호랑이역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목원 곳곳에 호랑이를 모티브로 만든 다양한 시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와도 좋을 것 같더군요. 원래 입장료나 트램 탑승비용이 있지만 아닐 행사자는 무료였습니다.
백두산 아니 시베리아호랑이
백두산호랑이
조금 더 걸으니 말로만 듣던 시베리아 호랑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모두 7마리의 호랑이를 직접 눈앞에서 보니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우리 숲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봤습니다. 너무 무서울까요? 냉정하게 생각하면 러시아에서 구매한 호랑이를 백두산 호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소방청 전시
소방청 전시
소방청 전시
행사장에 오니 평소 보기 힘들었던 산림청의 다양한 활동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목적 소방구급차도 신기했습니다. 실제로 운행하는 모습도 봤는데 일반 차가 가기 힘든 곳도 어렵지 않게 가는 모습이 든든하더군요. 물론 불 안나고 응급상황 없는 것이 더 중요하겠죠.
행사장
산림청장
경북 행정부지사
영주 국유림관리소장
산림청장님이 동서트레일의 의의를 설명해 주셨고, 경북 행정부지사님의 축사에 이어, 동서트레일 47구간 호랑이길의 공사 내용을 영주국유림관리소장님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길 자체는 작년 11월에 완공되었는데 다져지는 기간 등이 필요해 이날 개통했다고 하더군요.
경품추첨은 봉화군수님이...
개통 축하 퍼포먼스와 기념 촬영이 끝나고 봉화군수님이 오늘 구간이 지나는 봉화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첩첩 산골로만 알았던 봉화에 버섯, 은어 등 다양한 먹거리와 십승지에 속할 정도로 다양한 관광자원도 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동서트레일이 단순한 숲길이 아니라, 이렇게 한반도를 지나며 근처의 문화, 역사도 함께 느끼는 것이 바로 동서트레일의 또 다른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경품 추첨도 았었는데 봉화 특산물이었구요. 당연히 저는 땡!
출발
기존 외씨버선길 표식
도시락 및 기념품
행사가 끝나고 출발합니다. 야속하게도 출발할 때쯤부터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집니다. 도시락을 비롯해 47구간 기념 에코백, 기념배지, 스포츠타올, 등산방석 등 다양한 기념품도 준비해 주셨습니다. 제가 먹어본 가운데 가장 고소했던 한우 육포도 있었고요. 에코백이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내표식
안내표식
이제 막 만들어진 길이었지만 안내판이나 표식이 잘 되어 있어 걷기 편했습니다. 적어도 길을 걷다가 길을 잃거나 잘못 들을 염려는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길 자체가 크게 복잡한 길도 아니었구요.
부족한 화장실
통화권이탈
다만 시급히 개선할 점도 필요해 보였습니다. 벤치, 쉼터,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약 15Km 구간에 화장실 3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태가 아주 안 좋았구요. 곳곳에 통화불통지역이 많았습니다. 이런 부분은 점점 운영되면서 개선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날 비가 와서 도시락 먹을 곳이 전혀 없었는데 벤치도 너무 없었고 지붕이 있는 쉼터는 주실령 부근에 하나 있는 정도였습니다. 이제 막 문을 열었지만 이런 부분이 보완되어야 명품 숲길로 사랑 받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너무 부족했습니다. 비를 맞으며 식사하시는 분들도 있었구요.
제가 걸었던 대부분 구간은 넓고 편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져서 걷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만 먹으면 산악자전거를 타고도 갈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산림청 설명으로는 구간 대부분이 새로 만들거나, 산림을 훼손하는 것은 최소화하고, 사람과 동물들이 걸었던 길을 넓히고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의 수고 덕분에 또 다른 명품 숲길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운해
날씨가 심술을 부리기는 했지만, 비가 온 덕분(?)에 운해가 가득한 풍경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출발 고도가 약 600m 정도고 제일 높은 박달령은 1,000여 미터 정도로 대부분 높은 구간이고, 숲이 잘 우거져 있어서 더운 여름에 걸어도 생각보다는 덥지 않아 좋았습니다. 여름에는 이런 길이 참 좋습니다.
춘양목 숲길
이 구간은 호랑이길이기는 한데, 길을 걷다 보니 호랑이보다는 솔향이 가득했습니다. 알고 보니 춘양목의 원산지가 바로 이곳이더군요. 흔히 보던 소나무보다 크기도 크고, 향도 짙은 아름드리 소나무를 원 없이 보면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중간 급수처
행사를 준비해 주신 산림청을 비롯한 많은 분의 수고로 중간쯤 시원한 얼음물도 주시고 쓰레기도 회수해 주셨습니다. 다만 기왕이면 행사 취지에 맞게 쓰레기는 끝나고 개별적으로 버려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주실령
주실령과 박달재 안내
주실령 부근 안내도
5Km 구간을 신청하셨던 분들은 고도 780m 주실령 부근까지, 다른 분들은 빗속에도 백두대간 박달령까지 올랐습니다. 박달령은 해발 1,000m에 가깝지만, 워낙 평탄하고 정비가 잘 된 숲길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경상도와 강원도 사이에 있는 높은 고개인 박달령은 북쪽에 떨어진 비는 한강으로, 남쪽으로 내리는 비는 낙동강으로 흐른다고 하니 신기하죠?
다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많은 분들이 여기서 멈췄고 이 분들을 다시 수송하던 승합차가 사고로 유리창이 파손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다친 분이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오전약수터
오전약수터
물에 빠진 생쥐
47구간 종점
오전약수터 보부상
박달령부터는 내리막으로 오늘 행사의 목적지이자 47구간의 끝인 오전 약수터에 도착합니다. 유독 보부상 동상이 많아 알아보니, 이 약수를 보부상이 우연히 발견했다고 하네요. 약수를 한 번 마셔봤는데 철분이 아주 많은 약수인지 녹물 맛이 가득합니다.
2026년 완공이라는 동서트레일 코스가 모두 연결되면 많은 길동무가 이곳에서 쉬면서 추억도 쌓고 건강도 좋아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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