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우리군 감시장비에 포착, 북한 준전시태세 가나
DMZ(비무장지대) 최전방 지역 일부 부대의 북한군이 고사총으로 사격훈련을 하며 무력시위를 벌인 데 이어 평소와 달리 철모를 착용하고 총에 착검(着劒)을 한 사실이 우리 군 감시장비에 포착된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이 같은 움직임은 보통 준(準)전시상태 선포 전에 이뤄지는 것이어서 북한군이 이날 아침 사실상의 남북 군사합의 파기 선언에 이어 준전시상태 돌입 등 긴장지수를 더 끌어올릴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북한 방송이 이날 “서울 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며 위협하고 나서 장사정포를 개성 공단 지역에 배치하고, 최전방 갱도진지 안의 장사정포를 밖으로 끌어내 무력시위를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부 소식통은 “최전방 지역 북한군 일부 부대에서 2,3일전쯤부터 철모를 착용하고 총에 착검을 하는 등 특이동향이 포착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방지역 북한군은 평상시엔 철모 대신 전투모를 쓰고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군 총참모부는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연대급 부대와 화력부대를 배치하고, 군사합의에 따라 폭파했던 GP(최전방소초)를 복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전방지역에서의 훈련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하고 서해 NLL(북방한계선)과 DMZ에서 포사격 훈련 등을 재개할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최근 최전방 지역 일부 북한군은 GP안에 있던 14.5㎜ 고사총을 GP밖으로 꺼내 사격 자세를 취하며 대북 전단이 날아올 경우 사격하겠다는 시위를 벌인 징후도 포착됐다. 북한군 일부 GP에선 인공기와 최고사령관기에 평소보다 빨리 내려진 징후도 파악됐다. 한 소식통은 “인공기와 최고사령관기가 일찍 내려진 것은 강풍이 불어 깃발이 찟길 것을 우려해 취해진 조치로 보인다”고 전했다.
◇ 잠수함정 50여척 동시출항 등 2017년 긴박했던 남북 대치상황
군 당국은 지난 2015년 북한군 지뢰도발로 촉발된 북한의 준전시 상태 선포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북한군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015년8월 북한군의 목함지뢰 도발 사건 이후 남북한은 경기도 연천 지역에서 포격전을 벌였다. 북한군이 대북 심리전용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하며 76.2㎜ 곡사포와 14.5㎜ 고사총으로 추정되는 화기로 군사분계선(MDL) 남쪽으로 포탄을 발사하자 우리 군은155㎜ 자주포로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대응포격에 나섰다.
이에 김정은은 북 최전방 지역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며 군인들에게 ‘완전무장’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남북 간에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벌어지며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었다. 김정은의 지시 이후 전방지역 갱도 속에 있던 장사정포 전력을 갱도 밖으로 꺼내 ‘진지점령’ 훈련을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수도권을 위협하는 장사정포는 340여문으로 평소 갱도진지 안에 숨겨져 있다, 북 장사정포는 170㎜ 자주포 및 240㎜ 방사포(다연장로켓)로 구성돼 있는데, 시간당 최대 1만6000여발의 포탄을 수도권에 퍼부을 수 있다. 전방지역 북 포병전력은 2배 가량이나 증강됐다.
동해 원산 인근에서 스커드 미사일을, 평북 지역에서 노동미사일을 각각 발사할 움직임이 한·미 연합 감시자산에 의해 식별되기도했다. 특히 동해 신포 마양도와 서해 남포 비파곶의 북 잠수함 기지에서는 50여척의 잠수함정이 대거 기지를 이탈했다. 북한이 보유한 로미오급(1800t), 상어급(325t), 연어급(130t) 등 잠수함(정) 77척 가운데 70% 가량이 일시에 수중작전에 투입된 것이다. 이 같은 북 잠수함정의 대거 이탈은 6·25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한·미 군당국에 비상이 걸렸었다. 평안북도 철산군 기지에 있던 공기부양정 20여척도 서해 남포 해상까지 전진배치됐다. 일부 정예 특수부대 요원은 대북 확성기 방송 타격 등을 위해 전방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우리 군 GP총격사건에도 사용된 북한군 14.5mm 고사총. 최전방 북한군 일부 부대에서 사격훈련을 하는 모습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 DB
◇ 북 ’서울 불바다론’으로 주목받는 장사정포 위협
군 관계자들은 북한이 이번에도 유사한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대북 전단 살포 저지를 이유로 고사총은 물론 DMZ 밖에 있던 76.2㎜포를 DMZ 내부로 끌어들여 배치하고, 갱도진지에 있던 장사정포들을 갱도 밖으로 꺼내 포격을 할 듯이 무력시위를 할 수도 있다.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파렴치의 극치’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입 건사를 잘못하면 그에 상응해 이제는 삭막하게 잊혀가던 서울 불바다설이 다시 떠오를 수 있다”고 주장해 장사정포 위협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 불바다 위협은 지난 1994년 ‘김일성-김영삼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북한 대표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박영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그는 당시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습니다”며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말아요”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북한이 군사합의 파기 수순에 들어갔지만 국방부는 이날 원론적인 대응 차원의 성명을 발표했을 뿐 구체적인 상응조치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전동진 합참 작전부장(육군소장)이 발표한 성명을 통해 국방부는 “우리 군은 오늘 북한군 총참모부에서 그간의 남북합의들과 2018년 ‘판문점선언’ 및 ‘9·19 군사합의’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각종 군사행동계획을 비준 받겠다고 발표한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실제 행동으로 옮길 경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 군사합의 파기 조치들을 차례로 실행에 옮길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우리 군도 감시정찰 및 훈련 강화 등 상응 조치를 조속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은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고정익기는 20~40㎞, 회전익기(헬기)는 10㎞, 무인기는 10~15㎞ 내에선 비행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또 군사분계선에서 5㎞ 이내 지역에선 포사격 및 연대급 이상의 야외 기동훈련을 할 수 없다. 해병대는 군사합의에 따라 서북도서 일대에서의 해상 사격훈련이 제한됐다. 서북도서에 배치된 K-9 자주포들을 중대 단위로 배에 실어 육지로 반출해 사격훈련을 한 뒤 다시 반입하는 실정이다. 여기에 연간 약 20억원의 예산이 든다.
240mm 등 북한군 방사포 사격훈련 모습. 최전방 갱도진지의 장사정포를 외부로 꺼내 무력시위를 할 가능성도 예상되고 있다./조선일보 DB
◇ 사단급 무인기 활용 등 전방지역 정보감시 강화 필요
이에 따라 우선 최전방 지역에서의 공중감시 정찰 활동을 재개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대표적인 게 사단급 무인기다. 최전방 지역 상당수 사단에 이미 도입돼 있지만 군사합의에 따라 운용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무인기는 군사분계선에서 10㎞ 이내가 비행금지 구역인데 사단급 무인기의 탐지거리는 5㎞에 불과해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 북한의 추가도발이 임박한 상황에서 최전방 지휘관들이 북 전방부대 동향을 파악하는 데 사단급 무인기 등 우리 정찰자산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원식 미래 통합당 의원은 지난 16일 통합당 외교안보특별위원회 회의에서 “군사합의 때문에 우리 군 전선 감시가 깜깜이라 북한이 도발하면 당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미 사문화된 군사합의를 폐지하고 정상적인 감시 대비태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서북도서에 배치된 K-9 자주포들을 배에 실어 육지로 반출해 사격훈련을 하던 것도 중단하고, 최전방 지역 사격훈련도 재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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