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정연호 기자]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시장에서 승리의 결정적 한방으로 꼽히는 게 바로 ‘디자인’이다. 제품 간 성능 차이가 크지 않고, 한 업체가 가격 경쟁력 같은 절대적인 우위를 갖고 있지 않다면 디자인은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많은 기업들이 선도적인 디자인을 만들기 위한 연구에 집중하는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디자인은 물리적인 외형 외에도 스마트폰 앱 UI(메뉴 등의 인터페이스)처럼 이용자 경험을 결정하는 것을 총망라한다.
다만, “독특한 디자인만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고 디자인 전문가들은 반복해서 강조한다. 디자인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한미마이크로닉스(이하 마이크로닉스)의 가산디자인센터에서 만난 손정우 디자인 팀장은 “디자인은 예술적인 감성이 필요하지만, 논리적인 근거도 필요하다. 제품에 특정 라인, 컬러를 사용했을 때 이를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이밍 기기 등을 포함한 PC주변 기기 전문 업체인 마이크로닉스가 게이밍 기기 시장에서 결정적인 한방으로 보는 것이 ‘혁신적인 디자인’이다. 이들은 혁신적이면서, 대중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게이밍 기기를 제작하기 위해서 디자인센터를 두고 제품을 설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이크로닉스 디자인센터 손정우 팀장
“디자인 혁신을 위한 도전,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준다”
“’이 디자인은 예쁘다’라는 말만으로는 새로운 디자인을 설득할 수 없다. 미적인 요소도 고려하긴 하지만, 디자인에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감성이 들어갈 필요가 있다”
손정우 팀장이 인터뷰 동안 강조한 내용을 요약하면 위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디자인 분야에서 23년째 일하고 있는 전문가로서의 디자인 철학이 드러난다. 그는 작년 12월 마이크로닉스에 오기 전 삼성전자 무선 사업부에서 11년 동안 스마트폰과 관련된 디자인을 담당했다.
스마트폰과 게이밍 기어는 다른 영역이지만, 두 제품군에서 필수로 고려하는 요소에는 겹치는 부분이 있다. 제품 만족도를 결정하는 ‘이용자 경험’이다. 두 제품 모두 디자인을 설계할 땐 이용자 경험을 향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다만, 스마트폰과 게이밍 기어는 사용 빈도가 높은 만큼 사소한 변화도 이용자 경험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대부분의 제품들은 소비자에게 익숙한 디자인에서 벗어나기가 어렵고, 프로토타입(전형적인 예)을 상정하고 이에 맞춰 제작된다.
손 팀장이 게이밍 기어 시장을 분석하면서 느낀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가령, 게이밍 기어는 불필요한 디자인을 넣는 ‘오버 디자인’ 제품이 많았다. 그는 제품에 곡선과 과한 색감을 넣는 것이 때론 “소비자에게 전하는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두운 PC방 환경으로 인해 화려한 디자인과 색감이 보편화됐지만, 최근엔 이 시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심플 이즈 베스트(Simple is best)’라는 디자인 트렌드가 이 시장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면, 책상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도록 키보드 하우징(케이스)도 키캡에 딱 붙어서 여백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마이크로닉스의 제품도 ‘심플함’을 선호하는 트렌드에 맞춰 제작된다. 그중 하나가 곧 출시를 앞둔 몬드리안 PC케이스다. ‘디자인 유어셀프(Design Yourself)’라는 슬로건에 맞게 만든 이 제품은 다양한 컬러로 출시돼 소비자에게 여러 선택지를 준다.
손 팀장은 “기존 케이스 제품은 PC 열을 빼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검은 박스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최근 케이스 재질 등이 고급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디자인엔 큰 변화가 없었다. 몬드리안 PC케이스는 주변 가구와 잘 어울리는 인테리어의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게이밍 기어 특유의 ‘과한 화려함’이 빠진 제품이라면, 일반 이용자들에게도 시장을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 손 팀장은 “게이밍 기어와 일반 제품을 구별하는 건 고정 관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게이밍 기어들 중엔 일반 사무실에서 사용하기에 부담이 없는 제품이 많다. 또한, PC 주변기기 시장에서 게이밍 기어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그렇게 높지 않아, 게이밍 기어 업체들도 시장을 넓히는 것에 관심이 많다. 손 팀장은 “마이크로닉스는 하이브리드 제품도 출시하고 있다. 게임용으로 쓰지만 일반적으로 근무할 때도 쓸 수 있는 제품들이다”라고 설명했다.
메카 테마의 마우스 ZM2, 출처=마이크로닉스
워프 테마의 키보드 WK3, 출처=마이크로닉스
마이크로닉스가 출시한 제품 테마인 메카 (MECHA)는 로봇과 첨단 기술의 이미지, 워프 (WARP)는 SF영화의 순간이동을 연상시키는 역동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손 팀장이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제품별로 테마를 명확하게 정리했다고 한다. 다만, 제품이 여전히 게이밍 기어에 한정돼 있어, 일반 대중들도 사용하기 좋은 심플한 느낌의 맥시민(MAXIMIN) 테마를 추가했다. 주변 인테리어에 잘 녹아 드는 몬드리안 PC 케이스가 맥시민 테마의 대표적인 제품이다.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묻자 손 팀장은 “제품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반응을 말하긴 어렵다. 좋은 반응도 있고, 제품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이 오고 있다”면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게이밍 기어의 디자인과 개발을 하는 기업이며,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이를 통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고 답했다.
제품 설계 과정에서 긴밀한 협업을 할 수 있도록 마이크로닉스의 디자인팀과 개발팀은 같은 사무실을 이용하고 있다. 손 팀장은 “일반적으로 개발팀과 디자인팀이 멀리 떨어진 경우가 많지만, 마이크로닉스에선 디자인과 개발팀이 긴밀하고 신속하게 함께 일을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도 가용할 수 있는 기술 내에서 혁신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디자인이 혁신을 먼저 선도할 수 있도록 많은 제안을 하고 있다. 올해까지 헤드셋, 마우스, 키보드 총 10개의 신규 디자인이 완성됐고 앞으로 개발이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디자인센터는 가산디지털단지와 필리핀으로 이원화돼 있다.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필리핀을 선정했다고 한다. 기존에 필리핀에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 먼저 진출했다. 손 팀장은 “필리핀에는 한국과는 다른 감성이 있어서 이를 제품 디자인에 녹이면 차별화된 제품을 만드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각각의 디자인센터에서 나온 디자인은 해당 지역에 특화된 제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필리핀 센터의 디자인이 국내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손 팀장은 “해외 영업팀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심한 상황에서도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가 계속 성장을 하고 있다. 또, 이쪽은 연령층이 젊다 보니 경제 성장의 동력이 충분하고, 게이밍 기어가 확장될 여지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센터가 추구할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게이밍 시장에서 경계를 더 넓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이밍 유저뿐 아니라 일반 이용자도 함께 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디자인의 테마를 다양하게 만드는 이유도 소비자에게 여러 선택지를 주기 위해서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화면 옆이 곡선 형태인 엣지 디자인이 나오기 전, 이를 기술적으로 구현하기가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디자인에 많은 투자를 했고, 덕분에 엣지 제품도 등장했다. 아이폰의 경우엔 CMF(색상, 소재, 마감) 프로세스가 뛰어나다. 아이폰이 처음으로 제품 커버를 만들 때 메탈과 유리를 사용했다. 그 뒤로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이를 따라갔다. 게이밍 기어 시장에서도 이처럼 디자인이 선도하는 혁신을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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