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x SBA] IT동아는 서울경제진흥원(SBA)과 함께 ‘2024년 스케일업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서울창업허브 오픈이노베이션 참여기업 중 유망한 스타트업을 선정, 인터뷰로 발전사와 성과를 소개합니다. 나아가 이들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IT동아 권택경 기자] 나무가 건강히 오래 자라기 위해선 뿌리가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 치아를 대체하는 임플란트도 마찬가지다. 임플란트의 뿌리 역할을 하는 고정체(Fixture)는 거친 표면을 지닐수록 잇몸뼈에 더 잘 자리 잡는 특성이 있다. 특수한 표면 처리 과정을 거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흠집을 고정체에 새기는 이유다.
현재 국내 치과용 임플란트 시장에서는 대부분 SLA(Sand blasted, Large grit, Acid-etched)라는 표면 처리 기법을 쓴 고정체를 쓴다. 산화알루미늄 소재 연마재를 분사한 뒤 강산으로 화학 처리를 하는 방식이다. 유독한 강산을 쓰다 보니 이를 세척하기 위해 수십 단계에 달하는 길고 복잡한 과정도 거친다.
정보수 비투랩 대표 / 출처=IT동아
의료기기 스타트업인 비투랩(B2LAB)은 이처럼 길고 복잡한 임플란트 고정체 표면 처리 과정을 펨토초 레이저로 효율화한다. 펨토초는 1000조분의 1초에 달하는 아주 짧은 시간을 의미한다. 이 찰나의 시간만큼 짧은 파장(Pulse)을 지닌 펨토초 레이저를 쏘면 물체를 입자 단위로 분해할 수 있는데, 이를 활용해 임플란트 고정체의 표면을 빠르고 정교하게 가공하는 게 비투랩의 기술이다.
2021년 비투랩을 창업한 정보수 대표와 이병학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포스텍 석사 시절부터 함께 지낸 단짝과도 같은 사이다. 각각 의료공학과 광학, 기계공학을 전공한 두 사람은 한국전기연구원에서 광기술을 산업화할 수 있는 응용 분야를 고민하다 치과 임플란트에 주목했다.
정보수 대표는 “기존 표면 처리 기법은 강산이 남을 위험성, 복잡한 중화 과정, 이로 인해 발생하는 폐기물 등의 단점이 있다. 펨토초 레이저를 활용하면 강산을 쓸 필요가 없으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펨토초 레이저로 표면 처리한 비투랩의 임플란트 고정체 / 출처=비투랩
레이저를 활용해 표면 처리를 하는 기술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상용화되지 못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정보수 대표는 “기존 논문에 연구된 방법으로 레이저 표면 처리를 시도해 봤더니 작은 고정체 하나를 가공하는 데 4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이 사실을 확인한 비투랩은 생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그 결과 네 시간이나 걸리던 가공 시간을 불과 5초로 단축하는 데 성공했다.
짧은 가공 시간 외에도 비투랩의 기술에는 장점이 많다. 강산을 안 쓰니 생산 공정이 단순하고, 연마재나 강산 구매 비용과 처리 비용 또한 아낄 수 있다. 레이저를 쏘는 데 필요한 전기만 있으면 된다.
순수 티타늄보다 더 튼튼한 티타늄 합금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기존 방법으로는 단단한 티타늄 합금에 표면 처리를 하기는 어려웠지만, 레이저 표면 처리로는 가능한 까닭이다. 물론 임플란트와 잇몸뼈가 결합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골 유착 비율도 기존 표면 처리법에 뒤지지 않는다.
뿌리를 잘 뻗은 나무가 튼튼하듯, 임플란트도 고정체의 표면 처리를 통해 골 유착이 잘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출처=비투랩
비투랩의 레이저 표면 처리 임플란트 고정체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의료기기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최근에는 건강보헙급여 대상으로도 신설됐다. 정보수 대표는 “건강보험급여 대상 분류에 치과 임플란트 고정체의 표면 처리 방법까지도 나뉘어져 있는데, 이번에 우리 제품을 계기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레이저 표면 처리 분류를 신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이저 표면 처리 기술에 대한 국내 특허 등록도 마쳤다. 해외 11개 국가에서도 현재 특허 출원을 진행 중이다. 비투랩을 시작한 이후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에서 박사 과정까지 밟으며 연구개발에 매진한 정보수 대표의 노력이 빛을 본 셈이다.
뛰어난 기술과 제품, 식약처 허가와 급여 대상 신설이라는 선결 조건은 모두 갖췄지만 본격적인 시장 공략을 위해서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았다. 병원을 대상으로 영업을 펼쳐야 하는 의료기기 시장 특유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는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투랩은 국내 한 의료기기 업체와 손을 잡았다. 영업망은 갖췄으나 치과 시장을 공략할 제품이 필요한 업체와 서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는 전략이다.
이병학 비투랩 CTO / 출처=IT동아
국내 시장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해외 신흥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비투랩의 제품은 올해 2월 두바이 의료기기 전시회에서 유럽 바이어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환경 문제에 민감한 해외 시장에서는 비투랩의 장점, 강산을 쓰지 않고 폐기물도 많이 줄이는 친환경 특성을 주목한다. 다만 시장 선점을 위해 강한 규제로 인해 허가 절차가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유럽보다는 동남아와 중동 등 빠른 접근이 가능한 시장을 우선 공략할 계획이다.
비투랩은 나아가 펨토초 레이저 표면 처리 기술을 치과 외 영역으로도 확장한다. 정형외과용 임플란트 분야에서도 비투랩의 기술은 활용도가 높다. 정보수 대표는 “정형외과용 임플란트는 필요에 따라 특정 부분에만 골 유착이 일어나도록 표면 처리를 해야하는데, 기존 화학 표면 처리 기법으로는 마스킹 작업과 같은 별도의 공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레이저를 활용하면 원하는 위치에만 손쉽게 표면 처리를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21년 포스텍홀딩스는 비투랩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시드 투자를 진행했다. 서울경제진흥원(SBA) 또한 비투랩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한다. SBA가 공덕에 마련한 서울창업허브에 입주기업을 하며 시작된 인연이 지금의 스케일업 프로그램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외에도 SBA의 다양한 홍보 지원 프로그램은 비투랩의 기술을 국내 치의학계와 대중들에게 알리는 데 보탬이 됐다.
정보수 비투랩 대표 / 출처=IT동아
비투랩은 앞으로는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레이저 표면 처리 임플란트 고정체’를 널리 알리는 데 집중한다. 정보수 대표는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레이저 표면 처리 임플란트가 치과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완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치과용 임플란트 외에도 정형외과용 임플란트처럼 펨토초 레이저를 활용한 표면 처리 기술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분야는 많다.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이 되는 제품을 개발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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