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권택경 기자] 우리가 먹는 쌀밥은 벼의 알갱이다. 백미든 현미든 벼 낟알을 쌀로 만들려면 일단 겉껍질을 벗겨내야 한다. 이 겉껍질이 ‘왕겨’다. 도정 과정에서 나오는 농업부산물이다. 연간 80만 톤 정도가 발생한다. 축사 깔개, 사료, 퇴비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뭉쳐서 펠릿으로 만들면 태워서 에너지로 쓸 수 있는 고체 연료가 된다. 타고 남은 재는 규소 함량이 92% 이상이므로 비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왕겨 펠릿은 ‘저질 연료’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목재 펠릿보다 저렴하기도 하고, 기존 연소로에 그대로 사용하면 효율이 떨어지는 데다 타고 난 뒤 눌어붙는 특성 때문에 기계 고장을 유발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케이파워는 왕겨를 비롯한 농업부산물을 효율적으로 태울 수 있는 산업용 연소로를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케이파워 김지훈 부사장은 “이런 기술력을 지닌 기업은 드뭅니다. 첨단 기술은 아니지만, 쉽지 않습니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왕겨 펠릿으로도 기존 화석연료 보일러와 동등한 수준의 효율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케이파워 김지훈 부사장
케이파워의 목표는 이 연소로를 이용해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는 연료를 친환경 연료로 전환하는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나 지금이나 증기는 산업 현장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열매체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기 위해선 물을 데워 만든 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제조 현장에서 열처리가 필요할 때도 직접 불을 댈 수 없는 한 증기를 쓴다. 하지만 물을 데울 때 쓰는 연료도 여전히 화석 연료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친환경 전환이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지만 아직도 많은 업장에서는 비용이나 효율 문제로 전환을 꺼린다.
케이파워는 친환경 연소로를 활용한 보일러를 단순히 판매하는 대신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받는 모델로 초기 도입 비용 부담을 낮췄다. 이른바 ‘바이오매스 스팀 구독 서비스’다. 보증금을 받고 보일러를 설치해준 뒤 사용량에 따라 월 2회 요금을 받는 식이다. 필요한 연료 공급부터 보일러 운전, 유지 및 보수까지 케이파워에서 제공하는 토탈 서비스 모델이다.
케이파워의 수익 모델의 또 다른 축을 차지하는 건 탄소배출권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에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시행할 경우 감축분을 인정해 온실가스 배출 권리인 탄소배출권을 발급해주고 있다. 이를 청정개발체제(CDM, Clean Development Mechanism)라고 한다.
케이파워의 바이오매스 스팀 보일러가 적용된 현장. 출처=케이파워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케이파워는 지난해 11월 CDM 등록을 마쳤다. 10t(톤) 보일러 기준으로 연간 1만 2천t에 해당하는 탄소배출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현재 국내에서 탄소배출권은 1톤당 3만 원 내외로 거래되고 있다. 이 시세를 적용하면 보일러 한 대당 연간 약 3억 6천만 원의 부가수입이 CDM 유효 기간이 끝나는 10년 동안 발생한다는 뜻이다.
케이파워가 처음부터 해외 시장이나 CDM 사업을 염두에 두고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2017년 처음 왕겨 연소로를 가지고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여러 난관에 부딪혔다. 먼저 연소로 크기가 한계로 작용했다. 고체연료를 태우는 연소로는 특성상 액체연료를 쓰는 연소로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당시만 해도 친환경 에너지 전환 요구가 지금만큼 크지 않았다. 굳이 공간을 더 차지하는 연소로를 도입할 필요를 크게 못 느끼는 사업주가 많았다. 기존 고체연료 업체들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도 왕겨를 ‘폐기물’로 분류하는 법이 걸림돌이었다. 왕겨는 환경오염 우려가 적은 데다 여러 분야에서 두루두루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과 맞지 않는 법이었다. 다행히 꾸준한 문제 제기가 이뤄진 덕분에 지금은 순환 자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됐다.
벼의 겉껍질인
그사이 케이파워는 국내 사업을 접고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사업 기반과 수익 모델을 더 단단하게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케이파워가 안착한 베트남은 세계 5위 쌀 생산국이다. 우리나라의 8배가 넘는 쌀이 생산된다. 그만큼 왕겨도 더 많이 발생한다. 연료 원재료를 더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김지훈 부사장은 “연간 100대씩 5년 동안 500대를 설치해서 운영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기술도 사업 모델도 완성됐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바로 자금 문제다. 케이파워의 10t 보일러 한 대 제조원가는 5억 원이다. 연간 100대를 공급하려면 단순하게 계산했을 때 제조 비용으로 이미 500억 원이 든다. 빠르게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수익 모델을 짰다고는 하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면 거액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초기 스타트업이 유치하기는 쉽지 않은 규모다.
다행인 점은 케이파워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는 곳도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서울창업허브와 에쓰오일의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인 ‘S-OIL × Seoul 스타트업 오픈 이노베이션’에 선발되며 대기업과의 협업 기회를 얻기도 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케이파워를 눈여겨 보고 먼저 연락해 관심을 보였다. 규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여러 모로 도움을 주며 케이파워가 국내 시장에 다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국내 서비스는 올해 상반기 런칭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케이파워 김지훈 부사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연구개발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새로운 연료 개발이다. 케이파워의 연소로는 까다로운 왕겨 펠릿을 효율적으로 태울 수 있는 만큼, 다른 바이오매스 연료도 문제없이 소화할 수 있다. 커피열매 껍질, 코코넛 껍질 등 후보군이 될 수 있는 농업부산물을 무궁무진하다. 케이파워가 최근 주목하고 있는 건 케나프(Kenaf)다. 일반 수목보다 최고 5배 이상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어 키우기만 해도 환경정화 효과가 있는 데다 활용 가치도 높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셀룰로스 함량도 높다. 목질화된 부분은 펠릿으로 만들어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케이파워는 향후 새로운 수익 모델 중 하나로 NFT 기반 탄소배출권 마켓도 구상하고 있다. 탄소배출권을 NFT화 해 개인, 기업, 국가를 막론하고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장터다. 케이파워가 CDM 사업을 하며 확보한 실물 탄소배출권 기반으로 NFT를 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구현되는 건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현재 이미 이를 위한 기술 개발을 시작했으며 관련 특허도 4건 출원했다.
김지훈 부사장은 케이파워가 유니콘으로 거듭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기업이라고 자신하며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기를 당부했다. “저희는 지금 짐이 너무 무거워서 출발을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출발만 할 수 있다면 저희는 정말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뒤에서 누가 툭 쳐주거나, 앞에서 살짝 손만 끌어주기만 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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