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지난 6월24일 한국군사학회 주최 세미나에서 북핵 대책 등과 관련해 세가지 안보 과제를 제시했다. 사진은 천 이사장의 2019년 모습. /김지호 기자
최근 북한 전술핵탄두 미사일의 실전배치가 가시화함에 따라 독자 핵무장 등 다양한 대책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요, 오늘은 기존 주류 견해와는 일부 결이 다른 주장이 전직 청와대 외교안보 고위 관계자로부터 제기돼 소개를 하려 합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외교안보 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신데요, 천 이사장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북핵 대책 등과 관련해 흥미로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 “대북 핵 억제가 항상 작동할 것으로 믿는다면 큰일 날 오판이고 착각”
천 이사장은 지난 24일 한국군사학회와 합동군사대학교 공동 주최로 열린 ‘2020 국제 안보환경 평가와 한국의 선택 전략’ 세미나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국방담론을 바로잡기 위해 군사학회 등이 고민해야 할 숙제를 몇개 제시해 보겠다”며 세가지 과제를 제시했는데요, ①독자 핵무장과 전술핵 재배치 등 북핵 대책 실효성 ②북한 급변사태시 안정화 능력 확보 문제 ③ 올바른 안보전략의 출발점으로서 위협인식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 등입니다.
천 이사장은 우선 “핵무장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떻게 지킬 것이냐가 무엇보다 엄중한 숙제”라며 기조연설의 대부분을 첫번째 과제에 할애했는데요, 그는 북핵 대책으로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 등에 매달리고 있는데 실패할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천 이사장은 정부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쓰고 있는 ‘억제’라는 표현 대신 ‘억지’라는 용어를 고집하셨는데요, “전술핵으로 무장한 북한을 핵으로 억지할 수 있다고 믿고 미국의 확장억지 강화에 매달리고 있는데, 대북 억지가 실패할 상황에 대한 연구와 고민은 모자라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북한 열병식에 등장한 KN-23 ‘북한판 이스칸데르’ 개량형 미사일. 전술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그는 “한미동맹과 미국의 확장억지 공약이 북한의 핵 사용을 억지할 최선의 수단은 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핵을 통한 대북 억지가 모든 상황에서 항상 작동할 것으로 믿는다면 이는 큰일 날 오판이고 착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천 이사장은 “북한이 다른 핵 무장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억지가 실패할 개연성”이라고 했는데요, 그 근거로 북한 김정은 체제가 양민을 대량으로 학살해야 연명이 가능한 벼랑 끝으로 몰릴 경우 핵을 함부로 쓸 수 없는 민주주의 국가와는 달리 김정은이 핵 사용을 강행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 “독자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는 사후약방문에 중복 과잉투자하는 것”
그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핵을 사용해서 외부의 군사개입을 막고 정권을 하루라도 더 연장할 수 있다면 왜 핵을 사용하지 않겠나?”라며 “김정은에게 외부의 군사개입을 막는 것이 미국의 핵 응징보복을 걱정하는 것보다 더 절박한 상황이 되면 대북 억지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선 ‘미국이 과연 서울을 구하기 위해 LA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적지 않게 제기되며 독자 핵무장이나 미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요, 천 이사장은 이에 대해서도 색다른 주장을 폈습니다. 그는 “독자 핵무장,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이미 과잉 상태인 사후약방문에 중복과잉 투자하자는 것”이라면서 “우리 대통령이 응징 보복하지 말아달라고 매달려도 미국은 반드시 (핵 응징보복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북한의 핵공격에 대해 핵으로 응징보복하지 않은 선례를 남기면 미국의 모든 확장억지 공약은 휴지 조각이 되고, 동맹체제는 다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천 이사장은 실효성이 있는 북핵 억지 대책으로 비핵 탄도미사일 등 비핵 정밀유도무기, 농축·재처리 기술 확보를 통한 핵무장 잠재력(선택권) 확보 등을 제시했는데요, 그는 지난 4월 발간한 책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에서 “미국의 북핵 억지가 실패할 때 우리 핵무기로 억제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 등을 ‘핵무장에 대한 여섯가지 착각과 미신’으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든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핵무장 선택권의 확보는 저도 10여년 전부터 계속 주장해왔던 사안이지요.
◇ “북 급변사태 대비 전력구조 갖추고 훈련 소홀히 하지 말아야”
두번째 화두는 북한 급변사태 문제인데요, 그는 “북 급변사태가 발생했을 때 군이 허둥지둥하다 북한 안정화가 지지부진해지면 손에 들어온 통일의 기회를 놓치고, 후대에 천추의 한을 남길 수 있다”며 “지금부터 이에 대비한 전력구조와 태세를 갖추고 교육훈련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 위협인식의 오류 문제는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안보 문제라 할 수 있겠는데요, 대한민국의 생존과 안전에 대한 위협이 어디서 오느냐에 대한 인식이 바로 위협인식인데 이게 고장 나면 적과 동지를 혼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위험하고 급박한 실존적 위협은 핵 무장한 북한에서 온다는 데는 이론이 없지만 한반도 밖에서의 위협은 항상 역내의 패권세력에서 왔다는 역사적 교훈과 그 이치를 망각하면 안된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지금 역내 패권국가는 중국으로, 20세기 초 우리의 자주독립에 대한 위협이 일본에서 온 것과 똑같은 이치로 현재와 미래의 위협은 신흥 패권세력인 중국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천 이사장은 “그럼에도 과거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미래의 위협이 일본에서 온다고 착각하면 허깨비를 쫓다가 진짜 위협을 방치하고 키우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현재와 미래 위협은 신흥 패권세력인 중국에서 오는 것”
천 이사장은 기조연설을 마무리하며 자신의 주장을 ‘소수설’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이날 제시된 세가지 화두 중 2~3번 화두에 대해선 이론이 많지 않겠지만 첫번째 북핵 대책 관련 화두가 가장 흥미롭고 논쟁적인 것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도 그의 주장에 적극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우리 모두가 곰곰히 생각하고 고민해야할 중요한 화두가 던져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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