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메카=류종화 기자] 최근 새삼 회자되는 오래된 모바일게임이 하나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대만 모바일 리듬게임 ‘디모(Deemo)’. 2013년에 출시된 이 게임이 요즘 계속 언급되는 이유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작 소식 때문이다. 모바일 리듬게임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다니, 확실히 이례적이다.
디모는 발매 당시에도 서정적인 분위기의 플롯을 내세운 스토리라인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은 게임이다. 리듬게임 치고는 특이하게도 스토리를 강점으로 세웠는데, 실제로 스토리를 보강한 콘솔 이식 버전은 물론 소설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디모는 과연 어떤 내용이길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되는 걸까? 스토리와 후속작 현황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그림자 인간은 왜 피아노를 치는가? 숨겨진 진상을 밝혀라
디모는 피아노 선율과 함께 상단에서 떨어지는 노트를 리듬에 맞춰 터치하는 전형적인 리듬게임이다. 디모를 만든 회사인 레이아크(Rayark)는 인지도가 아주 높은 회사는 아니었으나, 과거에 사이터스(Cytus) 등을 비롯한 리듬게임을 제작해 나름의 팬층을 두고 있던 중견 개발업체다.
보통 리듬게임은 플롯을 내세우는 일이 많지 않다. 근래에 큰 인기를 끈 아이돌 리듬게임 역시 귀여운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울 뿐, 밀도 있는 플롯을 중심에 두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2013년 도쿄게임쇼에서 처음 공개된 디모는 특이하게도 동화적 스토리를 리듬게임과 조합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실제로 디모는 같은 해 출시 당시 한동안 매출 면에서 순항했는데, 그 이유로 독특한 분위기의 플롯이 꼽혔다.
게임은 음침한 유적 같은 곳에 홀로 살고 있는 기묘한 존재 ‘디모’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디모는 인간의 실루엣을 띄고는 있으나, 자세히 보면 비인간적으로 긴 팔다리에 온몸이 그림자로 이루어진 존재다. 언뜻 보면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보인다. 이렇듯 기괴한 모습을 한 디모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고독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게임 시작과 함께 큰 변화가 생긴다. 한 소녀가 나타난 것이다.
이 소녀는 황당하게도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디모가 급히 받아낸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지만, 소녀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을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기괴한 외모와는 달리 선량한 마음씨를 갖고 있던 디모는 소녀를 집으로 돌아가게 도와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던 중 디모는 소녀가 나타난 다음 유적의 나무에 새싹이 돋아난 것과, 피아노를 연주해주면 나무가 더욱 빨리 자라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디모는 자신이 피아노를 연주해 나무를 키우고, 이를 발판삼아 소녀를 다시 하늘로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디모는 점점 나무를 키워 나간다. 그러나 나무가 성장하면서 어디선가 귀신처럼 반투명한 모습의 가면 쓴 여자가 나타나고, 이 정체불명의 존재는 나무를 키워 소녀를 집으로 보내주겠다는 디모의 포부를 비웃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는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여러 요소를 음악으로 해결하며, 종국에는 소녀를 집에 보내주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게임이 진행되며 플레이어는 이 공간이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실은 소녀의 정신과 연결된 곳임을 깨닫게 된다. 나무가 자랄수록 처음에는 잠겨 있던 공간이 열리고 이름 모를 소녀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게 해주는 단서가 하나 둘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플레이어 또한 게임을 하면서 차츰 이 동화 같은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소녀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지 점점 궁금증을 키워 나가고 몰입하게 된다.
게임 디모는 다소 모호한 결말을 보여준다. 결론만 말하면 사실 디모와 소녀는 본래 남매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매였던 둘은 함께 길을 건너던 중 트럭에 치이는데, 오빠가 동생을 감싼 덕에 오빠만 죽고 동생은 크게 다치는 선에서 살아남는다. 그러나 오빠가 죽었다는 사실에 동생은 큰 상실감에 빠졌고, 의식이 아직 온전치 않은 가운데 생사의 기로에 놓인다.
게임 내에서 등장하는 가면 쓴 여자는 사실 소녀의 또 다른 자아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융이 이야기한 자아의 억눌린 무의식적 측면 ‘그림자’에 가깝다. 가면 쓴 여자는 오빠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죽음이나 코마 상태를 불사하는 자아로, 나무의 성장을 조롱하거나 방해하는 이유도 오빠 디모와 결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 중반부터 소녀와 가면 쓴 여자가 동일인임은 체구나 대사의 유사성을 통해 계속 암시된다.
결국 게임 디모의 스토리는 삶의 의지를 버리면서까지 오빠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던 한 소녀의 미련이 몽환적인 환상 속에서 차츰 해소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게임 끝에 소녀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가면 쓴 여자와 화해하고 디모의 세계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디모의 세계는 소녀의 미련이었기에, 소녀가 떠나며 그들이 함께 나무를 키웠던 공간과 디모는 산산조각나 사라지고 만다. 이후 소녀는 모든 것을 기억한 채로 병원에서 깨어난다.
이렇듯 게임 디모는 단순한 스토리지만, 신비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의 아트와 피아노 연주 속에서 슬픈 기억과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는다는 서사의 플롯을 갖췄다. 덕분에 디모는 많은 게이머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팬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디모는 약간의 스토리가 추가된 PS 비타 및 닌텐도 스위치 버전을 출시했으며, 2019년에는 3D로 제작된 ‘디모 리본(Deemo -Reborn-)’이 PS4로 출시됐고, 최근에는 PC 버전이 스팀으로 나오기도 했다.
모바일 리듬게임이 트랜스미디어도? 소설과 애니메이션도 나오는 디모
디모는 스토리를 중시한 게임이지만, 기억을 잃은 소녀가 몽환적인 상징들 속에서 자신을 되찾아간다는 몽환적인 플롯 때문에 스토리를 정확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많은 내용은 게임을 여러 번 플레이 하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된다. 작중 소녀의 자아 중 일부는 끝내 오빠를 포기하지 못해 스스로 현실을 마주할 의지를 잃은 가면 쓴 여자가 되어버렸고, 이후 다른 자아가 다시 떠오른다. 게임은 이러한 사정을 소위 다회차 플레이를 통해 조금씩 해금하며 전달한다.
실제로 디모는 반복적으로 플레이 할 때마다 디모와 소녀의 정체에 대한 숨겨진 스토리가 드러나고, 일부 피아노 곡이 바뀐다. 즉, 게임을 여러 번 클리어 하기 전에는 이 게임의 스토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게임을 충분히 많이 클리어하지 않았다면 스토리 이해 측면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에 제작사 레이아크는 게임 스토리에 대한 이해를 돕고 게임 내에서 미처 다루지 못 한 내용을 보강하기 위해 소설책 ‘디모 라스트 드림(Deemo -Last Dream-)’을 냈다. 소설은 크게 세 장으로 나뉜다. 이 중 하나는 게임 스토리를 소설로 옮긴 장이다. 여기서는 모바일 리듬게임 특성 상 세밀하게 다룰 수 없었던 각 인물의 심리묘사나 상황에 대한 반응을 보다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머지 두 장은 게임 내에서 다루지 않았던 내용이다. 하나는 디모와 소녀 남매가 실제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이었고, 왜 그토록 서로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과거 내용이다. 둘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양친을 잃었고, 오빠 디모는 사랑하던 여자에게 매몰찬 거절을 당한 이후 동생을 더욱 아끼게 되었다는 등의 이야기다. 그러나 디모와 소녀의 이야기 플롯 상 아무 관계도 없는 양친과 보모 분량이 너무 시시콜콜하고 길게 나와 중요도는 다소 낮다는 지적이다.
마지막 장은 미래 이야기다. 마지막에 소녀는 오빠의 죽음을 부정하던 또 다른 자아와 화해하고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이로써 소녀는 코마 상태에서 깨어나고, 무의식 세계에서 디모와 함께 했던 모든 기억을 잊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 무의식 깊은 곳에는 디모에 대한 기억이 잔존했고, 소녀는 이후 피아니스트가 되어 모바일 리듬게임도 만들고 음악회 공연도 하게 된다. 게임으로는 알 수 없던 소녀의 후일담을 전해 여운을 연장한 셈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영상화 작업도 막바지에 다다른 모습이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디모 더 무비(Deemo/the Movie)’가 제작 중이기 때문이다. 일본 영상물 제작업체가 만드는 이 애니메이션은 소설판과 마찬가지로 게임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되, 원작 게임에는 없던 독자적인 스토리를 더한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2019년 제작 소식이 발표돼 2020년 완성을 목표 삼았으나, 실제 개봉은 다소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트랜스미디어 디모는 게임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더하는 방향성으로 제작 중이다. 원작 게임에서 미흡했던 플롯상 연결고리들을 보강한 셈이다. 그러나 소설 2장이 원작과 너무 동떨어진 내용으로 서사 밀도를 낮춘 전례가 있기에, 앞으로 개봉될 디모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가는 조금 두고 볼 필요가 있겠다. 현재 ‘디모 더 무비’의 개봉일은 미정이며, 2020년 11월 13일 2차 예고편이 공개된 상황이다.
그리고 공개된 디모 2, 내용은 전작과 어떤 관계냐?
제작사인 레이아크는 디모 트랜스미디어 뿐 아니라, 본업인 게임 개발도 충실히 진행 중이다. 그들은 2019년 말 ‘디모 2’ 제작 소식을 발표했는데, PS 비타 버전을 제작한 레이아크 내부 스튜디오 제트젠(Jetgen)이 개발 중이며 현재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에서 사전 등록을 진행 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발매 시기가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몇 개의 트레일러만으로도 게임 분위기를 대강 알 수 있다.
디모 2는 이번에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녀를 비인간적 존재가 받으며 시작한다. 나름 사연이 있어 도피하던 소녀가 이 정체불명의 존재와 유대를 맺으며 회복하고 성장한다는 서사는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상세 내용은 전작과 상당히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소녀의 생김새도 전작의 소녀와 상당한 차이가 있는 데다, 전작 디모에 해당하는 존재도 몸이 그림자가 아니라 물로 이루어진 모습이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인물로 보이는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배경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전작의 무대는 나무 속에 지어진 탑 내지는 저택을 연상시키는 장소였다. 소설에 드러난 설정에 따르면 그 이유는 디모의 세계가 본질적으로 소녀의 꿈에서 기인하며, 소녀가 오빠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집의 이미지가 투사됐기 때문이었다. 반면 디모 2의 배경은 비가 쏟아지는 기차역을 연상시킨다. 또한 피아노도 피아니스트였던 오빠가 쓴 전작의 것과 달리 역사에 설치된 오르간 같은 모습인데, 이 또한 큰 분위기 차이를 보여준다.
특이한 점은 소녀의 상황이다. 전작에서는 외딴 공간에서 홀로 연주하는 디모 시점으로 게임이 시작됐다. 소녀는 느닷없이 하늘에서 추락했고, 게임은 소녀의 정체와 떨어진 이유를 알아내는 데 스토리텔링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공개된 디모 2 홍보 영상에 따르면, 이번 소녀는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다 방독면을 쓴 정체불명 괴한들을 피해 건물에서 추락하고, 죽기 직전에 거대한 물방울 모습의 존재에게 구조받는다.
이러한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디모 2는 전작처럼 현실세계와 소녀의 꿈 사이에 걸친 이야기를 다루지만, 전작보다 현실세계에서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루어 질 듯하다. 전작이 자못 단순할 수 있었던 스토리를 소녀 내면의 심리와 엮어 서정적 플롯으로 완성시켰다면, 디모 2는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비중과 스릴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모바일 리듬게임과 서정적인 플롯의 스토리라인을 결합시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게임 디모. 전작과 같이 후속작도 게임이 나오고 나서야 반복 플레이를 통해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전작과 어떤 부분에서 이어지는 내용일 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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