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고지전’에서 한 국군 장교가 물밀듯이 몰려오는 북한군(인민군)을 보고 절규하듯 한 말이다. 이처럼 수많은 병력을 투입해 전투하는 ‘인해(人海)전술’은 6·25전쟁 때 중공군을 상징하는 말처럼 됐다. 영화나 책에서 중공군은 유엔군의 몇 배에서 몇 십 배에 달하는 병력을 투입해 무기에서 앞섰던 유엔군을 공포에 몰아넣은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군 전사 자료에 따르면, 6·25전쟁 때 북한군·중공군과 한미 양국군 등 유엔군 총병력은 가장 격차가 크게 벌어졌을 때에도 1.9대1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즉 북한군과 중공군 총병력이 유엔군의 두 배를 넘지 않았다는 얘기다. 중공군과 북한군은 특정 지역, 특정 전투에 병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유엔군의 몇 배에 달하는 수적 우세를 달성했던 것이다.
각종 첨단 무기의 비중이 커졌지만 현대전에서도 지상전의 경우 이런 수적 우세를 무시할 수 없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산이 많은 한반도는 더욱 그렇다.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리 육군은 42만명, 북한 지상군은 110만명이다. 북한군이 2.6배 수적 우위에 있는 셈이다. 우리 육군은 인구 절벽에 따른 병력 감축 계획으로 내년까지 36만5000명으로 줄어든다. 북한군 상당수가 각종 건설 현장에 투입돼 실제 운용 병력이 70만~80만명으로 줄어든다 해도 2배가량의 우세는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유사시 북한은 공격자 입장에서 주도권을 갖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선 한국군보다 5~10배의 병력 우세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인구 절벽에 따른 병력 감축 태풍이 내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2030년대 말 이후엔 쓰나미급으로 몰려온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병력 50만명(2022년 기준)을 유지할 경우 2026년엔 2만9000여 명, 2028년엔 1만2000여 명가량의 병역 자원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부족 사태는 2030년대 중반 이후 심화해 2037년엔 부족한 병역 자원이 6만명 이상에 달하게 된다. 이에 따라 2030~2040년대엔 총병력을 35~45만명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현재 18개월(육군·해병대 기준)인 현역 복무 기간을 일부 정치인의 주장대로 12개월 이하로 줄인다면 총병력 규모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방 개혁 청사진을 담은 ‘국방 개혁 2.0′은 2030년까지 50만명의 총병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돼있다. 국방부 산하 싱크탱크인 국방연구원이 2040년쯤까지 병력 규모 재조정 계획 등이 포함된 청사진을 짜고 있지만, 내년 5월 임기 만료인 현 정부에서 얼마나 정책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마침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 캠프에서 인구 절벽 등에 대비한 대책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병역 제도와 관련해 여당 후보는 ‘선택적 모병제’를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 후보는 모병제는 시기상조라며 ‘징병·모병 혼합제’를 제시하고 있다. 병력 부족을 첨단 무기 등으로 보완하는 기술 집약형 군대로 탈바꿈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드론,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도입하자는 데에는 양측이 한목소리를 낸다. 이 밖에 부사관 등 간부 비율 확대, 민간 인력·시설 등 아웃소싱 강화, 동원 전력(예비군) 대폭 강화, 여성 인력 확대 등도 병력 부족 쓰나미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부분 한국군이 가야 할 방향인 게 맞고 일리가 있는 제안들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고, 이 제안들 역시 실현하려면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우선 최근 대선 화두(話頭) 중 하나인 모병제는 이미 많은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우수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는 미군도 1973년 모병제로 전환한 뒤 한동안 모병 인력 감소와 질적 저하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을 계기로 국방 예산을 대폭 증액하고 모병 대상자들에게 장학금을 파격적으로 지원하는 ‘제대군인 원호법’ 등을 시행하면서 이런 문제는 해결됐다.
예비군 강화도 병역 자원 부족의 해결책으로 ‘약방의 감초’처럼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예산이 국방 예산의 0.4%에 불과한 현실에선 장밋빛 청사진일 뿐이다. 동원 전력을 책임졌던 한 예비역 장성이 “대한민국 예비군은 계륵인가”라며 직격탄을 날릴 정도다. 더구나 현재 275만명인 예비군도 병력 감축에 따라 2040년엔 100만명대 초반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어 기존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다.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요술봉’처럼 제시되지만 역시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드론·로봇의 군사적 활용을 깊이 연구했던 한 전문가는 “자율 무기 체계로 필요한 인공지능은 아직 기초조차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상태여서 상당 기간은 인력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방종관 전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예비역 소장)은 “군 스스로 위기의식을 갖고 작전 수행 개념, 무기 체계, 부대 구조, 인재 육성 분야 등에서 광범위한 혁신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차기 정부에서 병력 부족 쓰나미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한국군은 재앙적인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차기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절박감을 갖고 지금까지 제시된 각종 대책과 그 현실적인 한계, 실행 계획 등에 대한 고차방정식 해법에 도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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